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기술을 활용한 농작물 수확

팜모바일의 앱은 재배 일시, 작물 산출량, 수분, 엔진 정보 같은 농업경영학 데이터뿐만 아니라 트랙터, 콤바인을 비롯한 여러 기계의 경로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농업기술에 대한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과연 농부들은 실리콘밸리의 발명품을 구매하려 할까?

아이오와에서 옥수수와 콩을 재배하는 농부 히스 거록 Heath Gerlock은 3년 전 몇몇 광고들을 접한 적이 있다. 연료 사용, 엔진 정보, 식물 심기, 농약 살포, 거름 주기, 수확량 데이터 등을 추적할 수 있는 다수의 센서와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회사들이 내보낸 광고였다. 이를 통한 데이터 수집은 유용해 보였지만 문제는 너무 높은 가격이었다. 기계당 2만 5,000달러로, 투자한 만큼 회수가 힘들어 보였다. 더 큰 문제는 수집한 정보가 거록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IT기업들이 해당 정보를 화학, 장비, 유전, 비료 회사에 판매하기 때문이었다.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는 대신 거록은 신생기업을 설립하기로 했다. 농부 출신 한 명과 엔지니어로 팀을 꾸려, 트랙터에 센서를 설치하는 회사 팜모바일 Farmobile을 창업했다. 비용은 광고에서 봤던 가격보다 훨씬 저렴했고(1,200달러), 농부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데이터를 소유하고 통제할 수 있었다. 거록은 “IT 기업들이 농부들과 접촉을 끊었다”고 밝혔다.

팜모바일은 최근 폭발적인 기술 발전의 결과물 중 일부로, 농작물을 키우는 농부들을 겨냥한 기업이다. 작년 한 해 투자자들은 이른바 애그테크 신생기업에 사상 최고액인 27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애그펀더 AgFunder에 따르면, 2012년에 비해 5배나 증가한 규모다. 이 스타트업들은 차세대 로봇, 드론, 토양 및 작물 기술, 센서 등을 개발하고 있다. 2013년 이후 12개에 가까운 특수 창업지원 프로그램이 출범했고, 관련 콘퍼런스에는 버라이즌 와이어리스 Verizon Wireless, 삼성 같은 실리콘밸리 벤처자본가들이 몰려들고 있다.

하지만 수요보다 공급이 과도한 것처럼 보인다. 소규모 농가들은 수없이 쏟아지는 신상품과 서비스 때문에 당황하고 있다. 종종 복잡한 계약서가 의무로 따라오기도 한다. 이 계약서는 기존 장비와 소프트웨어, 유행하는 관행을 사용하지 말라고 강요하거나, 딱히 필요하지 않은 문제의 해결책까지 약속하고 있다.

이 같은 괴리로 인해 일부 사람들이 이미 경계하고 있는 ‘농업 기술 거품’이 터질 수도 있다. 애그테크 인사이트 AgTech Insight의 CEO 애런 매겐하임 Aaron Magenheim은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거품은 결국 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업체는 캘리포니아 주 샐리나스에 위치한 투자회사로 컨설팅과 기술 통합 업무를 병행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 기업 클라이너 퍼킨스 코필드 & 바이어스 Kleiner Perkins Caufield Byers는 소수의 애그테크 신생기업에 1억 달러를 투자했다. 투자 대상은 농가로부터 실제 판매 실적을 올린 기업에 한정했다. 클라이너 퍼킨스의 파트너 브룩 포터 Brook Poter는 이것이 핵심 테스트였다고 말한다. 일부 대규모 운영 농가를 제외하면 이 같은 신기술에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농가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까지 기회에 비해 분위기가 심하게 과열된 만큼 실패사례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애그테크의 매겐하임은 “실리콘밸리는 드론과 위성으로 무장하고 있겠지만, 사실 농부들이 바라는 것은 보다 기본적인 기술”이라고 지적했다. 더 나은 성능의 밸브, 관개기술, 사람과 장비를 추적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들판에서 기록한 모든 내용을 디지털로 저장하는 방법 등이다. 그들에겐 과거의 해충 문제 기록, 관개누수 위치 파악, 우물 모니터링 등을 보여줄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필요하다. 농부들이 기술 투자를 신중하게 진행하는 이유는 단 한번의 실패로 그 해의 전체 추수는 물론 소득까지 모두 망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농가는 신생기업의 말만 믿고 방향을 변경했는데, 가치 없는 고가의 장비만 떠안은 꼴이 되고 말았다. 사용의 용이성 문제도 있다(농업 분야에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다). 기술 장비를 설치하고 유지하는 건 골치 아픈 일일 수도 있다. 농장 일꾼 중 일부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장비의 복잡성이 애를 먹이기도 한다.

타일러 샤이드 Tyler Scheid는 가족과 함께 캘리포니아에서 샤이드 빈야드 Scheid Vineyards라는 와인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여러 기업들이 그의 농장에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센서, 드론 등을 판매하기 위해 꾸준히 홍보를 해왔다. 샤이드는 “유망한 기술도 많지만, 농업 환경 측면에선 실용적이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항공이미지는 매우 훌륭하지만, 이들로부터 유용한 정보를 추출하려면 몇 시간이 걸리는 데다, 확인하고 나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드론 비행 시간에는 배터리 수명이라는 제약사항이 있다”라며 “비행기가 더 넓은 범위를 커버할 수 있기 때문에 드론을 구매하는 것이 반드시 논리적인 선택만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샤이드는 단순한 데이터 뭉치가 아니라 실행 가능한 예측성 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현재 샤이드 빈야드 농장은 1990년대부터 토양의 수분을 측정하는 데 사용해왔던 중성자 수분 측정기처럼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기술에만 의존하고 있다.

새로운 장비와 서비스를 개발하는 기업에게 희소식도 있다. 전미농민협회(American Farm Bureau)가 실시한 인터뷰에서 약 75%가 앞으로 3년 간 새로운 기술에 투자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실리콘밸리의 애그테크 등은 콘퍼런스, 인큐베이터, 모임 등을 통해 농부와 투자자, 신생기업들을 연결해 주고 있다. 지난 봄에는 샐리나스에 위치한 창업지원기관 서부영농혁신센터 (Western Growers Innovation Center)가 농부들을 초청했다. 센터 내에 입주해 있는 신생기업에 아이디어와 피드백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IT 기업가들도 이 같은 움직임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워터비트 WaterBit의 공동 창업자 마누 필라이 Manu Pillai와 레이프 채스테인 Leif Chastaine이 좋은 예이다. 지난해 이들은 뒤뜰 조경용 토양-수분 센서를 새롭게 개선해 농부들에게 판매를 시도했다. 필라이는 “우리가 나타나면 사람들이 몰려들어, 나는 피지에서 안락한 은퇴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농부들은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3주만 사용하면 작동이 멈춰버리는 센서에 대해 광고 공세를 펼치는 실리콘밸리 사람들에게 지쳐 있었다(실제로 워터비트의 센서는 테스트를 끝낸 후 곧바로 고장이 났다). 두 사람은 회사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농부들과 더 많은 미팅을 진행했고, 캘리포니아 대학의 전문가들과 시스템을 실험해 좀 더 튼튼한 센서를 구현했다. 이를 통해 작물 종류와 위치, 농장크기, 개개인의 수요에 특화된 소프트웨어를 통합했다. 그 결과 10명의 농부들이 이번 여름 시범 테스트를 기꺼이 진행하겠다고 나섰다. 필라이는 “우리는 파는 것을 잠시 멈추고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By Jennifer Als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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