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죽을 사람 살릴 수 있다

시미즈 야스유키 자살예방 민간 NPO '일본 LIFE LINK' 대표

시미즈 야스유키
일본의 자살은 1998년에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1년에 2만명 전후였으나 1998년 3만명을 단숨에 넘기 시작했다. 한국도 비슷한 시기에 자살자 수가 늘었지만 일본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었다. 당시 일본의 자살률(인구 10 만 명당 자살자수)은 한국 보다 30% 가까이 더 높았던 것은 물론이고 연간 3만명을 넘는 상황이 그 이후에도 14년간 지속됐다.

자살률을 줄이기 위해 일본은 지난 2006년 자살대책기본법을 제정하고 사회 전체적으로 자살 대책을 추진해왔다. 그 결과 일본의 자살률은 2010년부터 6년 연속 감소하고 있으며 지난해 1998년 급증전의 자살자수로 하락한 결과를 보였다.

이와 같이 일본의 자살률이 줄기 시작한 것은 국회와 민간이 필요한 자살 대책을 세웠기 때문이다. 필자는 2004년 라이프 링크(LIFE LINK)라는 비영리기구(NPO)를 설립한 후 일본의 자살대책추진에 관여해 왔다. 되돌아 생각해 보면 지난 12년 동안 일본의 자살대책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2004년 자살은 개인의 문제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했고 사회적인 대책은 전무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살은 사회적인 문제라는 이해가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일본 전지역의 도(道)부(府)현(縣)에서 자살 대책을 직접 마련해 실시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변화가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은 아니다. 12년전 일본에서 자살은 ‘죽고 싶은 사람이 자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행위’라고 여겨졌었다. 죽고 싶은 사람은 주위에서 막으려고 해도 죽을 것이고 애초부터 죽고 싶은 사람을 막을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라이프링크에서 철저히 자살실태를 조사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의 대부분이 사실은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구체적으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 523명에 대한 자세한 실태 조사를 실시해 자살자는 죽기 전에 평균 4개의 문제를 안고 있고 직업이나 입장 등에 따라 문제에 일정한 규칙성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실업자인 경우 실업으로 인해 생활고에 빠지고 다중 채무를 안게 돼 정신적으로 궁지에 내몰리며 우울상태가 되면서 자살에 이르게 된다는 흐름을 알게 된 것이다. 또는 노동자인 경우 직장업무의 변화로 인해 과로에 빠지게 되고 업무에 실패하거나 직장 내 인간 관계가 악화되거나 하는 가운데 정신적으로 궁지에 내몰리다 우울상태가 되면서 자살에 이르게 된다는 방식을 찾게 된 것이다.

이처럼 ‘자살은 궁지에 내몰린 끝의 죽음이다’는 실태를 밝힘으로써 자살대책에 대한 정확한 사인 분석을 통해 자살에 대한 사고 방식을 바꿀 수 있었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해도 사실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들이 살 길을 선택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통해 자살을 줄일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을 계속해 나간 것이다.

일본의 자살대책에 대한 3가지 기본적인 사고방식은 사회에 생명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첫 번째 사고방식은 자살 대책이란 살아가기 위한 지원이며, 두 번째 자살 대책은 정치 책무라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실태 분석을 통해 최대의 해결책을 찾는 것이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었다.

필자가 지난 9월 5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열린 자살예방대책을 펼치고 있는 라이프콘서트 강연에서 일본의 자살률을 30% 줄일 수 있었던 효과적인 세가지 기본적인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나라마다 정책이 있고 환경이 다르겠지만 한국도 일본과 비슷한 상황이었고 현재는 일본처럼 고령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자살문제도 정확한 분석을 통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수년간 갖고 있는 불명예스러운 OECD 자살률 1위의 오명도 벗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