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신문 대기업 긴급설문]"내년 경영환경 더 악화" 59%...'수익성 강화' 최우선 과제로 꼽아

"경영난 타개위해 신성장동력 발굴 시급" 32%
비수익사업 정리...기업 인수합병 속도낼 듯

글로벌 경제전쟁의 거친 파고를 헤쳐나가야 할 우리 대기업들이 길을 잃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보호무역 위협으로 수출전략에 비상등이 켜졌고 최순실 특검과 국정조사로 사업계획 수립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통상 대기업들은 10월 말에 사업계획 초안을 마련하고 11월 말이나 12월 초에는 내년도 전체 경영전략을 짜야 하는데 내우외환에 휘말려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그야말로 갈 길은 먼데 해는 저무는 ‘일모도원(日暮途遠)’의 형국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본부장은 “수출과 내수시장 모두 암울하다. 한마디로 대기업들이 시계 제로 상태에 빠져 있다”며 “내년에는 설비투자·신규채용 여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기업경쟁력마저 악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내년이 더 걱정…투자·고용절벽에 신음=“말도 마세요. 내년이 더 걱정입니다. 투자와 고용을 극히 보수적으로 잡고 있어요.” 한숨 섞인 대기업 임원의 탄식이다. 대기업의 이 같은 우려는 서울경제신문이 30대 그룹 핵심 계열사 34곳(공기업과 금융회사 제외)을 대상으로 ‘내년도 경기전망과 경영전략’에 대해 긴급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공격경영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내년도 투자계획에 대해 응답자의 70.6%는 ‘올해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8.8%는 ‘10% 이상 축소’, 2.9%는 ‘20% 이상 축소’라고 응답했다. ‘10% 이상 확대’하겠다는 곳은 11.8%에 불과했다.


대기업 계열사 10곳 중 8곳가량이 내년도 투자를 올해와 비슷한 수준에 하거나 오히려 줄이겠다는 것이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국내 정국혼란, 트럼프 당선인의 보호무역 기조, 글로벌 금리 인상 흐름 등으로 대기업들이 내년도 투자계획을 아주 보수적으로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대기업들의 성장엔진이 가파르게 식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투자절벽’ 우려는 고용위축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응답자의 55.9%가 내년 고용계획을 올해 수준으로 잡았고 ‘10% 이상 축소하겠다’고 응답한 기업도 8.8%를 나타냈다. ‘10% 이상 확대하겠다’고 한 기업은 2.9%에 그쳤다. 대기업 10개사 중 6곳가량이 내년도 고용을 올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잡거나 줄이겠다고 응답한 것이다. 32.4%는 아직까지 고용계획을 마련하지도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글로벌 경기둔화가 이어지고 국내 내수소비마저 꽁꽁 얼어붙으면서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인력확보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대기업 80%는 경영전략 수립 못해=대기업들이 내우외환의 경영환경으로 내몰리면서 내년도 경영전략도 제대로 짜지 못하고 있다. 신성장동력 마련을 위한 투자집행이 지연되고 경영효율화를 위한 사업재편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내년도 경영전략 수립에 대해 가장 많은 44.1%가 ‘절반 정도만 짜놓은 상태’라고 답했고 35.3%는 ‘초안만 잡았다’고 응답했다. ‘전체 경영전략을 수립했다’고 답한 기업은 20.6%에 그쳤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등으로 보호무역 기조가 되살아나면서 우리 수출기업들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앞으로 수개월 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최순실 특검과 국정조사로 정국혼란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보통 11월 말이 되면 매출·영업이익 등 경영지표를 수립하고 투자·고용 방안을 마련하는데 올해에는 먼 산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대기업들이 체감하는 위기감은 내년도 경영환경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드러난다.

41.2%가 ‘올해 수준과 비슷할 것’이라고 답했고 58.8%는 ‘악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호전될 것’이라고 응답한 곳은 전무했다. 대기업들이 경영환경을 아주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대기업들은 경영환경 악화를 타개하기 위한 최우선 사안으로 수익성 강화를 꼽았다. ‘현재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사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58.8%가 ‘수익성 강화’라고 답했고 32.4%는 ‘신성장동력 발굴’이라고 응답했다. ‘사업구조 개편’은 8.8%에 그쳤고 ‘인력 구조조정’은 한 군데도 없었다. 대기업들이 내년에는 비수익사업이나 한계사업에 대해서는 과감히 정리에 나서고 차세대 먹거리에 대해서는 인수합병(M&A)에 나서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서정명기자 vicsj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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