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 뉴먼의 삶을 바꿔버린 전화는 예고도 없이 걸려왔다. 2010년 11월 어느 월요일 아침 8시 45분이었다. 뉴먼은 코네티컷 주 스탬퍼드 Stamford에 본사를 둔 헤지펀드 업체 다이아몬드백 캐피털 매니지먼트 Diamondback Capital Management 사무실의 책상에 앉아 있었다. 이 날 아침 그는 아내와 딸과 함께 살던 보스턴 외곽의 자택에서 출발, 원 랜드마크 스퀘어 One Landmark Squre-공교롭게도 뉴먼의 조부가 몇 년 전 개발한 곳이다-에 있는 사무실에 15분 일찍 도착해 있었다. 당시 뉴먼은 다이아몬드백에서 포트폴리오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었다. 약 1억 5,000만 달러 규모의 롱숏 포트폴리오를 관리했으며, 주로 IT 기업 주식을 거래했다.
발신자 정보가 뜨진 않았지만, 어쨌든 뉴먼은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건너편 인물은 연방수사국(FBI) 요원 데이비드 마콜 David Makol(39)이었다. 뉴먼이 나중에 알게 된 바에 따르면, 마콜은 ‘배신을 부추기는 기술(Art of the Flip)’-또는 헤지펀드 직원들이 동료의 불법적인 의심 행위에 대해 밀고하도록 만드는 일-에 능한 인물이었다. 마콜은 뉴먼에게 “오늘 오후에 우리가 진행할 일이 있는데, 당신의 일과 가족에 영향이 있는 것”이라며 “우린 이 일을 진행해야만 한다. 시급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뉴먼은 특별히 경각심이 들지는 않았지만, 전화가 불편하다고 느꼈다. 그는 FBI가 자신을 뒤쫓을 이유가 있다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뉴먼은 자기 자신이 표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FBI가 내부자 거래를 한창 단속 중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11개월 전 FBI는 갤리언 그룹 Galleon Group 헤지펀드 창립자이자 억만장자 라지 라자라트남 Raj Rajaratnam을 내부자 거래 혐의로 체포한 바 있었다. 라자라트남이 체포됐을 때, 미국 뉴욕 남부 지방검사 프리트 바라라 Preet Bharara는 그의 사기 행위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라고 주장했다. 바라라가 또 다른 헤지펀드 억만장자이자 SAC 캐피털 SAC Capital의 창립자인 스티브 A. 코헨 Steven A. Cohen도 주시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었다. 바라라는 코헨을-그리고 그의 측근 모두를-수사의 1차 표적으로 삼았다.
이는 다이아몬드백이 검찰 조사를 받을 명백한 후보라는 것을 의미했다. 2명의 트레이더 리처드 시멀 Richard Schimel과 래리 스판스키 Larry Sapanski가 한 해 앞서 다이아몬드백 펀드를 창립했는데, 두 사람 모두 SAC 캐피털 출신이었다. 게다가 시멀은 코헨의 누이와 결혼했다. 다이아몬드백이 SAC로부터 초기자금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두 업체가 밀접한 관계라는 점은 분명했다(SAC는 결국 2013년 내부자 거래에 대한 유죄 사실을 인정하고 막대한 합의금 18억 달러를 냈지만, 코헨 본인은 기소되지 않았다).
게다가 뭔가 큰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었다. 뉴먼이 마콜의 전화를 받기 정확히 이틀 전, 월스트리트 저널이 ‘대규모 내부자 거래 조사에 나선 미국(U.S. in Vast Insider Trading Probe)’이라는 헤드라인의 장문의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는 ‘3년 간 진행된 바라라의 조사가 전국의 컨설턴트, 투자은행가, 헤지펀드 및 뮤추얼 펀드 트레이더, 애널리스트를 집어 삼키려 하고 있다’고 심층 보도했다. 기사가 초점으로 하고 있던 대상 중 하나는 ‘전문가 네트워크’라고 불리는 집단이었다, 다양한 업계의 전문가들-특히 의료보건 및 IT분야-과 정보를 찾는 투자자들을 연결해 준 것으로 알려진 프라이머리 글로벌 리서치 Primary Global Research가 대표적이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사는 월가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마콜과 통화 도중 뉴먼은 이 FBI 요원에게 자신이 어떻게 해주길 원하느냐고 물었다. 마콜은 “모퉁이에 있는 맥도널드에 있다”며 “당신과 애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뉴먼은 “마콜에게 ‘어떤 얘기를 나누고 싶은가?’라고 질문을 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마콜은 “당신이 내려오면, 그 사안에 대해 얘기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뉴먼은 시간을 벌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마콜에게 맥도널드에 얼마나 체류할지를 물었다. 마콜은 “우린 이 사안을 신속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뉴먼은 “알겠다”고 답한 후 “만나면 만나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라고 얘기했다.
