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 서른 둘이다!!! 뭐 어쩌라고!!!
# 첫 번째 돌 = ‘그래, 나 혼자 산다’
(팀장·팀원들과 함께 한 점심시간)
오그래 팀장 : “다들 주말에 나 혼자 산다 봤어? 슈퍼모델 이소라 나왔잖아”
박송곳 대리 : “저도 그거 봤어요, 세상에 혼자 산지가 25년째라면서요? 남자 친구가 있더라고, 그래도 외롭긴 한가 봐요, 강아지도 많이 키우고 그런가 보던데요”
신입사원 김눈치 : “근데 같은 여자가 봤을 때는 정말 멋있더라고요. 골드 미스 느낌도 나고요. 혼자 사는 것도 멋있는 것 같아요”
박 대리 : “혼자 산다고 다 그렇게 사나 뭐. 솔직히 옆에 챙겨줄 사람 없으면 외롭잖아, 안 그래 이서경 대리?”
김 사원 : “맞아, 이 대리님도 혼자 사시죠? 혼자 살면 어때요? 혼자 사는 게 편하세요? 아직 결혼하신다는 이야기가 없어서 ^^”
오 팀장 : “너무 고르다 보면 결혼 힘들어지잖아. 남자 거기서 거기야. 적당히 고르고 시집가야지~ 시대가 아무리 변했어도 나이 들수록 옆에 누군가가 있어야 되는 건 맞다니까. 안 그래 박 대리?”
박 대리 : “하하, 그렇죠. 지지고 볶아도 와이프 있는 게 백배 낫죠. 팀장님 보고 저도 바로 결혼한 거 아니겠습니까. 이 대리도 얼른 결혼해야지. 내가 소개팅 주선 한 번 할게. 아, 이 대리 나이에는 선을 더 많이 보나?”
나 : “^^…”
‘쿨한’ 척 했지만 오늘 밤은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그냥 웃었다. 29살이 되면서부터 이런 질문은 내 설명을 필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결혼한 남자들은 마치 나를 미리 해 놓았어야 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대업 과제인 결혼을 미뤄놓은 아이처럼 다룬다.
처음에는 일일이 설명하는 편이었다. ‘결혼할 거예요. (제발 제 걱정은 접어 두시고...) 제일 먼저 청첩장 드릴게요’라며 넉살 좋게 넘어가곤 했는데, 이런 내 대답이 반복되는 횟수가 늘어나면 날수록 지극히 사적인 ‘결혼’이라는 주제가 내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내 얼굴로 날아드는 첫 번째 돌직구. 답변을 원하지 않는 질문이라면 그저 웃어 넘겨라. 직장생활 5년 차에 접어든 나는 가장 효율적인 방어 자세를 터득했다.
# 두 번째 돌 = ‘크리스마스를 한참 지난 나이’
(거래처 부장님과 첫 대면한 자리에서)
거래처 A 부장 : “이 대리님,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나 : “서른 둘입니다”
A 부장 : “아…그러시구나…”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A 부장은 신중하게 다음 말을 골랐다)
A 부장 : “어려 보이셔서 20대인 줄 알았어요”
나 : “^^…감사합니다”
A 부장의 눈빛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대개 첫 만남 자리에서 내 나이를 듣게 되면 저런 반응을 보인다. 머릿속으로 이런 저런 생각이 스치는 찰나 속 “아주 애매한 나이”라는 반응 말이다.
요즘 32살은 많은 나이가 아니라는 데 대부분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적은 나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다.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잌과 같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팔리지 않고 폐기 처분되기 때문이다’라는 이야기를 24살에는 가볍게 웃어넘겼다. 하지만 30대 중반을 내다 보는 지금 나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넘길 만큼 가벼운 얘기가 아닌 듯 싶다.
8년 전 그러니까 내가 24살일 때, 기껏해야 서너 살 많은 남자 선배들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잌이야. 크리스마스 이브를 기다리듯 24살까지는 모두가 열광하지. 하지만 막상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팔리지 않고 싼 값에 처분되는 크리스마스 케잌처럼 25살은 꺾이는(?) 나이야. 여자도 25살 아래의 여자와 25살을 넘은 여자로 나뉘어서 25살 넘은 여자는 여자로서의 매력도 반감되지.”
당시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웃어 넘겼다.
8년이 지난 지금 몇 번을 곱씹어도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날 안타깝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아진 건 사실이다. 마치 사그라지는 불꽃을 바라보듯이.
저기요, 저 나름 괜찮거든요?
사적인 자리는 물론이고 공적인 자리에서도 달라지는 건 없다. 신상털기는 한국 사회에서 늘 자연스럽지 않던가.
조금 더 예의를 차리는 사람은 조심스럽게 학번을 물어 나의 나이를 가늠하곤 한다. 뭐, 어차피 같은 거 아닌가.
25살 넘은 여자라면 누구나 겪는 두 번째 돌직구다.
# 세 번째 돌 = ‘여자니까?, 그래서 어쩌라고??’
(여자 동기들과의 커피 브레이크 자리에서)
나 : “영업 2팀 팀장님 둘째 가지셨다면서?”
해외 마케팅팀 김소신 대리 : “진짜? 대단하시다. 요새 하나 낳아서 기르기도 힘든데.”
나 : “그러게, 그럼 언제 출산휴가 들어가셔?”
영업 2팀 박현실 대리 : “내년 3~4월쯤 들어가실 건 가봐.”
김 대리 : “그럼 영업 2팀은 어떻게 되는 거야?”
나 : “그러게, 복귀해도 2팀으로는 바로 못 오시지 않을까.”
