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 확충…1조달러 투자, 친정 벽 넘을 수 있을까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 승리 후 가장 먼저 구체화한 공약은 인프라 부문이다. 1조달러의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 인프라 사업에 쏟아붓겠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트럼프 시대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미 증시가 그의 당선 후 3일 연속 축포를 쏜 배경이다.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는 당선 연설에서 정책과 관련해 “도시를 뜯어고치고 고속도로와 교량·터널·공항·학교·병원을 새로 짓겠다”며 “인프라 재건을 통해 수백만명의 근로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친정인 공화당조차 대규모 재정적자가 불가피한 인프라 투자 확대에 시큰둥하다는 점이다. 물가상승만 부추겨 경제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감세…법인세 인하, 경기 부양과 양립 가능할까
기업인 출신답게 트럼프 당선인은 현행 35%인 법인세를 최대 15%까지 절반 이상 낮추는 한편 상속세는 아예 폐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최고 소득세율도 낮추고 7단계인 소득세 누진 체계는 3단계로 간소화하겠다는 복안이다. 트럼프 스스로 이를 ‘세제 혁명’이라고 부를 만큼 비중을 둔 정책이다. 경제학계는 감세 정책을 펴면서 경기 부양을 하고 부채도 줄인다는 말은 한마디로 ‘가당치도 않다’는 반응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트럼프는 경제를 전혀 모른다”고 반대한 대표적 이유다. 하지만 감세 의지가 강한 만큼 재임 중 일부 세율 인하는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무역개혁…글로벌 무역, 암흑기 오나
트럼프는 당선 이틀 만에 공언대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주저앉히는 데 성공했다. 비준의 열쇠를 쥔 공화당도 비준에 반대하고 있어 TPP는 최소 2년간은 재추진 동력을 얻기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다른 무역협정 역시 줄줄이 수술대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미 트럼프 당선인 측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방침을 굳혔고 캐나다·멕시코도 응하겠다는 입장이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역시 조만간 재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과의 무역전쟁은 전면전보다는 국지전이 될 것으로 점쳐진다. 당장 보복관세를 불러올 수 있는 중국 수입품에 대한 45%의 고율 관세 부과는 위협용 카드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대신 중국 압박을 위한 현실적 카드로 ‘환율조작국’ 지정이 거론된다. 이 경우 우려되는 것은 한국 역시 환율조작국 지정의 유탄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규제완화…월가 개혁→규제 완화로 유턴, 지지자 설득 만만찮아
뉴욕 출신인 트럼프는 맨해튼이 본거지다. 선거 기간 클린턴이 월가를 상대로 고액 강연료를 챙긴 것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재미를 봤지만 트럼프 역시 월가와 태생적으로 친한 기업인 출신이다. 트럼프 인수위에 헤지펀드와 금융회사 로비스트들이 대거 합류한데다 신임 재무장관에도 월가 출신 인사의 기용이 유력한 상황이다.
이미 트럼프 측은 당선 이튿날 곧바로 규제개혁 1호로 상업-투자은행 분리를 핵심으로 한 ‘도드-프랭크법’ 폐기를 선언한 상태다. 문제는 제조업 부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외친 그가 오히려 반대편에 선 월가의 편을 들면서 지지층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일각에서 도드-프랭크법 전면 폐지보다는 대체 입법을 통한 규제 완화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에너지…기후변화 외면하고 ‘석탄 시대’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사업가 마인드가 결합된 대표적 분야다. 트럼프 당선인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주도한 파리협정 탈퇴와 석탄 산업 육성을 대표 에너지 정책으로 내세웠다.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는 유력 차기 환경보호청장으로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이론을 부정하면서 화석연료 사용을 옹호해온 마이런 에벨 기업경쟁력연구소(CEI) 소장을 지목한 상태다. 일단 트럼프 정부는 파리협정 탈퇴 대신 사실상 온실가스 감축 이행 의무를 파기하고 개발도상국에 대한 자금 지원 중단을 통해 협정을 무력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함께 미국 내 대규모 송유관 건설과 유전 개발 허용으로 재임 중 환경보호단체들과 한바탕 충돌이 예상된다.
◇반(反)이민…장벽 건설 속도 조절 속 불법체류자 즉각 추방
멕시코 국경 장벽 설치 공약은 트럼프가 공화당 대권 후보를 거머쥐고 본선에서 힐러리 클린턴까지 무너뜨린 1등 공신이다. 하지만 멕시코와의 외교 문제는 물론 건설 비용을 멕시코에 대도록 하는 데 난관이 많아 인수위 부위원장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장벽 건설에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한발 물러선 상태다. 무슬림 이민을 받지 않겠다는 정책도 의회의 권한에 속해 트럼프 정부가 일방적으로 단행하기는 힘들다. 이 때문에 트럼프 정부가 기존 오바마 정책을 뒤집는 방식으로 반(反)이민정책을 가동할 것으로 현지 언론들은 전망하고 있다. 80만여명의 불법체류자 추방을 유예한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중단하거나 취업비자 발급 기준을 엄격하게 조정하는 방안 등이 대표적인 예다.
◇복지…오바마케어 수정 존치?
‘오바마케어’는 힐러리 클린턴의 ‘e메일 스캔들’과 함께 표심을 요동치게 한 요인이다. 2014년부터 시행된 오바마케어는 민영 건강보험에만 의존하던 미국 의료보험을 전국민에 의무화한 대표적 보건 정책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기간 내내 보험료가 많이 오른 오바마케어를 ‘최악의 정책’이라며 취임하면 곧장 폐기하겠다고 공언해왔다.
하지만 당선 직후 트럼프는 오바마케어 중 일부 조항은 존속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입장을 선회했다. 오바마케어 폐기로 당장 저소득층 2,500만명이 의료보험을 잃게 되는 현실적 문제를 고려한 것이다. 오바마케어의 보완은 트럼프노믹스의 실체가 ‘실용주의’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