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서소문청사 13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덕수궁과 정동·서울시내의 모습. 카페가 있어 차를 마시며 여유를 찾을 수 있다.
“1897년 10월12일 고종 황제는 근대적 자주독립국가임을 세계에 알리고자 환구단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황제즉위식을 위한 어가행렬 앞에는 태극기가 먼저 가고 고종황제는 황룡포에 면류관을 쓰고 금으로 채색한 수레를 탔다. 경운궁(덕수궁)에서 환구단에 이르는 길가 좌우로 어가를 호위한 군사들의 위엄이 장대했다.”(독립신문 1897년 10월14일자) 대한제국의 중심지였던 덕수궁과 정동이 ‘대한제국의 길(Korean Empire Trail)’로 조성된다. 서울시청 앞과 환구단, 덕수궁, 중명전, 구 러시아공사관, 성공회성당 등 정동 일대 역사문화명소 20여개소를 아우르며 한 바퀴 도는 2.6㎞의 역사탐방로다. 비록 1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막을 내렸지만 대한제국의 역사는 국권 회복과 국민국가를 태동시킨 개혁의 역사라는 것이 ‘대한제국의 길’을 조성하는 취지다. 서울시는 2018년까지 통합디자인을 통해 역사탐방로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정동길이라는 국적불명 낭만에 파묻힌 우리 역사의 재조명이라는 취지다. 황궁우는 화강암으로 된 기단 위에 3층 8각 지붕으로 1899년에 만들어졌다. 그 옆에는 1902년 세워진 석고단(石鼓壇)이 있는데 석고의 몸체에 부각된 용무늬는 전통시대 조각의 걸작으로 꼽힌다. 중국 베이징까지 가서 ‘천단’을 찾는 사람들은 우리의 환구단도 살펴보기를 바란다.
환구단에서 다시 나와 서울광장을 지나면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이 보인다. 한글 발음만 보면 대한제국의 ‘대한’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자세히 보면 한자가 다르다. ‘大漢門’이다. 원래는 ‘대안문(大安門)’이었는데 1906년 수리를 하면서 ‘대한문’으로 바꿨다고 한다. 덕수궁은 서울시내 가장 가까이에 있는 녹지다. 당초 ‘경운궁’이었던 궁궐 이름은 1907년 ‘덕수궁’으로 변경된다.
대한문을 돌면 왼쪽에 바로 보이는 것인 서울시청 서소문청사다. 건물 자체와는 별로로 이 건물의 13층에 있는 전망대가 볼 만하다. 카페로 구성돼 있는데 창밖으로 덕수궁과 정동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서울시는 최고의 전망을 살리기로 했다. 현재 유리로 막혀 있는 이 전망대를 15층 옥상으로 옮기고 서울시내를 넓게 조망할 수 있는 ‘광무전망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건물 직원들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데 앞으로는 전망대와 바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도 설치한다고 한다.
대한제국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환구단의 모습. 제단인 ‘환구단’은 없어지고 위패를 보관했던 ‘황궁우’만 남아 있다.
전망대를 나오면 그 유명한 ‘덕수궁 돌담길’이다. 덕수궁 담벽을 따라 고풍스러운 인도가 이어진다. 연인이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설이 한때 있었다. 현재의 서울시립미술관 자리는 과거 가정법원이었는데 이혼소송을 하러 가는 부부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생겼다고 한다. 대한제국의 길은 배재학당 동관, 정동교회, 이화여고 심슨기념관, 중명전 등으로 이어진다. 배재학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학교로 1885년 서양인 선교사에 의해 세워졌다. 현재 남아 있는 ‘배재학당 동관’은 딱 100년 전인 1916년에 세워진 건물이다. 골격은 그대로 둔 채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중명전(重明殿)이다. 원래는 덕수궁의 부속건물이었지만 덕수궁이 쪼그라들면서 중명전만 따로 떨어졌다. 이곳이 바로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중명전의 ‘명(明)’은 왼쪽이 ‘날 일(日)’자가 아닌 ‘눈 목(目)’자로 씌여 있다. 아마 정사를 잘 살피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물론 고종은 그러지 못했다.
이후 언덕을 오르게 된다. 언덕 정상에는 정동공원이 있고 가장 높은 위치에 구 러시아공사관이 있다. 고종이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이른바 ‘아관파천’의 장소다. 고종은 명성황후 시해사건 후 1896년 이곳에 피신해 1년여를 있다가 경운궁으로 옮겼고 이후 ‘대한제국’을 선포하게 된다. 지금은 르네상스풍이라는 구 러시아공사관의 3층 타워만 남아 있다.
최초의 서양식 학교인 배재학당 건물 모습. 학교는 1885년 처음 설립됐고 현재 건물인 ‘배재학당 동관’은 1916년 만들어진 것이다.
정동공원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서 오른쪽으로 돌면 오른쪽에 빈 공터가 보인다. 서울시내에 이런 빈터가 있는 것도 흔치 않다. 바로 선원전(璿源殿) 터다. 선원전은 왕의 얼굴그림(어진)을 보관하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일제는 어진을 창덕궁으로 보내고 전각을 뜯어 없앴다. 이후 다양한 이름의 건물들을 거쳐 경기여고가 들어섰는데 이것이 1988년 강남으로 이전한 후 지금까지 빈터로 남아 있다. 서울시는 2025년까지 선원전을 복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선원전을 지나서는 별다른 유적은 없다. 광화문 광장에 가까이 면세점이 있어 외국인 관광객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대한제국의 길’은 성공회성당을 거쳐 과거 국세청별관 부지(프레스센터 맞은편)에서 끝난다. 이 부지는 현재 시민광장인 ‘세종대로 역사문화 특화공간’을 만들기 위해 공사 중이다.
고종이 아관파천을 했던 구 러시아공사관 모습. 현재는 공사관 건물의 3층 타워만 남아 있다.
서울시는 이러한 코스로 ‘대한제국의 길’을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현재 이러저러한 수리공사로 볼 수 없는 곳은 환구단과 중명전, 그리고 시민광장이다. 이들은 내년 초부터 순차적으로 공개된다. 기자가 이번에 돌아본 길은 서울시의 코스 번호 원안과는 다소 다르다. 서울시의 계획은 기자가 걸은 방향과 반대다. 덧붙여 선원전 터 앞에서부터 동화면세점까지 거리에는 최근 흡연자들이 갑자기 늘어났다. 건물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직장인들이 이들 길가에 나와 있어 분위기가 좋지 않다. 개선될 필요가 있겠다. /글·사진=최수문기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