전화를 끊은 후, 뉴먼은 다이아몬드백 법률 고문을 찾아갔다. 두 사람은 최고운영책임자와 얘기를 나눴다. 회사 외부의 윌머헤일 WilmerHale 고문과도 상의를 했다. 뉴먼은 마콜을 만나도 큰 문제는 없었을 테지만, 로펌 핀 딕슨 앤드 허링 Finn Dixon & Herling의 스탬퍼드 주재 변호사 알프레드 파브리스 Alfred Pavlis를 만나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는 데 뜻을 모았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갈릴 경우 파브리스는 뉴먼의, 윌머헤일은 다이아몬드백의 대리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마콜이 뉴먼에게 전화한 지 1시간 후, 바라라 팀 소속으로 라자라트남 사건의 선임 검사를 맡았던 검사보 리드 브로드스키 Reed Brodsky가 파브리스와 대화를 나눴다. 뉴먼의 회상에 따르면, 브로드스키는 파브리스에게 뉴먼과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회사 이익과 관련해 ‘불법일 수도 있는 부분’의 테이프 녹취 내용에서 그를 ‘포착’했으며, 뉴먼이 인수합병 관련 내부 정보를 바탕으로 거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브로드스키가 파브리스에게 ‘뉴먼이 기업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전문가 네트워크를 활용했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뉴먼은 파브리스에게 “‘불법일 수도 있는 그 어떤 부분’을 활용해 거래한 적이 없고, 수년 간 인수합병 관련 거래를 하지 않았으며, 전문가 네트워크 컨설턴트에게 전화를 건 적도 없기 때문에 기꺼이 브로드스키를 만나겠다”고 말했다. 뉴먼은 변호사에게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던 것으로 당시를 기억했다.
뉴먼과 파브리스가 브로드스키를 만나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지 의논하던 중 사무실로부터 뉴먼에게 긴급 문자가 왔다. FBI가 다이아몬드백에 들이닥쳤다는 내용이었다. 뉴먼은 빠르게 전개되는 상황에 충격을 받았다.
되돌아보면 그의 세상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2010년 11월 22일 월요일 아침은 뉴먼의 예전 삶과 더 어두운 새로운 삶을 나누는 경계가 되었다. 향후 몇 년 동안 이 헤지펀드 매니저의 성공적인 경력은 무너졌고, 그의 결혼생활도 마침표를 찍었다. 불안한 상황에서 몇 개월을 지낸 후, 그는 내부자 거래 혐의로 공식 기소를 당했고, 2012년 12월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2년 후, 그의 유죄 판결은 항소 법원에서 뒤집혔다. 2015년 대법원이 정부측 항소를 기각하면서 뉴먼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종사하는 업계를 규제하는 당국에 대해 완전히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월 스트리트 최고 경찰’로 불리는 프리트 바라라 검사가 2012년 1월 18일 뉴먼과 다른 이들에 대한 기소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뉴먼에 대한 판결이 뒤집힌 건 바라라-막강한 월가의 규제자로, 2009년 이후 80건 이상의 내부자 거래 사건을 성공적으로 기소했다-에겐 큰 패배를 의미했다. 뉴먼은 바라라가 항소에서 패배한 첫 상대였다. 그 결과 항소법원 판결 이후 또 다른 6건의 유죄 인정 답변이 무효화 되고 말았다.그러나 더 큰 의미는 뉴먼 사건이 ‘정확히 무엇이 내부자 거래를 성립시키는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논쟁을 법조계와 월가에 촉발시켰다는 점이었다(이 사건이 시사하는 바를 더 깊이 알아보려면 뒤에 있는 ‘새로운 법적 회색지대(The New Legal Limbo)’ 기사를 참고하라). 이 과정에서 바라라를 열정이 과하고 도가 지나친 인물로 생각했던 월가 사람들에게 뉴먼은 ‘예상 외의 영웅’이 되었다.
