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는 ‘신곡’에서 지옥을 9단계로 구분했다. 그중에서도 최악의 단계는 가족과 친척, 조국과 동료, 친구나 은인을 배신한 이들을 가둬놓은 맨 밑바닥 아홉 번째 고리. 창세기에서 형제 아벨을 죽여 인류 최초의 살인자로 낙인 찍혔다는 카인과 아서왕을 죽이려다 미수에 그친 조카 모드레드, 은화 30냥에 예수를 배신한 유다, 로마의 영웅 줄리어스 시저를 암살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등이 이곳에 있었다. 특히 이들 중 유다와 브루투스·카시우스는 은인을 배신했다는 죄목과 함께 거대한 괴물에게 물어뜯기는 최고의 극형을 받았다. 단테에게 배신이란 절대 범해서는 안 될 범죄였다.
하지만 세상이 단테의 뜻대로 굴러가지는 않는 모양이다. 배신과 음모·모략 없이는 단 며칠도 못 가는 것이 우리네 세상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최측근이라 여긴 김재규가 궁정동에서 쏜 총탄을 피하지 못했고 전두환 대통령은 친구인 노태우 대통령에게 버림을 받고 백담사로 향했다. 로마의 시저는 ‘로마를 더 사랑했던’ 양아들 브루투스의 칼을 고스란히 받았으며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는 시안 군벌 장쉐량(張學良)에게 구금당해 시안사변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영국 총리 자리를 넘보던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이 공식 출마 발표 불과 2시간 전에 옥스퍼드대 동문이자 친구인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의 ‘총리 출마’ 선언으로 뒤통수를 맞았다.
역사는 역시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일까.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과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가 최근 잇따라 언론 인터뷰를 갖고 ‘대통령 연설문 유출’과 ‘비선 모임’을 폭로했다. 이들은 얼마 전까지 최씨의 최측근으로 활동하면서 비선 모임까지 참석했던 인물들. 박근혜 대통령과 최씨의 입장에서는 등 뒤를 비수에 찔렸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배신감을 나라와 민주주의가 ‘강남의 한 아줌마’에게 처절하게 농락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참담함에 어찌 비할 수 있을까. “정치는 늘 사람들을 배신한다”는 프랑스 철학자 장 프레포지에의 지적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송영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