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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러시아 화학자 멘델레예프가 주기율표를 완성하면서 세상의 모든 물질은 주기율표상 원자의 조합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됐다. 이런 생각은 20세기에 들어서 원자는 핵과 전자로 이뤄져 있고, 다시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들이 모여서 구성됐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깨졌다. 이 때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양성자, 중성자, 전자는 더 이상 깨질 수 없는 기본입자라고 확신했다. 그렇지만 1964년 미국의 물리학자 머리 겔만이 ‘쿼크 이론’을 제시하면서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입자는 더 작아졌다.
쿼크의 존재를 증명하고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 입자를 찾아내려는 물리학자의 실험도구가 바로 ‘입자 가속기(Particle Accelerator)’다.
입자가속기는 전기장이나 자기장을 이용해 전자나 양성자, 이온 등 전하를 갖는 입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한 뒤 원자핵과 충돌하게 하는 장치다. 전하를 띤 입자 양쪽에 전위차를 걸어 주면 입자는 전위차에 의해 힘을 받아 한 쪽으로 가속되는데, 입자가속기는 이런 원리에 의해 지속적으로 입자를 가속 시켜 입자의 속력을 광속에 가깝게 증가시킬 수 있다. 가속된 입자들이 원자핵과 부딪치면 새로운 소립자가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이러한 소립자들의 물리량을 분석하면 입자를 구성하는 물질들을 알아낼 수 있다.
입자가속기는 가속 방식에 따라 선형과 원형으로 나눌 수 있고 가속 입자의 종류에 따라 전자와 양성자, 중이온 가속기로 구분된다. 선형 가속기는 원형 가속기보다 균일하고 강한 입자빔을 얻을 수 있으며 입자가 위치를 바꿀 때 나타나는 미세한 제동에 의한 에너지 손실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지만 가속하고자 하는 입자의 크기가 커질수록 가속기가 길어져야 한다. 원형 가속기는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한정된 공간에 입자를 나선(사이클로트론)이나 원(베타트론, 싱크로트론)을 그리며 돌면서 가속되도록 한 것이다. 사이클로트론은 전하를 띤 입자가 균일한 자기장 속에서 로렌츠 힘을 받으면 원운동하고, 고주파 전압을 가하면 가속할 후 있다는 사실을 이용하였다. 1929년 미국의 물리학자 로렌스가 개발하였으며, 1930년에는 양성자를 80keV까지 가속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다. 입자가 작은 전자를 이용한 가속기는 제동에 의한 에너지 손실이 적은 선형 가속기 형태로 주로 만들어진다. 반면 전자보다 질량이 큰 양성자를 이용한 가속기는 대부분 원형 가속기로 만들어진다.
최근에는 물질의 구조를 밝히는 기초연구뿐만 아니라 생명과학, 나노, 의학, 재료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입자가속기가 쓰이고 있다. 세계 각국은 자국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첨단 입자 가속기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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힉스 입증에 혁혁한 공을 세운 LHC는 지난해 대대적으로 장비를 업그레이드 해 충돌 양성자의 에너지를 14TeV(테라전자볼트)로 2배가량 높였다. LHC는 양성자를 정면 충돌시키는 데, 입자 빔이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충돌함으로써 우주 초기 상태인 빅뱅 상황을 재현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렇게 되면 우주의 약 27%를 채우고 있지만 존재를 규명하지 못한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우주의 68% 차지) 정체, 입자들의 초대칭 짝입자 존재 여부, 물질과 반물질 성질에 대해 파악할 수도 있다. .
성능을 업그레이드한 LHC에서도 새로운 입자가 발견되지 못한다면 기존보다 훨씬 큰 고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는 장비가 필요해진다. 입자가속기의 대형화는 그래서 추진된다. CERN은 스위스 제네바 시내를 둘러싸는 100㎞의 터널을 뚫어 지하 200m에 뚫어 100TeV(테라전자볼트)의 고에너지 영역으로 양성자를 가속시켜 충돌하는 실험 장치인 ‘미래형 원형 충돌기(FCC·Future Circular Collider)’ 프로젝트를 논의하고 있다. 기존 LHC보다 충돌에너지가 7배 가량 큰 FCC의 건설은 2025년부터 시작돼 2035년부터 2040년 사이에 가동을 시작한다. 대량의 힉스 입자를 만들 것으로 기대돼 ‘힉스 팩토리(Higgs Factory)’로도 불린다. CERN은 FCC를 통해 인류가 아직 한 번도 관측하지 못한 암흑물질이나 초대칭 입자를 발견하길 기대하고 있다. FCC 건설에는 한국의 KAIST, 고등과학원 등 6개 기관을 포함해 23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유럽연합을 바짝 쫓고 있는 나라는 ‘뜨는 과학강국’인 중국이다.
중국은 2030년 대를 목표로 둘레 50~80㎞ 규모의 원형 강입자가속기 건설을 추진 중이다. 중국 고에너지물리학연구소(IHEP)의 왕이팡 소장은 “FCC에 필적할 만한 중국판 ‘힉스 팩토리’ 최종안을 올해 말까지 완성하고 이르면 2020년 건설을 시작해 2030년대에 완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선 2028년까지 전자와 양전자(전자의 반입자)를 충돌시켜 힉스 입자와 다른 여러 기본 입자를 만들어내는 ‘원형 가속 충돌기’를 건설한 다음, 이어 2035년까지 더 큰 에너지가 들어가는 양성자-양성자 충돌기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힉스의 속성을 자세히 알아낸다는 방침이다. 중국 쪽이 추산하는 건설 비용은 30억 달러(대략 3조원)에 이른다.
일본도 가속기 경쟁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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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2009년 세계 처음으로 스탠포드가속기연구소에 4세대 방사광가속기 ‘LCLS’를 구축, 식물 광합성과 엽록소 연구에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초고속 화학 반응을 관찰·연구할 수 있는 또 다른 기능의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추가 구축하고 있다.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밝은 X선 빔을 내는 새로운 차원의 둥근 고리 모양의 방사광가속기(MAX-IV)를 개발해 시운전하고 있다. 독일은 함부르크에 미국, 일본, 우리나라에 이어 세계 네 번째 4세대 방사광가속기(유럽-XFEL) 구축을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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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오는 2020년께 대전, 부산 등 전국에 대형 가속기 7기를 구축·운영할 예정이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경주 양성자가속기에 이어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라온(RAON)’, 부산 기장의 ‘의료용 중입자가속기’ 등 첨단 대형 가속기 구축 사업을 이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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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기는 규모가 클수록 높은 에너지의 입자를 얻을 수 있어 다양한 실험이 가능하다. 과학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조금이라도 더 큰 가속기’를 선호하는 까닭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 관계자는 “최근 입자를 더 높은 에너지로 가속하기 위해 입자충돌기가 점점 더 대형화되는 추세”라며 “힉스같이 그 동안 우리가 잘 알지 못하던 입자의 물리적 특성을 상세히 밝힐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병도기자 d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