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왕이 아니야. 우리 같은 사람들이지. 우린 왕의 유통기한이 언제까지일지 잘 봐야 해.”
맥락 상관없이 작금의 난장판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속 터지는 현실을 투영하는 한 편의 연극. 제목은 야속하게도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뜻의 ‘불역쾌재’(不亦快哉)다.
작품의 전반부는 답답한 현실과 이에 대한 시원한 쓴소리를 담아낸다. 논란의 시작이 된, 기지·경숙의 절친 태보(윤상화)의 책을 통해서다. 조정 똥 덩어리들의 이야기라 해서 분서(糞書)요, 백성의 분노가 담겼다 하여 또 분서(憤書)요, 그래서 태워버려야 해 역시나 분서(焚書)다.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사실은 망해가는 나라, 말만 한 채 실천할 철학이 없는 현실에 괴로워한 충신은 역적이 되어 죽음을 맞이하고, 정치 실세들은 민심 수습을 위해 기지·경숙 둘 중 하나를 희생양으로 요구하고 나선다.
공존할 수 없는 밝음과 어둠은 두 노인의 관계이기도 하다. 상반된 생각으로 여정 내내 티격태격하는 둘은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양립불가의 처지다. 나와 너로 시작해 남과 북, 빈과 부로 확장하는,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는 우리네 현실은 그렇게 기지와 경숙에 투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역쾌재를 외치기 위해 작품 후반부는 쓴소리 아닌 ‘사연’을 풀어놓는다. 왕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나, 죽음을 알면서도 두 노인이 여정을 이어간 이유는 뭘까. 사관(윤상화·김정민)의 입과 기록을 통해 이들의 진심이 드러나고, ‘동시에 죽음으로써 함께 살기로 한’ 주인공들의 선택은 밝음과 어둠이 공존할 수 있음을 관객에게 이내 증명해 보인다.
무릎 치는 공감이 전부는 아니다. 관록의 배우들이 선사하는 명연기와 장면 곳곳 심어놓은 유쾌한 웃음은 여백 많은 무대를 하나둘 채워가며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한다.
어둠을 뒤집어 밝음을 보기엔 한없이 답답한 ‘무대 밖’이다. 더없이 씁쓸한, 그래서 강렬한 불역쾌재다. 11월 6일까지 LG아트센터.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