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소프트파워 혁명]품질·윤리경영으로 글로벌 1위 도약...'존슨앤드존슨'서 배워라

<2> 품질혁신, 위기극복의 힘
현대기아차 '품질 본부' 회장 직속으로 운영
삼성SDI는 극한 테스트로 철저한 품질관리



지난 1980~1990년대 초만 해도 국내 기업은 ‘패스트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성장했다. 미국과 유럽 주요 기업의 제품을 보다 싼 가격에 빠르게 내놓고 돈을 벌었다. 하지만 중국 등 후발주자의 추격이 본격화되면서 품질 없이는 생존을 보장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제품 품질관리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는 소프트파워 혁명에 기반을 둔 품질관리가 강조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총수나 최고경영자(CEO) 등의 일방적 지시로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소통과 소비자의 니즈 등을 기반으로 한 연구개발과 품질관리가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품질관리가 곧 실적…품질 테스트 목숨 건 기업들=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품질 문제를 기업의 생존권과 직결된다고 인식했다. 세계 시장에서 주요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품질의 벽을 넘어야 했다. 경영층이 나서 품질을 강조했고 직원들은 이에 부응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대표적이다. 현대·기아차는 회장 직속으로 품질총괄본부를 두고 차량 출시 전에는 별동대까지 운영한다. 일종의 암행어사인 셈이다. 20.8㎞의 코스에 총 73개의 코너와 급경사가 반복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뉘르부르크링 서킷이나 여름 기온이 39~54도에 이르는 미국 모하비연구소에서도 주행 테스트를 한다. 그 결과 6월 미국에서 기아차는 국내 업체 최초로 JD파워 초기품질조사 1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올렸다. 독일 포르쉐, 일본 렉서스보다 품질력이 우수함을 증명한 것이다.

LG전자 역시 최고위 경영층 직속으로 품질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TV를 비롯해 모터가 들어가는 제품을 생산하는 구미공장은 별도 실험실을 두고 무작위 제품 테스트를 진행한다. 72시간 연속으로 TV를 재생하고 시간과 비용이 가능한 한 가혹 테스트를 되도록 많이 실시한다. 스마트폰은 낙하 시험, 고온·저온 시험, 습기 시험, 터치스크린 시험, 키프레스 시험 등 다양한 조건에서 테스트를 한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반도체가 영하 40도와 최고 150도에서 작동되는지 확인한다. 삼성SDI는 전기차용 배터리를 극한조건에서 시험한다. 울산공장 내 연구소에서는 압축·관통·낙하·진동·관성·과충전·고열·열충격 등 가할 수 있는 모든 실험이 진행된다. 디스플레이 업계를 주도하는 LG디스플레이에서는 ‘품질이 곧 실적’이라는 말이 통용된다. 미세먼지 하나에도 패널에 불량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품질관리 조직을 운영하고 전사원이 품질관리 첨병 역할을 하는 점도 특징이다. 포스코는 제품 품질에 대한 고객의 소리를 즉각 반영할 수 있도록 판매 부서와 제품 품질 부서를 한데 모아 대응하는 체계를 갖췄다.

◇품질관리 변화 알리는 신호탄=
CEO 체제의 기업들은 매년 단기실적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짧은 기간에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조급증은 소통을 막고 품질관리 실패 및 기업 위기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이런 방식의 품질관리에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자칫 CEO의 잘못된 판단이 기업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제조업체의 경우 한국 기업의 고질병인 권위에 눌러 실무기술자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CEO의 영향력과 카리스마, 명령에 기반을 둔 품질관리가 아니라 임직원들이 스스로 나서 의견을 적극 개진하고 집단지성을 통해 아래에서 위로 진행되는 품질관리가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프트파워, 즉 조직 전반의 혁신을 통해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집단지성으로 달라진 품질관리 방식을 빠르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분석이다. 산업연구원의 이항구 박사는 “기술력을 갖춘 제조업체들이 품질 문제에 부딪힌 것은 제왕적 리더십 때문인 경우가 많다”며 “적극적으로 임직원들과 소통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도원기자 theo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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