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도의 톡톡생활과학]온난화의 역습, '슈퍼 태풍' 한반도 덮친다

태풍 ‘차바’의 영향으로 지난 5일 울산시 중구 우정동 태화시장 앞 도로가 침수돼 자동차들이 물에 떠있다. 차바로 인해 자동차 8,337대가 침수 피해를 입는 등 모두 1,500억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 했다.
최근 태풍 ‘차바’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지난 5일 부산에 상륙해 짧은 시간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내고 사라진 차바는 10월 태풍 치고는 이례적으로 강력했다. 부산 해운대의 고층 건물은 해일성 파도로 1층이 잠겼고, 울산의 아파트 주차장에 둔 자동차들은 허리까지 찬 물에 둥둥 떠다녔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2공장 등 10여 곳의 가동이 중단됐고, 차량 8,337대가 침수 피해를 입는 등 재산 피해가 1,500억원에 달했다. 인명 피해는 사망 7명, 실종 3명 등 모두 10명에 달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10월에 온 태풍으로는 3년 만인 태풍 차바는 강풍과 호우 기록도 갈아치웠다. 10분간 분 바람의 평균인 ‘최대 풍속’은 초속 49m를 기록했다. 2003년 태풍 매미 이후 가장 강한 바람이다.
역대 태풍의 순간 최대 풍속 순위. 이번에 남부 지역을 강타한 10월 태풍 ‘차바’는 56.5m/s로 역대 4위 수준이다.
‘순간 최대 풍속’은 초속 56.5m를 기록해 역대 4위 수준이다. 제주 서귀포에선 시간당 116.7㎜(누적 289.1㎜)의 비가 쏟아졌다. 서귀포 기상 관측 사상 가장 강한 비였다. 제주 윗세오름에서는 4~5일 누적 강수량이 659.5㎜(시간당 173.5㎜)나 됐다.

카리브해 일대에서도 역시 10월 허리케인 ‘매슈’로 인해 비상이 걸렸다. 최대 풍속이 초속 58.1~69.7m(최대 시속 250㎞)에 달하는 초대형 허리케인으로 인프라가 취약한 아이티의 피해가 컸다. 매슈가 강타한 아이티의 사망자수가 1,000여 명에 달했다. 미국에서도 19명이 사망하고 곳곳이 물에 잠기며 최대 60억 달러의 경제적 피해를 남겼다. ‘매슈’는 2005년 미국을 강타한 카트리나 이후 최강의 허리케인으로 불린다.

미 해양대기청(NOAA) 위성 사진으로 본 8월 한반도 주변 평균 표면 수온. 지난 1990년부터 2014년까지 25년간의 위성 정보를 통해 우리나라 표면 수온이 해역에 따라 섭씨 0.2∼1.3도씩 상승했음을 알 수 있다
10월 태풍 ‘차바’가 이례적으로 큰 피해를 남긴 이유로 전문가들은 높아진 수온을 꼽는다. 태풍은 바다에서 수증기를 공급받으며 생명력을 유지한다. 북상하는 태풍은 북위 30도 정도까지 오면 보통 기세가 서서히 약해진다. 해수 온도가 낮아지면서 공급되는 수증기량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제주도 남해상의 해수 온도는 28도 안팎으로 평년보다 1∼2도 높았고, 높은 수온으로 인해 강한 기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유엔(UN) 정부 기후위원회의 지난해 9월 5차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의 해수 온도 상승은 최근 20년(1991~2010년)간 섭씨 0.19도였다. 우리나라 주변 해수 온도는 무려 섭씨 0.81도 상승했다. 올여름 한반도에 살인적인 폭염을 부른 북태평양고기압도 차바가 강한 힘을 유지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기상청은 “10월 초까지도 일본 남동쪽 해상에 중심을 둔 북태평양 고기압이 강한 세력을 유지하면서 차바는 일반적인 진로인 일본 남쪽해상이 아닌 한반도 부근으로 북상했다”고 설명했다.


1904년 부터 지난해까지 월 별로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태풍수. 10월 태풍은 10개이지만 2013년 이후 3개나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등 최근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10월에 태풍이 우리나라 육상ㆍ해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는 1904년 이래 10개로 10년에 1번꼴이다. 하지만 2013년 이후 3차례나 찾아오면서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태풍 차바는 10월 한반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태풍 중에서 가장 강한 태풍이다. 태풍 차바 이전에 국내에 영향을 끼친 10월 태풍으로는 2013년 24호 태풍 ‘다나스’가 있었다지만 피해는 미미했다. 빗길 교통사고로 수 명이 다치고 건물 외벽의 벽돌 파손과 가로수가 쓰러지는 수준의 피해에 그쳤다. 1994년 태풍 29호 ‘세스’도 그해 10월 남해안에 상륙했지만 강도는 차바에 미치지 못했다.

