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WATCH]압도적 맨파워 '증권사관학교'…간판 내렸지만 '대우맨'은 영원하리~

■대우증권 2달뒤 합병 '역사 속으로'

‘국내 최초의 코리아 펀드 출시, 국내 최초의 민간 경제연구소 설립, 국내 최초의 트레이딩룸 설치’.

미래에셋대우는 전신인 대우증권(006800) 시절부터 수많은 ‘국내 1호’ 타이틀을 갖고 있다. 지난 1970년대 초반 증시 태동기에 설립된 대우증권은 그 후로 수십 년간 국내 증권업계의 독보적인 선두자리를 놓치지 않으며 한국 자본시장과 함께 호흡해왔다. 대우증권의 역사는 곧 한국 증권시장의 역사로 통하기도 한다.

대우증권은 압도적인 맨파워(Man Power)를 토대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면서 ‘증권 사관학교’로 자리매김해왔다. 대우증권에서 혹독한 트레이닝을 통해 길러진 대우맨들은 주요 증권사의 최고경영자(CEO)와 리서치센터장으로 맹활약 중이다. 이제 앞으로 두 달 뒤면 미래에셋증권(037620)과의 합병을 통해 새로운 통합법인으로 옷을 갈아입게 된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증권업계를 선도해온 대우증권맨의 1등 DNA와 강한 자부심이 화학적 결합으로 통합법인에 잘 녹아든다면 또 다른 성공의 역사를 써내려갈 수도 있다. 증권업계가 대우증권의 해체가 아닌 강력한 시너지를 통한 새로운 1등 증권사의 탄생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지난 1990년 1월 국내 최초로 설치된 트레이딩 룸. 당시만 해도 첨단 전산기기와 정보통신장비를 갖춘 트레이딩 룸은 파격적인 시도였다. /사진제공=미래에셋대우
80~90년대 업계 독보적 1위

젊은 인재 빨아들이는 블랙홀

손복조·유상호 등 CEO 배출

리서치센터장도 싹쓸이 수준



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은 지난 1970년 9월 설립된 동양증권이 모태다. 1973년 김우중 회장의 대우실업에 인수, 계열사로 편입되면서 대우와 첫 인연을 맺었다. 10년 뒤인 1983년에는 업계 선두인 삼보증권을 다시 흡수합병하며 대우증권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당시 국내 증권업계 1위와 2위가 만나 새롭게 태어난 대우증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존재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당시 대우증권의 시장점유율은 20%를 훌쩍 뛰어넘으며 2위 증권사와의 격차를 3배 이상으로 벌렸다. 직원 수와 지점 수 역시 다른 증권사들의 두 배가 훨씬 넘었다. 1989년 대우경제연구소로 입사해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 등을 지낸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1990년대만 해도 증권업계는 대우증권과 나머지 증권사로 분류되던 시절”이라며 “워낙 압도적인 격차로 업계를 이끌다 보니 당시 재무부를 비롯한 정부 당국도 증권 관련 정책이나 제도에 대해서는 항상 대우증권과 먼저 논의하고는 했다”고 회고했다.

독보적인 1위 증권사로 거듭나면서 뛰어난 인재들은 앞다퉈 대우증권으로 몰려들었다. 1980년대 말 대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은 회사이던 대우그룹 공채 당시 많은 지원자는 입사 1지망으로 그룹의 모태인 종합상사나 건설사가 아닌 대우증권을 적어냈다. 당시의 대우증권은 대학을 갓 졸업한 젊고 우수한 인재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나 다름없었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대우증권에 입사했던 인재들은 오늘날 증권사와 자산운용사·투자자문사 등 금융투자업계 곳곳에서 맹활약 중이다. 대우증권이 인재 양성의 요람 역할을 하는 ‘증권 사관학교’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국내 금융투자업계의 최고경영자(CEO)들 가운데는 대우증권 출신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올해로 10년째 한국투자증권을 이끌고 있는 증권업계의 대표적 장수 CEO인 유상호 사장은 대우증권에서 처음 증권맨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전병조 KB투자증권 사장은 대우 공채 출신은 아니지만 대우증권에서 투자은행(IB)부문 대표 부사장을 지냈다. 공교롭게도 이 둘은 지난해 대우증권 인수전에서 한투와 KB의 수장으로 맞붙기도 했다. 또 대우증권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하며 사장을 지냈던 손복조 토러스투자증권 회장을 비롯해 신성호 IBK투자증권 사장과 김해준 교보증권(030610) 사장, 정영채 NH투자증권 IB사업부 대표의 이력서에도 모두 대우증권 근무경력이 첨부돼 있다.

자산운용업계에서도 대우증권 출신 인재들은 다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1977년 대우증권에 입사한 1세대 대우맨 강창희 트러스톤연금교육포럼 대표를 포함해 김영호 트러스톤자산운용 대표와 김석중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 대표, 한동주 NH-아문디운용 대표 모두 대우증권과 인연을 맺고 있다. 이 밖에 나홍규 인피니티투자자문 대표, 윤재현 파레토투자자문 대표, 이철순 와이즈에프엔 사장, 이종승 IR큐더스 대표, 황건호 전 금융투자협회 회장 등 대우 출신 증권맨들은 투자자문사는 물론 금융정보업체와 IR컨설팅업체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증권사의 꽃으로 불리는 애널리스트 세계에서도 옛 대우맨의 명성은 독보적이다. 이종우 센터장 외에도 양기인 신한금융투자 센터장, 이경수 메리츠종금증권 센터장, 조익재 하이투자증권 센터장, 최석원 SK증권 센터장,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센터장 등 주요 증권사의 리서치센터장은 모두 대우증권 출신들이 꿰차고 있다.

