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5A01 연도별 예산안
사상 최대 규모인 400조7,000억원이 편성돼 ‘슈퍼 예산’으로 불리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의가 졸속으로 끝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국내외적으로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경제 분야 예산 배정이나 130조원에 달하는 복지예산 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지만 최순실 게이트에 국민적 관심이 쏠린 사이 얼렁뚱땅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일부 의원들은 이 와중에도 지역구 민원성 쪽지예산을 밀어 넣으려는 구태를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16일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위원회에서는 내년도 예산안 심의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9월 예산국회가 열리고 나서도 국정감사로 한달 이상을 보낸 데 이어 지난달 말부터 최순실 게이트가 확대되면서 예산국회는 사실상 이름뿐이었다. 이번주부터 예산소위가 가동됐지만 예산 국회통과 시한인 다음달 2일까지 불과 3주 만에 400조원의 예산을 따져봐야 해 제대로 된 심의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기재부 예산실의 한 관계자는 “부처별 감액과 증액 여부를 심의하고 있다”며 “이달 말까지 소위원회 활동이 마무리되면 예결위 전체회의 의결을 거쳐 다음달 초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국회의 철저한 감시 없이 예산안이 통과될 경우 결국 국민들의 혈세 낭비로 이어지게 된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예산안을 통과시키면 국회의원들이 직무유기를 하는 것”이라며 “전 세계 각국이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확대로 경기부양을 꾀하는데 우리는 8%가 줄어든 만큼 이런 분야에 대한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증액이 많이 이뤄진 부분, 특히 130조원을 처음으로 넘어선 복지예산의 경우 한번 편성하면 줄이기 어려운 경직성 예산이라는 점에서 꼼꼼하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산심의 후반부에 법인세 인상 등의 문제를 놓고 여야 갈등이 깊어질 경우 정해진 시한을 넘길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예산안이 법정시한을 넘겨도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한다. 최악의 경우 예산안 처리가 연말을 넘기면 당장 내년 1월부터 예산 집행에 차질을 빚게 된다. 최순실 게이트, 트럼프 쇼크 등 대내외 복합악재로 사선(死線)을 넘나들고 있는 우리 경제에 예산까지 제때 집행되지 않을 경우 하방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조 교수는 “정치는 정치고 경제는 경제다. 예산안은 우리 경제·사회가 굴러가게 하는 심장박동, 호흡, 기초대사라는 점에서 철저한 심의만큼 정해진 시간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며 “법정시한을 넘길 경우 미 연방정부가 셧다운한 것과 비슷하게 ‘준예산’을 긴급 편성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김정곤·이태규기자 mckid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