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제도 시행 후 만 11년이 흐른 지금까지 법원에 접수된 증권집단소송은 단 9건에 불과하다. 애초 소송 남용에 따른 기업활동 위축을 걱정했던 목소리는 오히려 제도의 존폐에 대한 우려로 바뀌었다. 실제 대법원이 허가를 결정한 이번 씨모텍 사건 역시 2011년 소송이 제기된 지 6년 만에 최종 허가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제도의 활용이 미비한 이유로 본안 소송 이전에 집단소송 제기 허가를 구하는 별도의 3심 소송을 먼저 거쳐야 하는 이중 구조와 함께 소송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요건 자체가 까다롭다는 점을 꼽고 있다. 이에 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증권집단소송 제도의 활성화를 막는 요인으로 꼽히는 여러 쟁점을 판례로 해결하고자 의지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대법원이 판단한 쟁점은 크게 네 가지다.
대법원은 우선 소송 허가 절차에서는 본안 소송의 내용까지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동안 집단소송의 피고가 된 증권사나 기업은 “집단소송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소송 허가 절차에서 피고의 책임이 인정되는지를 먼저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피고가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는지 아닌지는 추후 본안 소송에서 심리할 대상일 뿐 소송 허가 단계에서 심리해야 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대법원의 이런 판단으로 집단소송 허가 소송에서 본안의 내용을 검토하느라 허가 결정까지 시간이 지체되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게 됐다.
또 집단소송의 잠재적 원고의 범위나 피해액수를 산정하는 방식도 피해자 측에 유리한 판단을 냈다.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씨모텍의 유상증자 이전에 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가 유상증자로 신주를 받은 투자자가 중간에 주식 일부를 팔았을 때 여전히 원고가 될 수 있는지였다.
예를 들어 씨모텍의 구주 100주를 보유한 투자자가 유상증자에서 100주를 추가 확보한 뒤 100주를 나중에 팔았을 경우 처분한 100주를 구주로 볼 것인지, 신주로 볼 것인지에 따라 이 투자자가 피해자인지가 달라진다. 이번 소송에서 대표당사자는 처분한 주식을 구주라고 판단해 이 경우 여전히 피해자에 속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대법원은 “총원의 범위를 어떤 방법으로 특정하는지에 따라 총원의 범위와 손해액의 규모에 차이가 생길 수 있지만 대표당사자가 선택한 방법이 특히 불합리하다거나 그 방법에 의하여 총원의 범위를 확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대표당사자가 선택한 방법에 따라 총원의 범위를 확정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투자자 측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이와 함께 증권집단소송의 대상에 증권사도 포함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동부증권 측은 이번 소송에서 “증권집단소송의 피고는 주식을 발행한 업체, 즉 상장업체에 한정된다”고 주장했다.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 12조에 소송을 낼 수 있는 요건을 기술하면서 주식을 발행한 ‘피고회사’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이 문제가 됐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집단소송법 다른 조항을 보면 손해배상청구의 상대방이 될 수 있는 자가 반드시 증권 발행회사에 한정돼 있지 않다”며 회계법인이나 증권사 역시 소송의 대상이라고 정리했다.
이번 사건을 담당한 송성현 한누리 변호사는 “대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그동안 본안 소송을 받을 수 있는 요건에 대한 불명확성이 제거됐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결정에 대해 동부증권 관계자는 “허가 소송도 2012년 말에 제기돼 5년여 만에 끝나고 이제 본안 소송에 들어가는 것으로 시간이 꽤 걸리는 것으로 안다”며 “소송대리인을 통해 본안 소송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흥록기자 ro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