26년이 지난 현재의 미래에셋대우의 트레이딩 센터 모습. 2010년 국내 최대 규모로 재탄생한 트레이딩 센터는 대형 월 보드와 원형 LED 티커를 장착해 금융시장의 동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권욱기자
이한구·안종범·강석훈 등

경제硏 출신은 정계 진출도


체계적 교육·연수시스템 강점



대우 출신 증권맨들은 증권·운용사들이 즐비한 동여의도를 넘어 국회가 자리 잡은 서여의도로까지 활동 무대를 넓혀가고 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공천관리위원장을 지낸 이한구 전 의원은 정계에 진출한 대표적인 대우 출신 인사로 꼽힌다. 1984년 국내 최초의 민간 경제연구소로 설립된 대우경제연구소 사장을 거쳐 정계에 입문한 이 전 의원은 박근혜 정부의 초기 경제 브레인 역할을 도맡았다. 19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청와대에 입성한 안종범 정책조정수석과 강석훈 경제수석 역시 대우경제연구소 출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대우증권 출신 인재들이 1999년 대우그룹의 공중분해 이후에도 사회 곳곳에서 맹활약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대우맨들은 이구동성으로 오랫동안 증권업계를 선도하며 만들어진 1등 DNA가 밑거름이 됐다고 말한다. 신성호 IBK투자증권 사장은 “각자 자기 분야에서 최고라고 여기는 자부심과 새로운 분야에서도 최고가 되겠다는 열정이 대우맨을 한층 성장하게 하는 자양분이 됐다”고 말했다. 대우증권에서만 30년간 근무해온 홍성국 미래에셋대우 사장 역시 “지난 46년간 자본시장을 이끌며 쌓아온 경쟁력과 차별화된 교육 시스템의 토대 속에 길러진 인재들이 여러 분야로 배출되면서 오늘날 인재 사관학교의 명성을 얻게 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대우증권은 인재 사관학교라는 명성에 걸맞게 정성 들여 뽑은 인재를 1대1 도제식 교육을 통해 엄격하고 혹독하게 가르치기로 유명했다. 신입사원들은 입사 직후 연수원에서 1년 가까이 거시경제와 개별산업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실무업무에 이르기까지 심도 있는 교육을 받았다. 현업부서에 배치돼서도 업무를 완벽히 익힐 때까지 하드 트레이닝은 계속됐다. 신성호 사장은 “새벽 1~2시까지 일하는 것은 예사였고 밤샘근무도 잦았다”며 “워낙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집에 다녀오겠습니다’가 당시 직원들의 퇴근 인사말이었다”고 떠올렸다.

직원들의 재교육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1980~1990년대 당시 증권업계에서 유일하게 대우 직원들은 해외유학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강창희 대표는 “극심한 불황기에도 회사의 배려로 일본 유학을 가 8년간 체류하며 공부한 덕분에 일본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며 “칠순이 다된 지금까지 현역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시의 연수 경험 덕분”이라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미래에셋대우 본사 전경. 미래에셋대우는 연말 통합법인 공식 출범에 맞춰 을지로 센터원 빌딩으로 이전한다. /권욱기자
끈끈한 조직문화로 1등 자부심

합병돼도 사람 투자 지속돼야



혹독한 트레이닝 속에서도 직원들은 자신의 상사를 선배나 스승으로 대했다. 말단사원이나 대리라도 궁금한 것은 직접 사장을 찾아가 물어보고 때로는 열띤 토론도 펼쳤다. 신성호 사장은 “하늘과 같은 선배 방에 찾아가 물어보고 토론했던 경험이 지속적인 자양분이 됐다”고 회고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대우증권에 입사해 성장해온 직원들은 ‘대우맨’이라는 자부심이 강했고 회사를 떠나서도 대우증권을 친정으로 여기며 강한 연대감을 갖게 됐다.

대우맨들은 수십 년간 업계를 이끌어온 대우증권의 성공 DNA가 올해 말 새로 출범하는 통합법인을 살찌우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유상호 사장은 “한때 대우증권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아쉬움은 남지만 대우증권의 1등 DNA와 끈끈한 조직문화는 앞으로 통합법인을 더욱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병조 사장도 “대우증권은 간판과 주인만 바뀔 뿐 오랫동안 축적돼온 경쟁력과 직원들의 자부심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아낌없이 투자하는 문화가 오늘의 대우증권을 만들었듯 통합 이후에도 인재 중심 경영은 계승·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영호 트러스톤자산운용 대표는 “필요한 사람을 그때그때 뽑아 쓰는 천수답식 채용이 아니라 항상 인재를 가르치고 투자하는 문화는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현상·유주희·송종호기자 kim012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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