뉴먼은 이번 포춘과의 독점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밝혔다. 뉴먼은 야심 찬 연방검사-점점 늘어나는 자신들의 월가 ‘사냥 전리품’에 또 다른 내부자 거래의 유죄 판결을 추가하려는 의지가 강한 인물들-의 표적이 되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털어놓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잘못된 일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굽히지 않았다(바라라는 여전히 뉴먼이 합당하게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본 기사에 대한 포춘과의 인터뷰는 거절했다).
뉴먼(51)은 자신의 삶을 바꾼 사건들을 회상하면서 이따금씩 씁쓸함을 내비쳤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차분함과 다소간의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런 태도는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 찾아온 것이었다. FBI로부터 전화를 받은 날, 그의 감정은 공포와 충격, 혼동 속을 헤매고 있었다.
마콜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때, 뉴먼은 업계의 풋내기가 아니었다. 이미 금융권에서 20년 이상 경력을 쌓은 상태였다. 스키드모어 칼리지 Skidmore College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그는 일찌감치 회계사가 자신에게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밥슨 칼리지 Babson College에서 MBA를 취득한 후 국제재무분석사(chartered financial analyst, CFA) 시험을 통과한 그는 보스턴에 있는 존 행콕 John Hancock의 자산 관리 사업 부문에 취직을 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뉴욕 메릴린치 Merrill Lynch에서 IT 애널리스트로 일했고, 그 다음 7년간은 보스턴에 있는 몇몇 헤지펀드 업체에서 자금을 운용했다. 그리고 2006년 3월 다이아몬드백에 포트폴리오 매니저로 합류했다. 뉴먼은 이 곳에서 거의 3년을 보내며 투자자들에게 7,5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안겨줬다. 그 대가로 다이아몬드백은 뉴먼에게 900만 달러 이상을 지급했다.
바라라와 그의 팀은 처음부터 뉴먼을 값나가는 높은 표적으로 판단했다. 사실 그들은 뉴먼을 상대로 기소를 진행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진행했다. 마콜이 전화를 걸기 하루 전인 일요일, FBI는 코네티컷 브리지포트 Bridgeport 연방 판사로부터 다이아몬드백에 대한 압수 수색 영장을 발부 받았다. 라자라트납 소송에서 도청 사용이 허가됐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방식 역시 내부자 거래 조사 방식의 새로운 형태였다. 그전에는 FBI가 내부자 거래 증거를 찾기 위해 헤지펀드 업체 사무실을 압수 수색한 적이 없었다. 대신 요원들이 소환장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수집했다.
수색 영장은 FBI가 뉴먼의 사무실과 그의 서류 및 컴퓨터를 수색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그가 프라이머리 글로벌 리서치로부터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정보를 바탕으로, 델 컴퓨터 Dell Computer 주식에 대한 내부자 거래 혐의의 증거를 찾는 게 목적이었다. FBI는 뉴먼과 그의 예전 리서치 애널리스트 제시 토르토라 Jesse Tortora가 주고받은 이메일 기록, 그리고 헤지펀드 업체 레벨 글로벌 인베스터스 Level Global Investors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앤서니 키아손 Anthony Chiasson의 애널리스트 샘 아돈다키스 Sam Adondakis와 주고받은 이메일 기록도 찾고 있었다(FBI는 레벨 글로벌과 또 다른 헤지펀드 업체 록 캐피털 Loch Capital도 압수 수색했다).
수색 영장의 합당한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FBI 요원 마이클 하워드 Michael Howard는 FBI가 개인 컨설턴트-후에 칼 모티 Karl Motey로 밝혀졌다-에 접근한 경위를 설명한 선서 진술서를 제출했다. 칼 모티는 “상장 기업 내부자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한 후, 수수료를 받고 헤지펀드 소속 고객들에게 제공했다”고 시인했다. 모티는 정부 측 증인이 되었다(그는 후에 헤지펀드 업체에 미공개 정보를 제공한 혐의를 인정했다). 하워드는 선서 진술서에서 “다이아몬드백, 특히 뉴먼은 2007~2009년 모티의 고객 중 하나였다. 그들은 두 반도체 기업 마블 테크놀로지 그룹 Marvell Technology Group과 유엠시 UMC에 대해 모티가 제공한 ‘내부자 정보’에 대해 대가를 지불했다”고 주장했다(뉴먼은 모티가 제공한 두 업체의 정보를 이용해 거래한 적이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이메일을 통해 모티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그는 이번 기사에 대한 코멘트를 거부했다).
