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임종룡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가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이호재기자.
한국 경제가 ‘퍼펙트스톰’ 앞에 섰다. 보호무역주의 기치를 내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최순실 게이트’, 경제부총리 공백, 경기 부진 등 온갖 악재에 휘청이는 우리 경제가 ‘카오스’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장 안보 문제가 불거지며 가뜩이나 취약한 소비심리의 추가 위축이 우려되며 기업들의 투자심리도 움츠러들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우려되는 것은 경제주체들의 심리위축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주한미군 철수, 주둔비용 전액 한국 부담, 남북전쟁 시 미개입 등을 언급한 적이 있어 안보 불안감이 커지고 이는 가계·기업의 경제심리를 위축시킬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에 조사된 지난 10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1.9로 전월(101.7)과 비슷했고 제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도 71로 9월과 같았지만 11월 조사 때부터 급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시장 불안으로 외국인들의 투자심리도 얼어붙을 가능성이 높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트럼프가 공약대로 정책을 펼지, 누그러진 정책을 펼지 가늠이 안 되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우리 기업들의 투자의욕도 꺾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수출 역시 타격이 우려된다. 대선 경선전 때부터 줄기차게 외쳐온 이른바 미국판 ‘쇄국’ 통상정책이 현실로 다가올 수도 있다. 한국은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의 일자리를 뺏고 있다고 언급한 5개국(중국·멕시코·일본·독일·한국) 중 하나다. 트럼프 당선인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우리 전체 수출액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약 15%(698억달러)로 중국에 이어 2위다.
정 연구원은 “이번 선거 결과 상·하원도 공화당이 접수하면서 트럼프의 정책이 힘을 받을 것”이라며 “트럼프는 유권자의 뜻을 고려해 한미 FTA 재협상을 추진할 수 있고 미국의 힘을 감안하면 실제 재협상이 이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자국 제조업을 보호하기 위해 주요 공산품에 대한 관세철폐 시기를 연장하는 동시에 법률과 의약 시장 추가 개방 등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악의 조치인 ‘양허정지’가 이뤄진다면 오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약 31조원(269억달러)의 수출 피해와 24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보호무역주의 강화는 불가피하다. 미 상무부의 반덤핑관세 조사 재량권을 강화하는 ‘무역특혜연장법(TPEA)’ 등을 활용해 우리 기업들에 대한 비관세장벽 높이기에 나설 수도 있다. 제현정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국가 간 협정인 FTA를 개정한다 해도 당장 일자리가 생기지는 않는다”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우선 반덤핑관세 등 비관세장벽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외국 기업들을 옥죄고 자국 기업은 혜택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해온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또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과 멕시코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세계 모두가 무역 빗장을 걸어 잠글 가능성도 제기된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경제에는 치명적이다.
우리는 이러한 위기에 대응할 경제사령탑도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후임자가 지명돼 힘이 빠졌고 임종룡 후보자 역시 아직 인사청문회 날짜도 잡히지 않았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환보유액이 3,600억달러라고 하지만 시장에서 한 번 쏠림 현상이 나타나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일본과의 통화스와프를 하루빨리 체결하고 미국과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리스크가 부풀려졌다는 시각도 있다. 문종철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새 행정부가 들어선 뒤 2년 차에 한미 FTA 재협상을 개시해도 타결되려면 트럼프 1기(4년) 임기 내에는 힘들 것”이라며 “또 미 의회가 (트럼프의) 상식을 벗어난 보호무역 조치에 동의할지도 아직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라도 금융시장은 2~3개월 조정 후 정상궤도에 진입한다”며 “실물경제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그동안 우리는 충분히 대비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세종=박홍용·구경우·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