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가명을 쓰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떳떳하지 못해 실명을 숨겨야 할 때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약자나 소수자가 보복이나 차별을 피해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자유롭게 표출하기 위해서다. 독립운동 등은 후자에 속하지만 전자의 이유로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전 세계를 나치즘 공포에 휩싸이게 했던 아돌프 히틀러가 사후 70여년이 지난 최근 가명 출판 논란에 휩싸인 것도 마찬가지다. 당초 히틀러가 쓴 전기는 1925년 처음 출간된 ‘나의 투쟁’이 유일하게 꼽혀왔는데 당시 전쟁 영웅이던 빅토르 폰쾨르버가 쓴 ‘아돌프 히틀러:그의 삶과 그의 연설’이라는 소책자도 사실은 히틀러가 썼다는 논란이다. 그의 귀족 신분과 전쟁 영웅의 명성을 이용해 자기선전을 하기 위한 히틀러의 가명 출판이라는 분석이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가명 사용이 늘어난 것도 별반 다를 게 없다. 공무원은 물론이고 의사나 대학교수까지 식당이나 골프장에서 가명을 쓰려 한다는 후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 전에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여주인공 이름인 ‘길라임’을 가명으로 사용해 차움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길라임의 문신과 미르재단 로고가 비슷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박 대통령이 굳이 가명까지 사용해 진료를 받아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진다.
/이용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