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전장(전자장비) 분야 글로벌 1위 기업인 하만을 9조3,000억원에 전광석화처럼 사들인 것은 향후 신속하면서도 공격적인 대규모 M&A를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이재용식 M&A에는 어떤 방정식이 숨어 있는 것일까.
‘불황이거나 위기일 때 공격적으로 투자하라’. 삼성의 한 고위 임원은 “이 회장은 ‘위기 속 기회’ 경영철학을 강조했다”며 “이 부회장이 앞으로 전개할 M&A 공식에도 이 같은 전략이 그대로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올해 삼성은 시련의 연속이다. 갤럭시노트7 사태로 7조원가량의 손실을 입었고 미르·K스포츠재단 사태로 이 부회장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기업 이미지와 브랜드 인지도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하지만 M&A를 통한 공격경영은 속도를 더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하만을 포함해 뉴넷캐나다·비브랩스·데이코·비야디(BYD)·애드기어·조이언트 등 7개 기업을 사들이거나 투자를 단행했다. 2013년(3개), 2014년(5개), 2015년(3개) 등과 비교하면 M&A 횟수와 투자규모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위기에 빗장문을 잠그기보다는 공격적인 사냥꾼이 되겠다는 의지가 그대로 배어 있다.
M&A에도 뚜렷한 방향성이 있다. 단일상품을 생산하는 제조기업보다는 인공지능(AI), 자동차 전장, 가상현실(VR) 등 솔루션 분야에 전략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성장이 정체상태에 접어든 ‘열매 사업’보다는 미래성장 동력을 마련할 수 있는 ‘씨앗 사업’에 전력투구하는 모습이다.
인수된 기업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다. 비브랩스(인공지능), 뉴넷캐나다(메신저), 조이언트(클라우드), 애드기어(디지털광고), 루프페이(모바일 결제) 등이 대표적이다.
박강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세계 정보기술(IT) 완제품 시장의 경우 성장률이 높지 않아 점유율 경쟁이 힘든 상황”이라며 “삼성이 IT 사업을 축소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방향으로 M&A 전략을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삼성이 하만을 인수한 것은 자동차부품 생태계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쥐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전기차·자율주행차·커넥티드카 등 스마트카에 들어가는 전장부품을 가치사슬로 서로 연결하는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전장 분야를 바이오·의료기기 사업과 함께 미래성장을 이끄는 양대 축으로 삼고 있는 만큼 오는 12월 초로 예상되는 조직개편 때 전장사업팀을 부(部)로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부품(DS) 부문장인 권오현 부회장이 총괄하면서 박종환 부사장이 팀장을 맡고 있다. 전체 팀의 규모는 30명 안팎이다.
M&A 규모도 커지고 있다. 83조원에 달하는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12월 전장사업팀을 신설하고 1년도 안 돼 하만 메가 딜을 성사시킨 만큼 앞으로 미래성장 동력을 갖춘 기업이라고 판단되면 추가적인 대형 M&A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헤지펀드 엘리엇을 비롯해 해외 기관투자가들이 삼성전자의 현금성 자산 활용을 주장하고 있는 것도 공격적인 M&A에 나서는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서정명기자 vicsj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