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일 국회 예산결산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최순실 게이트’로 사실상 국정이 마비되면서 경제 관련 대통령 주재 회의를 비롯해 주요 정책 결정, 인사 등이 줄줄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된다. 올해와 내년은 한국경제에 어느 때보다 중대한 고비다. 내년부터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사상 처음으로 줄어들기 시작하며 잠재성장률 역시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외여건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나타난 정책 공백에 따른 불확실성은 기업 등 경제주체들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은 우리의 구조개혁이 기대보다 미진한 점을 지적하면서도 꼭 필요한 시도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번 게이트로 이러한 개혁 동력이 상실되고 있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했던 규제개혁장관회의부터 문제가 예상된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규제는 손톱 밑 가시”라고 비판하며 지난 5월까지 취임 후 다섯 차례에 걸쳐 규제개혁회의를 열었지만 앞으로 회의가 열려도 무게감은 현격히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공공개혁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현 정부가 추진한 4대 개혁(공공·노동·금융·교육) 중 그나마 진전이 있다고 평가받는 게 공공이다. 박 대통령은 6월 공공기관 워크숍을 개최해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고 에너지·환경·교육 공기업의 기능조정을 발표했다. 내년에는 정책금융·산업진흥·보건의료 기능 조정을 예고한 상태지만 실행될지 미지수다. 오히려 공공 부문 노조는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성과연봉제 폐지 주장을 강화하고 있어 그나마 도입했던 성과연봉제도 후퇴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주재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도 다시 열릴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태다. 이와 함께 현행법상 대통령이 주재해야 하는 과학기술전략회의(8월 주재)의 중량감도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안 그래도 미국·영국·중국·독일·일본 등에 뒤처진 4차 산업혁명에 아예 추격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밖에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34년 만에 부활한 ‘무역투자진흥회의’ 일정도 밀리고 있다. 박 대통령이 각별히 신경을 쓰는 회의로 경제 중장기 체질을 개선하는 정책을 주로 내놓는다. 당초 이달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무기 연기됐다. 국민경제자문회의, 국가재정전략회의, 문화관광산업 경쟁력 강화회의 등의 차질도 예상된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이번 사태로 우리 경제 어딘가에 멍이 들었을 것”이라며 “당장 눈에 보이진 않지만 잠재성장률 곡선의 각도가 조금 내려가 중장기적으로 성장률 곡선의 하락 폭이 더욱 급격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도 “국정 공백으로 이렇다 할 힘도 못 쓰고 저성장의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가장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당장 눈앞에 산적한 문제도 결정이 줄줄이 미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자고 일어나면 불어나 있는 가계부채가 발등의 불이다. 정부는 3일 발표되는 부동산 대책과는 별도로 8·25 가계부채 후속대책을 연내 내놓을 예정이다. 개인이 내야 할 총 원리금 상한선을 규제하는 ‘총체적원리금상환비율(DSR) 도입 기준’, 상호금융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이 주요 내용인데 국정 공백으로 시의적절한 방안이 나올지 미지수다. 내실 없는 대책은 가계부채 폭탄만 더욱 빠르게 키울 수 있다.
금융권 고위직 인사 시계가 멈추며 각 기관의 경영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우리은행장(이광구), 기업은행장(권선주)은 12월 임기가 만료된다. 유재훈 예탁결제원 사장은 2일 임기가 만료돼 당분간 공석이 될 예정이며 홍영만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도 17일 임기가 만료된다. 기술보증기금은 1월, 수출입은행은 3월 수장의 임기가 끝나고 금융감독원 기획·경영지원담당 부원장보는 공석이다.
11월11일 마감되는 우리은행 본입찰에서 외국계 투자자들의 이탈도 걱정거리다. 지난 9월 18곳이 투자의향서를 제출해 일단 흥행에는 성공한 상태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로 국가신용등급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실제 증시도 악영향을 받고 있어 외국계 투자자들의 참여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태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거국중립내각·책임총리제 등 어떤 형태가 됐든 경제팀 직원들이 실무를 해야 하는데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어 답답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세종=이태규기자·조민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