태풍은 통상 여름에 많이 발생한다.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태풍을 월별로 분석해보니, 1951년부터 지난해까지 가장 많은 태풍이 만들어진 달은 8월이었다. 355개의 태풍이 북태평양에서 만들어졌다. 두 번째로 많은 달은 9월로 324개였다. 다음이 7월 248개, 10월 242개다. 6월에서 8월까지 여름 태풍 수가 720개인데 9월 이후 11월까지 가을에는 719개였다. 가을 태풍의 발생 수가 여름에 못지 않게 많았다는 말이다. 기상청이 1904년부터 지난해까지 태풍으로 인한 인명·재산 피해 순위를 발표했다. 인명 피해에서 가을 태풍은 전체 10위권에 2개가 들었다. 재산피해는 10위권에 4개가 포함됐다. 재산 피해를 보면 가을 태풍이 훨씬 더 강했음을 알 수 있다. 2002년 9월 태풍 루사는 246명의 인명 피해와 5조1,479억 원의 재산 피해를 냈다. 2003년 9월 태풍 매미는 131명의 인명 피해와 4조2,225억 원의 재산 피해를 남겼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산하 기후데이터센터(CDC) 연구진은 태풍의 에너지 최강 지점이 점차 북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2014년 NOAA의 제임스 코신 교수와 그의 동료 과학자들은 1982년부터 2012년 사이에 발생한 태풍을 포함한 열대 사이클론 자료를 분석한 결과 태풍이 최대 강도에 도달한 위도가 10년마다 북반구에서는 53㎞씩, 남반구에서는 62㎞씩 극 쪽으로 이동한 사실을 발견했다. 지난 30년간 태풍의 세력이 강력한 지점은 적도 부근에서 약 160㎞ 올라왔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제임스 코신 교수는 “일본과 한국이 큰 위험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과학계에서는 앞으로 가속화 하는 지구 온난화로 한반도에서 이례적이고 강력한 태풍을 자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슈퍼 태풍’도 몰아칠 가능성 또한 제기되고 있다.
태풍 하이옌으로 폐허가 된 필리핀 중부 레이터 섬의 주도인 타클로반. 하이옌은 2013년 11월 7일 레이터 섬에 상륙했을 때 순간 최대 풍속이 초속 105.3m(시속 379㎞)였다. 전세계에서 발생한 열대 저기압을 통틀어 가장 강력했다. 중심 기압 또한 895hPa로 낮았다. 이재민 430만명에 사망, 실종자만 7,890명에 달햇으며 재산 피해는 집계 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JTWC)는 ‘슈퍼태풍’을 1분 평균 최대 풍속이 중심 부근이 초속 67m(시속 241㎞) 이상인 태풍으로 정의한다. 이는 자동차를 뒤집고 대형 구조물도 부술 수 있는 위력을 가지는데, 2005년 8월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중심 최대 풍속이 초속 78m를 기록한 바 있다. 우리 기상청의 태풍 분류에서 최고 단계인 ‘매우 강한 태풍(초속 44m 이상)’보다 강도가 50% 가량 더 센 초강력 태풍이다. 2013년 필리핀을 초토화한 ‘하이옌’, 최근 대만과 중국 등에 큰 피해를 준 ‘네파탁’ 등이 대표적이다. 한반도는 지금까지 슈퍼 태풍의 안전지대로 남아 있었다. 슈퍼 태풍까지 발달했다가도 한반도 쪽으로 북상하면서 모두 세력이 약화됐다. 한반도에 영향을 준 태풍 가운데는 2003년 9월 매미가 북위 27도까지 슈퍼 태풍급 위력을 유지 했던 것이 가장 위험한 기록이다.
인도양과 태평양에 걸친 웜풀의 면적 변화. 점선으로 표시된 영역은 1953~1959년, 실선은 2000~2012년 웜풀의 면적이다. 지도에서 빨간 부분은 60년 동안 해수면 온도가 1.4도 올랐고, 파란 부분은 0.2도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도 서태평양과 인도양에서 수온 28도가 넘는 지역을 ‘웜풀’(Warm Pool)이라 부른다. 지구 온난화 주범인 온실가스가 여름철 태풍 발원지인 ‘웜풀(warm pool)’ 팽창에도 관여해 슈퍼 태풍을 늘린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지난 1953과 2012년 사이 60년간의 위성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구 상에서 가장 따뜻한 바다로 꼽히는 적도 부군의 ‘웜풀’ 해역은 32%나 팽창했다. 인도양에서는 기존의 절반 정도나 면적이 넓어졌다. 포항공과대(POSTECH) 환경공학부 민승기 교수팀은 이 팽창을 불러온 주범이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임을 알아내 지난 7월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했다. 민 교수는 “온실가스 증가에 따른 웜풀의 팽창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기상기구(WMO) 태풍위원회는 2012년 평가보고서에서 기후 변화로 서태평양 지역에서 태풍의 발생 빈도는 줄어들지만 강도는 강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점차 아열대 기후로 바뀌어 나가고 있다. 기후가 변하면 우리나라도 가을이 아닌 겨울에 태풍이 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강력한 슈퍼 태풍은 더 많이, 그리고 더 자주 영향을 줄 것이다.

지난해 국립기상과학원 최기선 박사 등이 1977년 이후 태풍을 대상으로 분석해 지구과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1999~2013년 동안의 태풍들이 1977~1998년 동안의 태풍들보다 훨씬 고위도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으며, 1999년 이후부터 태풍이 최대 강도를 나타내는 위도가 올라간 것으로 분석됐다. 제주대 태풍연구센터 문일주 교수가 1975년 이후 40년 동안의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한 슈퍼태풍의 도달 위도를 따져봤더니, 최고 북상 위도는 전반기 20년간 북위 28도에서 후반기 20년 34도로 6도 북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위도 1도가 110㎞이니, 북쪽으로 660㎞ 치고 올라온 셈이다. 문일주 교수는 “한반도 주변 태풍 길목의 수온 상승으로 가까운 미래에 슈퍼 태풍이 강도를 유지한 채 우리나라를 덮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문병도기자 d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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