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비가 내린 지난 14일 청와대 정문(일명 11문) 앞에서 경찰이 근무를 서고 있다. 검찰은 이번주 중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예고했다./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여론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사실상 퇴진·하야를 전면 거부하고 나선 것은 마비된 정국의 조기 수습보다는 앞으로 예상되는 마지막 카드인 정치권 주도의 탄핵 정국을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면 대통령 본인은 물론 여당 내 지지 기반인 친박과 대통령 주변 핵심인사에 대한 사정수사 등으로 그동안 쌓아온 정치적 자산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강하게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여당 관계자는 15일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대통령이 자진사퇴하면 열 중 전부를 잃는 것이지만 탄핵정국으로 몰고 극한 대치를 보이며 물러나면 열 중 다섯만 잃게 되는 것과 같다”며 “국민정서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탄핵 국면으로 가서 막판까지 버텨보겠다는 계산”이라고 말했다. 탄핵 사유를 놓고 정면으로 붙어보겠다는 것이다.
실제 박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호위무사’ 격인 유영하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하고 검찰 수사에 적극 대비하는 모습이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도 이날 ‘박 대통령이 하야나 퇴진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까지 퇴진에 대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느냐”고 밝혔다. 최순실 사태가 불거진 후 퇴진은 단 한 번도 염두에 두지 않고 있으며 지금도 그럴 의사가 없다고 쐐기를 박은 것이다. ‘2선 후퇴’라는 말을 극도로 피하며 퇴진 의사가 없다는 점을 돌려 표현했던 이전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정치권에서는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비박계 좌장인 김무성 전 대표가 최근 대통령 탈당에 이어 탄핵 필요성을 제기한 것도 이 같은 청와대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김 전 대표는 이날 대구테크노파크를 방문, 지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하야는 법률적 용어가 아니다”라면서 “하야하면 60일 이내에 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후보) 검증 과정이 너무 짧고 그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당선돼도 그에 따른 후유증과 혼란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헌법적 탄핵 절차가 옳다”고 강조했다.
야당에서 탄핵 논의가 본격적으로 불붙은 것은 아니지만 박 대통령이 이날 자진 하야나 퇴진은 없다고 못 박으면서 탄핵 모드로 돌아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정치권에서는 탄핵소추안 가결 정족수는 국회의원 200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더불어민주당 등 야3당과 새누리당의 비박계 등 29명만 이탈하면 가능하다는 관측이다. 일부에서는 탄핵 공조를 명분으로 새누리당 내 비박계가 탈당해 야권과 탄핵 연대를 이룰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촛불 민심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끝까지 물러나지 않으면 야당은 물론 여당 비주류들도 다음 단계인 탄핵 논의로 옮겨갈 수 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서양호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탄핵과 개헌을 매개로 여당 비주류와 국민의당 세력 등이 제3지대에서 모일 개연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친박들은 최대한 버티며 시간벌기 모드로 접어들었다는 관측이다. 실제 청와대 측이 자진사퇴는 없다고 배수진을 친 이날 사퇴 압박에 숨죽였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남경필·원희룡 지사, 오세훈 전 시장, 김문수 전 지사 등 여권 내 잠재적 대권 주자들을 향해 “새누리당 대선주자에서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반격에 나섰다. 여권의 한 핵심관계자는 “탄핵 정국으로 시간을 벌어 버티다 보면 무슨 수가 생길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며 “보수층이 지금은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듯 보이지만 야당에 힘이 쏠려 정권을 내줄 수 있다고 판단되는 순간 돌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국회가 탄핵을 추진하면 청와대로서는 막을 방법이 있겠느냐”며 하야보다는 탄핵이 낫다는 분위기다. 헌법재판소 심판은 내년 상반기께 나오기 때문에 그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고 실제 현재 정치 지형상 여권의 협조없이는 국회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지 않을 가능성에도 기대를 걸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김홍길·류호기자 wha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