압수 수색 이후 뉴먼은 2010년 말까지 유급 휴가를 사용했다. 그건 다이아몬드와의 이별을 의미했다. 뉴먼에 따르면, 2011년 1월 다이아몬드백 변호사가 파브리스에게 “뉴먼이 복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통보했다. 그래서 뉴먼은 퇴사를 결정했다.
한편 브로드스키는 계속 파브리스에게 전화를 걸어, 파브리스의 고객이 자신과 얘기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뉴먼에 따르면, 브로드스키는 파브리스에게 “뉴먼이 와서 우리에게 얘기하기 싫다면 다이아몬드백에 도청 장치를 한 다른 사람과 얘기를 할 수도 있다”고 압박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백에 대한 압수 수색이 있은 후, 뉴먼은 검사에게 협조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는 “압수 수색이 사람들의 삶을 필요 이상으로 방해하기 때문에 내게도 모욕을 줬다”고 말했다. 게다가 그는 자신에게 잘못한 일이 없다고 믿고 있었다.
다이아몬드백에서 퇴사한 뉴먼은 아내 질 Jill, 당시 아홉 살이던 딸과 지내던 메사추세츠 주 니덤 Needham 자택으로 돌아왔다. 뉴먼은 이 무렵이 결혼 파탄 직전이었고-정말로 끝이 났다-좀 오래 되긴 했지만 그때만 해도 헌신적인 아버지였다고 말했다. 압수 수색 이전 뉴먼의 일과는 주중에는 코네티컷 주 윌턴 Wilton에 있는 모친과 함께 보내고, 주말에는 집에 돌아오는 것뿐이었다. 퇴사 후에는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딸과 보내고 싶어했다.
뉴먼은 자신에겐 또 다른 헤지펀드 업체에 취직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자신의 삶을 복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뉴먼은 ‘법의 연옥’에서 수 개월을 보냈다. 그는 매일 아침 자신이 체포될지도 모른다는 비참한 공포에 떨며 잠에서 깨어났다. 내부자 거래에 대한 뉴스가 보도된 뒤, 한 번은 로이터 취재진이 그의 집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당시 그는 집에 없었다). 또 한 번은 대화를 원하는 블룸버그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뉴먼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후에 유선 전화를 해지했다. 그는 딸이 깨어나 자신이 체포되는 모습을 볼지도 몰라 두려워 편하게 잠을 잘 수 없었다. 일도 거래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일종의 공황 상태에 시달리면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2011년 9월 파브리스는 다이아몬드백 변호사로부터 ‘회사가 쇄도하는 투자금 상환요청(investor redemptions)을 차단하기 위해 정부와 합의 협상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2012년 1월 23일, 법무부는 다이아몬드백과 기소유예약정을 맺고 그 대가로 미 증권거래위원회와 법무부에 총 900만 달러의 벌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2012년 12월, 다이아몬드백은 투자금 상환 때문에 사업을 접는다고 발표했다. 뉴먼의 유죄 판결이 뒤집힌 후, 정부는 다이아몬드백에 벌금 900만 달러를 돌려주었다).
