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월·시화공단 가보니] "어려움보다는 불확실성이 문제…허리띠만 죄고 있죠"

"밖으론 보호무역 확산·안에선 탄핵정국…답답"
연말 인센티브는커녕 내년 계획 수립도 벅차
생산·수출 둔화 속 원가절감 등 생존 안간힘

21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에는 최근의 불황을 반영하듯 적막감만 감돌고 있다. /강광우기자


“지금쯤이면 이미 내년 사업계획 수립이 끝나고 계획이 실행돼야 하는데 변수들이 너무 많아서 아직 확정을 못하고 있어요. 당장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허리띠만 조이고 있습니다.”

21일 경기도 안산시와 시흥시에 위치한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 부품·소재 업체 1만9,000여개 업체가 모인 산업단지에는 최근 생산과 수출이 모두 급격히 감소한 여파로 침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산업단지에서 만난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어렵다’는 말보다 ‘알 수 없다’는 말을 더 자주 했다. 내년까지 어려운 상황이 이어진다는 것은 기정사실이 됐지만 얼마나 어려울지 가늠할 수 없어 난감해하는 모습이었다. 공단의 한 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하게 추진한다고 하면 미국 기업과 경쟁하는 업체들은 상황이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일본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탄핵 정국에 발목이 잡혀 당장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답답하기만 하다”고 전했다.


서울반도체 관계자들이 21일 발광다이오드(LED) 관련 신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진제공=서울반도체
공단 내 직원들이 당장 체감하는 것은 부서 운영비 등 경비 삭감이다. 반도체 업체의 한 경영관리팀 부장은 “적자 상황이라 부서 운영비 지원이 끊겨 직원들끼리 회식을 하지 못한 지도 꽤 됐다”며 “연말 인센티브는 언감생심”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국내외 정세의 여파로 사업 추진에 애를 먹고 있는 장면도 목격된다. 한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 대표는 “신사업으로 에너지 사업을 추진하면서 미국 주(州) 정부와 경기도의 지원을 받기로 했는데 기약 없이 늦춰지고 있다”며 “미국 주 정부도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당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당장 원청업체가 중국에서 미국으로 옮겨가면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업체도 있다. 한 반도체 부품 업체 관계자는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가 본격화되면 조립공장이 미국으로 가는 경우도 예상해볼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사업계획을 새롭게 짜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걱정이 많다”며 한숨을 쉬었다.

2215A02 위기의 반월3
반월·시화공단의 위기감은 숫자로도 드러난다. 한국산업단지공단 경기본부에 따르면 공단 내 생산액은 2013년 47조2,741억원에서 지난해 42조3,726억원으로 12% 가까이 떨어졌다. 가전과 휴대폰 부품소재가 호황이던 2013년에 공단의 생산액은 최고점을 찍고 2014년 하반기 스마트폰 시장 포화로 인쇄회로기판(PCB)업계가 부진하면서 생산액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삼성전자 생산공장이 베트남으로 이전하면서 반월단지 내 하청업체들의 생산액도 대폭 줄었고 현대·기아차의 판매실적이 줄면서 관련 협력업체들의 생산액도 쪼그라들었다. 수출액 역시 2013년 82억달러에서 지난해 71억달러로 급감했다. 환율하락과 엔저 영향으로 공단 내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올해 산업 경기는 더 얼어붙어 공단 내 생산액과 수출액의 하락폭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해일 한국산업단지공단 경인권기업성장지원센터장은 “공단 내 생산액과 수출 규모는 대기업들의 실적 감소와 국내외 정세 불안 여파로 내년에는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며 “품질에서는 일본에 밀리고 가격에서는 중국에 밀리는 ‘넛크래커’ 현상이 심화돼 기업들은 원가절감 압박을 심하게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올해의 위기를 내년까지 끌고 갈 수 없다”는 각오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기업도 보인다. 공단 내 한 중소기업 대표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원가절감 노력을 하지 않아도 고객사들의 입맛에 맞게 제품을 만들고 적기에 공급하기만 해도 사업이 계속 성장할 수 있었다”면서 “하지만 최근에는 원가를 줄이지 않으면 일본 업체들과 가격이 비슷해지기 때문에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꾸준히 신기술을 개발해 먹거리를 찾아 나서야 생존할 수 있는 상황이라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산·시흥=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