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철의 철학경영] 서로 떠먹여주는 조직을 만들라

연세대 철학과 교수
<34>리더의 생각과 조직의 변화
어시스트 호흡 통해 골 합작하듯
협동이 조직을 '천당'으로 이끌어
리더, 서로 돕는 환경 조성해야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얼마 전 필자에게 e메일 하나가 왔다. 열어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김 교수님 안녕하세요. 지난해 10월 저희 회사에 다녀가셨던 것 기억하시죠. 그때 그 박 사장입니다. 교수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 제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저희 회사는 더 이상 지옥이 아닙니다. 여기는 천당입니다. 건승하십시오.’ 뭐 이런 내용이었다. 아니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다는 건지, 그리고 또 ‘여기는 지옥이 아니라 천당이다.’ 이것은 도대체 또 무슨 이야기일까.

천당과 지옥 시리즈는 알려진 이야기지만 다시 풀어보겠다. 지옥에 갔더니 인간들이 자기 팔 길이보다 더 긴 젓가락을 가지고 식사를 하고 있다. 이게 제대로 입에 들어가겠는가. 아수라장이 벌어진다. 천당에 갔더니 이런 문제가 싹 다 해결되고 없다. 여기에서도 긴 젓가락을 사용하는데 어떻게 가능할까. 해결책은 서로 상대방에게 먹여주는 것. 해법을 알고 있지만 우리의 현실은 지옥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왜 이런 상호협동을 실천하지 않는가 라고 물어보면 가장 흔하게 나오는 답변 하나가 있다. “나는 그 인간에게 먼저 떠먹여 줬는데, 그 인간이 안 떠먹여 줘서 나만 바보 됐습니다.”

우리 인간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는 원래 못난 원숭이였다고 한다. 나무 위에서 열매를 따 먹는데 다른 힘센 원숭이들한테 밀려서 나무 아래로 내려오고 말았다는 학설이다. 그런데 이 원숭이가 어떻게 이 지구를 정복하는 데 성공했을까. 그리고 왜 우리 조상과 비슷한 네안데르탈인은 어떻게 호모사피엔스에게 졌을까. 더욱 궁금한 것은 네안데르탈인은 우리 조상보다 뇌도 더 커서 똑똑했고 힘도 더 셌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보다 결정적으로 약한 것은 바로 협동심과 이타심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은 본인이 공격을 받았으면 당연히 반격에 나선다. 자신의 가족이 공격 받았으면 역시 보호하려고 뭉친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다른 네안데르탈인이 공격당하면 힘을 합쳐서 반격에 나서지 않고 모른 척했다. 그들의 결핍은 바로 협동심과 이타심이다.


필자는 동물의 세계를 보여주는 한 TV프로그램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하이에나가 자신보다 덩치가 큰 사자들에게 굴하지 않고 같이 대응하는 것을 보면서 참 신기했다. 힘을 합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인간이 가진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다. 여러분의 조직은 어떤가. 과연 동료와 끈끈하게 협동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들의 고통을 모른 척하고 협조를 거부하는 부서이기주의에 찌들어 있지는 않은가.

초일류 제약회사를 경영하는 한 사장이 있었다. 어느 날 전 부서장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다. 그리고는 “다른 부서에서 업무 협조 온 사안에 대해서는 자기 부서 업무에 우선해서 처리하라”고 지시한다. 그때부터 다른 사람 입에 먼저 떠 먹여주기 시작한다. 왜? 모든 부서장에게 공동으로 떨어진 명령이기 때문에 그렇다. 부서장들은 각자 자기 부서에 돌아가 딱 한마디 한다. “동료 부서원이 업무 협조한 사안에 대해서는 자기 업무에 우선해서 처리하시오.” 리더가 제일 위에서 한 그 말 한마디가 조직을 지옥에서 천당으로 바꿔 놓는 순간이다.

생각이 조직을 바꾼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물갈이되기 전에는 그 조직 절대로 안 바뀐다.” 천만의 말씀이다. 물갈이돼도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조직은 바뀌지 않는다. 물갈이되지 않더라도 생각이 바뀌면 조직은 바뀐다.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조직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지옥이기도 하고 천당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 입에 먼저 떠먹여 주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곳이 바로 천당이다.

프로축구에서 MVP가 되려면 혼자 골만 많이 넣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어시스트를 잘해야 한다. 만약 어떤 조직이 지옥 같은 곳이라면 그 책임의 80퍼센트는 리더에게 있다. 리더가 해야 할 일은 이제 분명하다. ‘어떻게 하면 내 조직원들이 서로서로 도와줄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이 생각을 끊임없이 하면서 조직을 이끌어가야 한다.

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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