박 대리 : “아무래도 그렇지, 전례가 있잖아. 대개 한직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지. 해외 지사 발령받고 싶어하셨는데 그것도 물 건너 갔다고 봐야지. 다른 남자 동기들한테 기회가 돌아갈 테니…”
김 대리 : “출산장려국가면 뭐해. 임신했다고 하면 회사에서 물먹기 일쑤에 다 잡은 기회도 뺏기고, 애 낳고 1년 쉬니 좋겠다는 속도 모르는 말까지 들어야 하잖아. 진짜 불공평하다”
박 대리 : “팀장님도 안되긴 했는데 솔직히 우리도 막막하긴 해. 당장 팀장님 들어가시면...”
여성 직장인의 어쩔 수 없는 딜레마가 바로 출산이다.
축복받아야 할 임신이 함께 일하는 팀원들에게는 조심스럽고 미안한 일이 되고 만다.
참 이기적이게도 나 역시 여자라서 십분 이해한다고 말은 하지만 막상 내 일에 더 정확히는 그로 인해 업무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면 정색부터 하게 되지 않을까.
언젠가 출산을 하게 될지 모를 내게 스스로 던지는 세 번째 돌, 어디서 언제 어떻게 날아올지 모를 변화구다.
영업2팀 박현실 대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팀장이 여자이며 출산 휴가를 들어간다면?’ 이라는 가정을 해봤다.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면서도 내 일이 늘어나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할 거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여자인 나조차 그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올해 나는 32살이 됐다. 그리고 두 달 후에는 33살이 된다. ㅠㅠ
입사 5년 차에 접어든 중견기업 마케팅 부서 대리.
아주 잘 나간다고는 할 수 없지만 회사에서는 나름 실력을 인정 받고, 따르는 후배도 적지 않다. 거래처에서 인기도 꽤 좋은 편이다. (물론 싱글녀라는 이유로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편의일 수도 있지만)
양심상 ‘골드미스’라고는 못 하겠다. (연봉 수준이 ‘골드’는 아니다!!)
그래도 ‘실버미스’는 되지 않을까?
‘나 정도면 괜찮다’는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이런 자신감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는 게 갈수록 불편해진다.
사람들은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32살’, ‘싱글’, ‘여자’라는 세 가지 사실만 놓고 추리를 시작한다.
부하 직원 사람 만들기 위해 엄하게 가르쳐도,
늦게까지 남아 코피 흘리며 야근을 해도.
거래처의 말도 안 되는 ‘갑질’에 제대로 쌍욕을 해도
‘결혼 안 한 여자’라서 그렇다는, 묘한 연대와 공감의 분위기가 내 주위를 휘감는다.
내가 서른 둘에 미혼 아니 비혼이라고 밝혔을 때 사람들의 표정이랄까...
하하하하하 나도 이렇게 맞받아치고 싶다
나의 수백, 수천, 수만 가지 행동을 모두 한 줄로 설명할 수 있단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다.
대체 내 나이와 성별이 무슨 상관이지?
복잡하게 얽힌 누군가의 행동의 시작부터 끝까지 ‘비혼인 32살 여자 대리’라는 팩트만으로 설명한다는 게 그리고 그걸 듣는 사람이 납득한다는 게 전혀 이해되지 않지만,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같은 설명에 수긍하는 탓이다.
‘비혼·32살·여자 대리’
다시 곱씹어도 나를 응축해서 보여줄 수 있는 게 ‘단 한 가지’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나를 판단하는 데 가장 많이 쓰이는 잣대이자 기준이 되어버린 것들.
여자라서 그리고 서른 둘이라서 게다가 비혼이라서 결코 쉽지 만은 않은 나의 직장생활.
‘#오늘도_출근’은 이런 틀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나와 내 주변의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들이다. 오늘도 출근하는 2030 모든 여성들에게 바치는 공감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한다.
/김나영기자 iluvny23@sedaily.com
*서울경제썸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똑똑한 2030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끌고 가는 과정에서 작은 힘이나마 보태기 위해 디지털 콘텐츠 기획 ‘2030 W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2030 W 프로젝트’는 여성 창업인 릴레이 인터뷰 ‘#그녀의_창업을_응원해’를 비롯해 여성이 직장에서 겪는 각종 에피소드를 다룬 서경씨의 직장일기 ‘#오늘도_출근’, 여성 직장인을 위한 맞춤형 재테크 코너 ‘서경씨의 #샤넬보단_재테크’, 최신 라이프스타일 정보는 물론 똑똑한 쇼핑팁을 알려주는 ‘서경씨의 #썸타는_쇼핑’, 웹툰·레고 등 이색 취미를 갖고 있는 기자의 생생한 체험기 ‘서경씨의 #소소한_취미생활’, 30대 초반 여기자들의 은밀한 연애담을 다룬 ‘서경씨의 #시크릿_연애일기’ 등을 요일 별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서울경제의 애칭인 ‘서경’씨를 통해 2030 여성 독자분들께 친구처럼 편하게 다가서 양질의 디지털 콘텐츠를 제공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 여성들이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꾸리는 데 보탬이 될 콘텐츠 생산을 위해 더욱 깊이, 더욱 뜨겁게 고민하겠습니다.
‘#오늘도_출근’의 프롤로그는 32살 싱글녀 이서경 대리가 결혼과 관련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느끼는 곤혹스러운 감정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오늘도_출근’은 2030 여성들의 생생한 직장 생활 속으로 뛰어 들어가 마치 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현장감 높은 이야기들로 꾸며질 예정입니다. 공유하고 싶은 에피소드가 있으시면 언제든 메일로 제보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