1개월이 지난 어느 금요일 오후, 분노에 찬 브로드스키가 파브리스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뉴먼에 따르면, 브로드스키는 “압수 수색 후 10개월이 지났다. 당신 고객은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진술을 해야 한다”고 전화로 소리를 질렀다.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에게 말을 해야 한다. 세간의 관심이 몰려있는 사건이다!”(브로드스키는 이 기사에 대한 포춘의 코멘트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그는 파브리스에게 뉴먼이 자신을 만날 시간이 2주 남아있다고 말했다. 파브리스는 그에게 “2주의 시간을 주려 한다면, 2주 내에 그를 체포하려 한다면, 당신들이 뭘 알고 있는지 왜 우리에게 말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브로드스키는 “그를 체포하겠다는 말은 안 했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라고 답했다. 파브리스가 브로드스키와의 대화를 뉴먼에게 전달했을 때, 뉴먼은 기쁘면서도 긴장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그 다음주 월요일에 뉴먼은 파브리스를 만났다. 둘은 브로드스키를 만나러 가지 않기로 뜻을 모았다. 뉴먼은 파브리스에게 “그들은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브로드스키가 한 말에 대해 생각할수록, 뉴먼은 더 걱정이 됐다. 그는 ‘그들이 뭔가를 만들어낼 것이고, 결국 언젠가는 나를 체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2012년 1월 8일 오전 6시에 그 일이 일어났다. FBI가 처음 뉴먼에게 전화를 건 지 14개월 정도가 흐른 뒤였다. 뉴먼은 니덤에 있는 그의 집에 있었다. 그가 항상 상상한 대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창문 밖을 내다보니 8명의 FBI 요원이 보였다. 니덤 지역 경찰도 끼여 있었다. 총 12대 가량의 자동차가 그의 집 진입로 주변에 들어차 있었다. 하지만 사이렌은 울리지 않았다. 뉴먼은 “그들이 나를 놀라게 하려 했다”며 “그걸 엄청나게 즐겼다”고 말했다. 뉴먼은 딸이 아직 자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뉴먼은 티셔츠와 바지를 입고 나서 문을 열었다. 그는 “무슨 일이죠?”라고 무심하게 말했다. 그는 요원들이 잠시 머뭇거렸을 때 스스로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내부자 거래 혐의로 당신을 체포한다. 우리와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다. 뉴먼은 안경을 챙겨 나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요원들은 “우리 시야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며 그 요구를 거부했고, 뉴먼의 몸을 수색한 후 수갑을 채웠다. 뉴먼은 그들이 자신에게 미란다 원칙(Miranda rights)조차 말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뉴먼은 요원들이 자신을 작은 쉐보레 차량 뒷좌석에 태울 때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그는 “공황 상태에 빠진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게 그들이 원하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니덤과 보스턴은 약 32km 떨어져 있어 (이른 아침이라) 법원까지 금방 갈 만한 거리였다. 하지만 뉴먼에 따르면, ‘두 멍청한 FBI 요원이’ 작은 마을과 후미진 도로를 따라 그를 장시간 끌고 다녔다. 20분이면 충분히 갈 거리를 90분이나 돌아갔다.
뉴먼은 오전 8시 쯤 법원에 도착했고, 결국 철창에 갇혔다. 뉴먼이 갇힌 감방 안에는 은행 갈취 혐의를 받는 남성도 갇혀 있었다. 그는 뉴먼에게 무엇 때문에 잡혀왔는지 물었다. 뉴먼은 내부자 거래 혐의를 받고 있다고 대답했다. 남성은 “오, 나랑 같군요”라고 말했다. 뉴먼은 두루마리 화장지 하나를 베고 잠이 들었다. 몇 시간 후 연방 법원 집행관이 뉴먼의 지문을 기록하고, 그의 상반신 사진을 찍었다. 방 안에는 다른 7명 가량의 집행관들이 영화 ‘디파티드 Departed’를 보고 있었다. 보스턴 경찰을 다룬 마틴 스코세이지 Martin Scorsese 감독의 영화였다. 뉴먼은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그들은 서로에게 ‘와, 이 부분 끝내줘’라고 말하며 모두 넋을 놓고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집행관이 영화에 정신이 팔려 처음 지문을 찍을 때 뭉개기까지 했다고 털어 놓았다. 뉴먼은 그날 늦게 보석금 100만 달러를 내고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뉴먼은 자신을 상대로 한 기소 내용을 꼼꼼히 훑어봤다. 그는 레벨 글로벌의 앤서니 키아손과 함께 기소됐다. 뉴먼은 당시 그와 서로 잘 알지도 못했던 사이였다고 말했다. 피고들에 대한 정부 측 주장의 요지는, 그들의 리서치 애널리스트들-뉴먼의 토르토라와 키아손의 아돈다키스로 둘 모두 유죄를 인정하고 검사 측과 협조 중이었다-로 구성된 집단과 다른 이들이 ‘특정 IT 상장기업 직원들로부터 직간접적으로 획득한 미공개 중요 정보’ 를 서로 교환했다는 것이었다. 토르토라가 종종 ‘파이트 클럽 Fight Club’이라 부르던 애널리스트 집단이 이 내부 정보를 뉴먼과 키아손에게 넘겼고, 두 사람이 이를 바탕으로 거래를 했다고 주장이었다.
