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만 하더라도 골프용품 브랜드 ‘혼마’하면 50~60대 이상의 시니어, 금테 두른 고수들의 사치품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다. 최근 혼마골프의 연관 검색어는 이보미, 허윤경, 젊음, 여성, 다루기 편안함 등으로 바뀌었다. 물론 기존 수요층의 뿌리도 여전히 깊다. 극적인 이미지 변신을 이룬 혼마골프의 중심에는 이토 야스키(56) 대표이사 사장이 있었다. 1985년 4월 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31년 넘게 몸담아왔고 지난해 12월 사장에 취임한 ‘뼛속까지 혼마맨’이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가 오랜 현장 감각을 바탕으로 한 열정적인 전략가임을 누구나 금세 알 수 있다.
이토 사장은 1985년 입사 이래 소매영업과 도매영업, 지점장, 본사 영업 관리자까지 영업 현장에서 20년간 일했다. 이후로는 마케팅 관련 부문으로 옮겨 광고홍보·제품기획·경영전략까지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다. 다방면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사원으로 출발해 사장 자리에 오른 혼마 최초의 사례를 만들었다. 소비자와의 접점이자 판매점과의 연결고리인 영업 부문에서 긴 경력을 쌓은 현장형 경영인인 셈이다. 지금도 주요 마케팅 행사에 직접 참석하는 그는 “정답은 늘 현장에 있으며 현장 감각을 유지하려고 애쓴다”고 말했다.
이토 사장이 꼽는 혼마골프의 성공 열쇠도 바탕은 다름 아닌 현장과 소비자 중심주의다. 그는 “혼마의 경쟁력은 기술력과 제품력(제품 성능), 그리고 전략”이라면서 “타깃(소비자)의 요구를 분명히 파악하면 그 목표에 대한 우위성 있는 클럽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단언했다. 혼마는 최근 열정과 클럽의 가격대를 기준으로 골퍼들을 9개 부류로 나누는 ‘세계 공통 세그먼트(Segment)’ 전략을 세웠다. 소비자를 세분하고 각 세그먼트에 맞춘 제품을 제공하는 것인데 그동안 쌓은 현장 데이터를 근거해 완성했다.
최근 혼마골프가 젊어졌다는 평가가 바로 세그먼트 전략의 결과다. 이토 사장은 “젊은 층과 여성 골퍼가 늘어났다는 시장의 변화도 있지만 그들이 속한 세그먼트를 ‘혼마니아(HONMANIA)’로 설정하고 그들이 원하는 성능·가격대·디자인의 제품을 개발해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지가 바뀌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혼마골프 광고 카피(Are you HONMANIA?)에도 활용되는 혼마니아는 혼마와 마니아의 합성어다. 1타라도 줄이고 싶고 1야드라도 멀리 날리고 싶어하는 열정적인 골퍼를 가리킨다. 혼마니아를 겨냥한 새 브랜드 ‘투어월드(TOUR WORLD·TW)’ 시리즈와 ‘비즐(Be ZEAL)’ 클럽은 부담을 줄인 가격과 스타일리시한 이미지로 한국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3스타, 4스타, 5스타 등 고가대 제품은 해당 세그먼트에 대한 타깃 마케팅을 꾸준히 진행하는 중이다. 이토 사장이 마케팅 본부장 시절 세그먼트 전략을 세우며 6개월간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한 일화는 그의 섬세함과 완벽주의를 보여준다.
