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탠트럼' 신흥국 경제위기 기름 붓나

●말레이시아 '링깃화' 역외거래 중단 선언
수출비중 큰 中 경기침체 겹쳐
말레이시아 자본이탈 가속
트럼프 당선 후 4.32% 폭락
링깃화 가치 11개월래 최저
성장률도 3년만에 4%대로 뚝
정부, 특단 대책 꺼내들어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이 링깃화의 역외거래 중단을 전격 요청하면서 ‘트럼프 탠트럼(트럼프 발작)’이 신흥국 자본유출에 따른 경제위기를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의 이번 조치는 무역의존도가 높은 중국 경제침체, 국영투자펀드 1MDB 부패 스캔들에 따른 정국불안에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자금이탈에 가속도가 붙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중국 경기침체로 지난해부터 성장이 둔화된 말레이시아 경제는 1MDB 부패 스캔들에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가 연관됐다는 증거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 당선 이후 달러가 초강세를 보이고 금리가 치솟는 등 트럼프 탠트럼으로 자본이탈이 가팔라지자 외화거래 중단이라는 특단의 대책을 들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이 링깃화 거래 중단을 요청한 지난 18일 달러 대비 링깃화 가치는 달러당 4.42링깃까지 떨어져 11개월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말레이시아의 올해 예상 경제성장률을 전년 대비 4.1%로 예상했다. 말레이시아의 경제성장률이 4%대로 떨어진 것은 3년 만이다.


말레이시아 경제에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한 것은 중국 경기둔화 우려가 본격화된 지난해부터다. 경제전문 매체 포브스에 따르면 말레이시아는 국내총생산(GDP)의 10%를 대중 수출에 의존해 중국 경제가 불안해질 경우 타격을 받을 주요 국가 중 하나로 꼽혀왔다. 실제로 지난해 11월에는 산업생산 증가율이 16개월 만에 최저치로 둔화하면서 경제위협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왔으며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대외요인을 들어 지난 1월 말레이시아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가뜩이나 성장동력이 줄어든 말레이시아 경제에 직격탄을 날린 것은 올 초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1MDB 부패 스캔들이다. 고위급 공무원과 가족이 국영투자펀드 자금을 유용해 천문학적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1MDB 스캔들은 지난해부터 미국·싱가포르 등 전 세계가 수사에 나서면서 정점에 나집 총리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7월 미 법무부가 법원에 제출한 자료에서 나집 총리가 연관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나집 총리 한 사람의 비자금만도 7억달러(약 8,3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다 7월 미 법무부가 압수한 나집 총리 양아들의 자산은 10억달러로 이들이 재산을 얼마나 착복했는지는 미지수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나집 총리 퇴진시위는 19일에도 이어졌지만 여전히 나집 총리는 “정부를 전복하려는 목적의 시위”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미래는 더욱 불투명하다. 트럼프 탠트럼이 시작되면서 링깃화 가치의 낙폭은 더욱 커졌다. 트럼프 당선인이 9일 1조달러 인프라 투자를 선언한 후 링깃화 가치는 이날 달러당 4.23링깃에서 9일 만에 4.42링깃으로 4.32%나 폭락했다. 말레이시아는 다른 신흥국과 비교해 해외 투자 의존도가 높아 자본유출 가능성은 더욱 높다. 해외자본의 말레이시아 국채 보유액 비중은 전체의 36%로 15%인 태국의 두 배를 넘는다.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의 외환 역외거래 중단조치에 시장은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한 한 동남아 금융권 종사자는 “(말레이시아) 시장에서 나가려 해도 출구가 없는 상황”이라며 “당장 링깃화를 달러로 바꾸려면 역외시장과 관련이 없다는 증명서를 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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