힐러리 클린턴(왼쪽) 민주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9일(현지시간)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에서 열린 제2차 미국 대통령 후보 TV토론을 마친 뒤 서로에게 등을 돌린 채 토론장을 떠나고 있다. /세인트루이스=UPI연합뉴스
지난주 말 터져나온 ‘음담패설’ 파문이 결국 미국 대선의 최대 분수령으로 꼽혔던 TV토론을 막장 드라마로 전락시켰다. 9일(현지시간) 밤 90분에 걸쳐 진행된 대선후보 2차 TV토론은 미 정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비난 속에 뉴욕타임스(NYT), CNN 방송 등 주요 언론은 “역사상 가장 천박했다”는 혹평을 쏟아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토론 내내 상대의 약점 꼬집기와 막말 공격에 매달렸다. 클린턴은 음담패설로 자멸한 트럼프 덕에 2차 TV토론도 우세를 이어갔다는 평가를 얻어 굳히기를 가속화하게 됐지만 진흙탕 싸움을 이어가며 두 사람 모두 역대 최악의 후보라는 불명예를 떠안게 됐다.트럼프는 예상한 듯 “탈의실에서나 할 농담이지만 가족과 모든 미국인에게 사과하고 싶다”고 몸을 낮췄다. 그는 ‘여성에게 (동의 없이) 바로 키스한다거나 몸을 더듬었다’는 자신의 녹음 발언에 대해 “그런 일을 실제 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한 뒤 클린턴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겨냥해 “행동으로 여성들을 학대했고 힐러리는 그 여성들을 악의적으로 공격했다”고 화살을 돌렸다. 트럼프는 이날 TV토론 직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으로부터 성폭행 등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토론을 막장으로 끌고 가겠다는 계산을 이미 내비쳤다.
클린턴은 애써 트럼프의 공격을 무시하며 “그 저속한 동영상 파일 내용이 트럼프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보여준다”고 응수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날 TV토론을 계기로 음담패설 파일에 발목이 잡혀 완전히 묻힐 수도 있었지만 작정하고 클린턴을 공격해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얻었다.
토론이 성추문과 막말로 얼룩지자 NYT, 정치전문매체인 폴리티코, CNN 방송은 “역대 가장 추잡스러운 싸움”이라며 얼굴을 붉혔지만 전날 트럼프 지지에 의문을 표했던 마이크 펜스 공화당 부통령 후보는 “나의 러닝메이트의 대승”이라며 트럼프와 다시 함께할 뜻을 분명히 했다.
한편 트럼프는 비방전에 몰두하느라 사실이 아닌 주장을 연발하고 질문 주제와 동떨어진 얘기만 하다 말 끊기와 끼어들기로 공동진행자인 앤더슨 쿠퍼 CNN 앵커 등과도 갈등을 빚어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반면 클린턴은 시리아 사태나 오바마케어 등 정책에 정통한 답변과 트럼프의 도발에 말려들지 않는 노련함으로 점수를 땄다. CNN은 토론 직후 여론조사 결과 ‘클린턴이 잘했다’는 응답이 57%를 기록한 데 비해 ‘트럼프가 잘했다’는 답변은 34%에 그쳤다고 전했으며 워싱턴포스트(WP)도 클린턴을 ‘승자’로 판정해 향후 트럼프와 지지율 격차를 늘려가는 데 힘을 받게 됐다.
미 언론들은 클린턴과 트럼프가 2차 토론에서 ‘갈 데까지 갔다’며 남은 선거기간 이전투구가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마지막 TV토론은 오는 19일 라스베이거스 네바다주립대에서 열린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