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GDP는 OECD에 가입한 지난 1996년 481조원(명목기준)에 불과했다. 이듬해 530조원으로 사상 첫 500조원을 돌파했지만 그 해 말 닥친 외환위기로 1998년에는 525조원으로 뒷걸음질쳤다. 이후로는 순항했다. 2007년 사상 첫 1,000조원을 넘었고 지난해에는 1,500조원을 넘겨 1,559조원을 기록했다. 경제 ‘덩치’는 지난 20년간 3.2배나 불었다.
올해는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라는 우려가 큰 수출도 20년 전체를 놓고 보면 빠르게 증가했다. 1996년 1,297억달러에 불과했지만 2004년 2,000억달러를 돌파(2,538억달러) 하더니 불과 2년 만인 2006년 3,255억달러로 3,000억달러도 넘어섰다. 2010년 4,000억달러, 2011년 5,000억달러를 넘어 지난해 5,267억달러로 20년 사이 4.1배 팽창했다.
OECD 내 순위도 1996년 미국·독일·일본·이탈리아·캐나다에 이어 6위였지만 지난해 현재 이탈리아·캐나다를 제치고 4위로 뛰어올랐다. 수입은 1996년 1,503억달러에서 지난해 4,365억달러로 불었고 총 교역규모도 2,800억달러에서 지난해 9,633억달러로 3.4배 증가했다.
국민 전반의 생활 수준을 보여주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어떨까. 가입 첫해 1만3,077달러에서 지난해 2만7,340달러로 2.3배 올랐다. 하지만 속도는 갈수록 느려지고 있다. 가입 전에는 김영삼 정부가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 개막’을 목표로 원화 절상(환율 하락) 정책을 펴며 초고속으로 증가했다. 원화 가치가 오르면 달러로 표시되는 1인당 국민소득도 오르는 ‘환율효과’가 생긴다. 1994년 16.6% 오르며 사상 첫 1만달러를 돌파하고 1995년에도 20.8%나 뛰었다.
하지만 무리한 원화절상의 역풍으로 외환위기가 왔고 1998년 다시 1만달러 밑으로(7,989달러)로 추락했다. 2006년 2만달러를 돌파했지만 올해까지 10년 연속 2만달러 대 벽에 갇힐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국민소득이 4만달러를 넘는 것이 2만달러를 돌파한 지 17년 후인 2023년이 될 것이며 비교 가능한 OECD 21개국 중 핀란드(18년)를 제외하고 최장기간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보통 경제가 성장하면 국민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도 같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반대였다. 소득, 빈부격차, 스트레스 정도, 사회보장 수준 등 한 나라의 삶의 질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자살률인데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안 좋아졌다. 1996년 10만명당 12.9명이 자살했지만 지난해 26.5명으로 2배 이상 올랐다.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0명을 돌파한 뒤 소폭 낮아졌지만 여전히 OECD 내 독보적 1위다.
OECD가 집계하는 삶의 질 순위도 계속 미끄러지는 실정이다. 올해 ‘더 나은 삶의 질 지수’에서 우리는 38개국 중 28위로 지난해에서 한 계단 내려갔다. 2012년 24위를 기록했지만 계속 하락하고 있다. 지표는 2011년부터 주거, 소득, 공동체, 삶의 만족, 일과 삶의 균형 등 11개 부문을 종합 평가해 산출한다.
세부적으로 보면 ‘일과 삶의 균형성’에서 36위를 기록하며 국민 대부분이 여전히 격한 업무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삶에 대한 만족도’는 31위에 머물렀다. “도움이 필요할 때 받을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76%가 “있다”고 답해 OECD 평균인 88%에 못 미쳤다. 꼴찌에서 2위다. 개인주의가 강한 서구보다 서로 믿지 못하겠다는 비율이 높다는 뜻이다. 미세먼지 농도는 멕시코·헝가리 등에도 뒤지며 꼴찌였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동안 경제가 성장하면 삶의 질도 덩달아 개선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우리는 거꾸로였다”며 “낮은 삶의 만족도, 상호불신은 결국 사회적 자본을 갉아먹어 전체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