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정 더 풀라" 美재무부까지 경고] 전문가들 "재정역할 강화"...정부 "이미 쓸만큼 썼다" 난색

"재정 건전성 세계최고 수준"
美 더 과감한 부양정책 요구
'환율관찰 대상국' 지위 유지 속
"환시 개입내역 공개를" 압박도



미국 재무부가 이번에 내놓은 반기 환율 보고서는 ‘환율’보고서라는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한국의 재정정책에 상당 분량을 할애했다. 총 43쪽에서 한국에 대한 언급은 3쪽이었는데 이 가운데 5분의1가량을 재정정책에 대해 지적했다. 보고서는 “저성장, 대외 역풍, (풍부한) 재정 여력 등 세 가지를 고려할 때 한국이 단기 재정 확대를 포함한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권고했다.

중장기적으로 재정 건전성을 지켜야겠지만 당장 2% 초중반으로 하락하는 경제성장률과 수출 부진, 미 금리 인상, 독일 도이체방크 부실 등 대외 리스크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재정 건전성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단기적으로라도 재정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4월 보고서에서는 “내수를 부양하기 위해 추가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지만 재정(fiscal) 정책에 대해서는 적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더 과감한 재정정책을 포함한 추가 노력을 제언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재정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재정 누수를 막고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곳에 집중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있고 각종 악재가 확산하고 있는 만큼 전체 규모도 일정 수준 이상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경제 연구소 경제연구실장은 “재정이 충분히 투입될 시기를 놓치면 경기가 고꾸라질 수 있고 그때 가서 뒷수습을 하려면 더 큰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계 투자은행(IB)인 소시에테제네랄도 올해가 끝나지도 않았지만 부족한 재정 규모, 경기 하방 압력 등으로 내년에 한국이 또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완고하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재정은 쓸 만큼 썼다”며 “더 화끈하게 하기에는 재정적자 걱정을 해야 한다”고 난색을 표했다. 송언석 기재부 2차관 역시 “한국의 재정 건전성이 좋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건전성은 한번 허물어지면 걷잡을 수 없다”고 밝혔다. 과거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가 불과 7년 만에 40%에서 90%로 수직 상승한 사실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 재무부는 이번 보고서에서 한국을 ‘환율 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하며 4월의 지위를 유지했다. 재무부는 △현저한 대미 무역수지 흑자(연간 200억달러 초과) △상당한 경상수지 흑자(국내총생산(GDP) 대비 3% 초과) △환율 시장의 일 방향 개입 여부(GDP 대비 달러 순매수 2% 초과)를 모두 충족하는 나라를 ‘환율조작국(심층 분석 대상국)’으로 지정한다. 우리나라는 대미 무역흑자가 302억달러를 기록하고 경상흑자도 7.9%를 나타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했지만 GDP의 1.8% 달러 매도(원화 강세 유도) 개입을 해 마지막 조건은 미달했다.

다만 한국의 대외 및 외환 정책에 대해서는 기존 스탠스대로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보고서는 “한국의 막대한 경상흑자가 저유가 때문이라지만 이를 고려해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제유가가 배럴당 80달러대로 올라도 한국의 경상흑자는 GDP 대비 6.2%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동안 우리 외환 당국은 경상흑자에 대해 수출이 잘 돼서가 아니라 저유가에 따른 수입액이 줄어드는 ‘불황형 흑자’라고 해명했지만 미국은 이를 구체적 수치로 반박했다.

환시 개입 내역을 공개하라는 압박도 이어졌다. 보고서는 “많은 주요 신흥국,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환시 개입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환시 운영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유 부총리는 “환시 개입 내역 공개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의 전제 조건이므로 우리가 TPP에 개입한 후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화 가치에 대해서도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를 인용해 “실질실효환율 기준으로 4~12% 저평가돼 있다”고 지적했다. 원·달러 환율에 바로 대입하기는 어렵지만 현재 달러당 1,100원대인 환율이 900~1,000원대 초반으로 하락(원화 강세)해야 적정하다는 뜻을 밝혔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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