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정신적 지주였던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서거가 구심점을 잃은 태국 정치·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푸미폰 국왕을 이어 차기 국왕으로 지명된 마하 와찌랄롱꼰 왕세자. /AP연합뉴스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의 서거로 태국 정국과 경제가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 1972년 이미 후계자로 낙점된 마하 와치랄롱꼰(64) 왕세자의 사생활 문제로 왕위계승에 잡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벌써 제기되는 가운데 정치적 구심점을 잃은 태국이 향후 극심한 정국혼란과 경제불안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경고가 속출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가 국왕 서거 직후인 13일(현지시간) 후계자로 지명된 왕세자가 헌법에 따라 왕위를 승계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는 “정부는 왕위승계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며 국왕께서 1972년 왕세자를 후계자로 지명했다는 사실을 국가입법회의에 통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차기 국왕으로 와치랄롱꼰 왕세자가 아닌 다른 왕족을 옹립할 수 있다는 일각의 관측에 쐐기를 박은 것이라고 WSJ는 지적했다.
2007년 개정된 태국 헌법에서 왕위계승의 근간으로 삼는 왕실법에 따르면 국왕만 왕자 중 후계자를 지명할 수 있다. 공주는 국왕 정치자문단인 추밀원의 추천과 의회 승인 절차를 거쳐 왕위 승계자가 될 수 있지만 이는 왕세자나 명백한 후계자가 없을 경우에만 적용된다. 따라서 이변이 없는 한 푸미폰 국왕의 유일한 아들인 와치랄롱꼰 왕세자가 왕실의 적통을 이어받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세 차례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모친으로부터 ‘돈후안(전설 속의 호색가)’으로 불리기도 했던 왕세자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은 가운데 태국에서는 최근까지 외국으로 나돌던 왕세자보다 선왕의 곁을 지키며 활발한 대외활동을 펴 국민의 신임을 쌓아 온 마하 짜끄리 시린톤(61) 공주를 선호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와치랄롱꼰 왕세자와 시린톤 공주를 축으로 군부와 탁신 친나왓 전 총리, 미국과 중국 등의 세력대결이 전개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 경우 태국 정국은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어 내년 말 총선을 통한 민정이양 일정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캐피털이코노믹스는 CNN머니에 “국왕은 현재의 군부정권에 적법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면서 “지난 수십년간 국왕이 없었다면 태국은 수 차례 내전으로 내몰렸을 것”이라고 태국의 앞날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실제 푸미폰 국왕 재임 동안 태국은 19차례의 쿠데타와 17번의 개헌을 겪었지만 그때마다 푸미폰 국왕이 뛰어난 조정능력을 발휘하며 국가를 단결시켜온 것으로 평가된다.
정국불안이 태국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태국 밧화 가치는 푸미폰 국왕이 위중하다는 소식에 급락했다가 서거 소식이 전해지면서 급등하는 등 최근 사흘간 큰 폭으로 출렁였다. 일단 14일 밧화 가치와 태국 주가가 오르는 등 시장은 큰 충격을 받지 않은 모습이지만 앞으로 왕위계승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가뜩이나 취약한 태국 경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캐피털이코노믹스는 “태국 정치의 앞날이 명백해질 때까지는 태국 경제에 대한 중기 전망을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신경립기자 kls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