이토 사장은 혼마니아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팀 혼마’라고 자랑했다. 팀 혼마란 프로골프 투어를 뛰는 혼마골프 장비 지원 선수들이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소속의 허윤경·김혜윤·양수진·최혜용·정재은, 미국 투어의 유소연과 장하나, 일본 투어의 이보미와 김하늘 등 팀 혼마의 면면은 화려하다. 이토 사장은 “혼마니아들은 투어 프로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기 때문에 프로 선수에 대한 지원은 매우 중요하고 효과적인 마케팅 활동”이라고 소개했다. 팀 혼마 선수들은 움직이는 광고판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TW 시리즈는 퍼포먼스에 초점을 맞춘 투어 지향적 모델이다. 팀 혼마 선수들이 주로 사용하며 치기 쉬우면서도 투어 프로에게 적합한 비거리, 컨트롤 성능을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올해 새롭게 선보인 비즐은 이보미가 등장해 “100타는 이제 그만”이라고 외치는 카피처럼 주말 골퍼들을 위한 초중급 라인이다. 볼의 초기 속도를 높이고 높은 탄도와 적절한 스핀을 구현해 비거리를 늘려주는 게 특징. 6피스(6층) 구조의 TW-G6 등 5종류의 골프볼도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한국 골프 저변 확대에 힘을 쏟는 혼마골프는 오는 28일부터 30일까지 인천 드림파크CC에서 KLPGA 투어 혼마골프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에 공동 주최사로 나선다. 이토 사장이 흔쾌히 결정을 내렸다. “일본에서는 지난해부터 남자프로골프대회를 주최하고 있는데 혼마니아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여자 골프에 대한 주목도가 일본보다도 높아 개최하게 됐습니다. 혼마니아의 관리와 시장 확대를 위해 최적의 방법이라 생각하고 한국 골퍼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이토 사장은 지금은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졌지만 2011년 한국지점이 설립된 후 한 달에 한 번 정도 한국을 찾아 대회장과 판매점 등을 방문했다. 한국인의 따뜻한 정(情)과 골프에 대한 열정에 반했고 동대문시장 닭한마리 같은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고 한다. 올봄 한국에서 열린 신제품 발표 행사에 본사 일정으로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한 그는 영상 메시지로 인사를 전했다. 한국어로 읽어내려간 3분가량의 인사말은 유창한 발음은 아니었지만 진지함과 열정을 전달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는 “한국 소비자에 대한 혼마골프의 신뢰를 표하고 싶었다”고 했다. 자칭 ‘골프대회 갤러리 마니아’로 한일 양국에서 수많은 토너먼트를 관전해온 그는 두 나라 투어의 분위기나 갤러리 문화 등에 대해서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고 평했다.
혼마 후원 선수로 지난해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서 상금왕을 차지한 이보미(28)를 언급하자 이토 사장은 “인기와 실력 모두 넘버원”이라며 엄지를 세워 보였다. 그는 “지금까지 일본 골프전문지 표지에 한국 선수들이 게재되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이보미는 최근 3년간 60회 정도 표지를 장식해 일본 남자 골프스타 이시카와 료의 48회를 넘어섰다”며 “대회에서 당연히 많은 갤러리가 따르고 얼마 전에는 일본의 인기 애니메이션에도 등장했을 정도”라고 인기몰이 현상을 전했다. 이보미의 대회 성적에 따라 그 주간 매출이 등락하는 경향도 있다고 했다.
이토 사장은 향후 한국 골프시장에 대해 “미국과 일본은 정점을 찍어 골프인구와 매출이 줄고 있지만 한국은 매년 성장하고 있다”면서 “박인비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이보미 선수가 일본에서 맹활약하는 등 여자골프가 세계 최강이고 아마추어 골퍼들의 열정도 세계 최고라 경기 침체와 부정청탁방지법 시행의 악재에도 10년간은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근거로는 제2 베이비붐 세대인 1973년생이 은퇴할 시기까지는 크지 않아도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갈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이에 맞춰 한국 마케팅 전략을 수립,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사장 취임 1주년을 앞둔 이토 사장은 “중점 시장 중 하나인 한국에서 연평균 성장률 14% 실현, 그리고 2020년 글로벌 시장점유율 12%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중국과 북미를 개척한 데 이어 유럽 시장에 본격 진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민영기자 my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