정부 측은 토르토라가 기소되지 않은 ‘모의 동조자’ 샌디 고열 Sandy Goyal로부터 델에 대한 ‘내부 정보’를 입수했고, 고열은 델의 투자 관계부서에서 일하는 내부자로부터 해당 정보를 얻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뉴먼이 활용했다고 의심되는 정보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가 그 정보를 받은 4번째 인물이라는 얘기였다. 예를 들면, 2008년 5월 29일 열린 델의 실적 발표 전에 회사 내부자-후에 델의 투자 관계부서 직원 롭 레이 Rob Ray로 밝혀졌는데, 검찰 측으로부터 아무런 기소도 당하지 않았다-가 델의 총 마진이 예상치를 상회할 것이라는 정보를 고열과 공유했다고 판단했다. 정부 측은 고열이 해당 정보를 토르토라에게 넘겼고 토르토라는 이를 뉴먼에게 넘겨, 그가 이 정보를 이용한 거래를 통해 다이아몬드백 투자자들에게 100만 달러의 수익을 안겨줬다고 주장했다(동일한 정보가 아돈다키스에게 갔고, 이는 키아손에게 넘겨졌으며, 그가 이를 활용해 400만 달러의 수익을 냈다고도 주장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같은 형태의 정보 흐름이 2008년 8월 델의 실적 발표 이전에도 발생했다. 기소 내용에는 ‘뉴먼과 키아손이 2009년 엔비디아 Nvidia 실적 발표 때에도 내부 정보를 활용해 거래를 했다’는 주장이 들어 있었다. 뉴먼과 키아손은 각각 여러 건의 증권 사기죄와 1건의 증권 사기 모의죄로 기소를 당했다. 정부는 뉴먼이 불법적으로 총 400만 달러를 획득했다고 주장했다.
뉴먼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델의 2008년 5월 분기 실적을 확인 후, 총 마진이 예상보다 컸던 게 아니라 적었던 사실을 발견했다. 월가에선 델의 해당 분기 마진을 18.5%로 예상했지만 실제는 18.1%였다. 그는 ‘그들이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나를 기소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곧바로 파브리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뉴먼은 자신의 변호사에게 “내가 어떤 정보를 받았는지 기억이 안 날뿐 아니라, 그들이 가진 정보도 틀렸다”고 말했다. 파브리스는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뉴먼은 더 실력 있는 변호사를 새로 선임할 때라고 판단했다(다이아몬드백이 가입한 보험이 1,020만 달러 규모의 뉴먼 소송 비용 중 95%를, 뉴먼 자신이 나머지를 부담했다). 그는 뉴욕 로펌 시어먼 앤드 스털링 Shearman & Sterling의 스티븐 피시바인 Stephen Fishbein과 존 네이선슨 John Nathanson을 새로 고용했다. 그들은 즉시 델의 총 마진에 대해 뉴먼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새 변호사들은 뉴먼에게 “그들이 말도 안 되는 혐의로 당신을 기소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사실 관계 혼동은 연방 판사 리처드 설리번 Richard Sullivan이 주재한 재판에선 뉴먼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부를 대신해 소송을 제기한 앤토니아 앱스 Antonia Apps는 “델의 정보가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중요한 건 해당 정보가 애초에 공유돼선 안 된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뉴먼이 해당 정보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또는 미공개 중요 정보인지 등을 알고 있었는지 여부와 관계 없이, 이를 이용해 거래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뉴먼은 재판 과정에서 더 불쾌한 일을 겪었다. 2012년 말 맨해튼 연방 법원에서 6주에 걸쳐 일어난 일로, 바로 그의 전 애널리스트 토르토라가 자신에 대해 얘기한 내용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 때까지 두 사람은 서로 잘 지내지 못했다. 뉴먼은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며 “(그래서인지) 좋은 관계로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뉴먼은 함께 일한 지 2년이 조금 지난 2009년 말, 토르토라의 실적이 나빠 해고했다고 말했다. 뉴먼은 그럼에도 그 해 토르토라에게 연봉 70만 달러를 지급했다고 밝혔다. 그 한 해 전에는 토르토라의 수입이 200만 달러 이상이었다. 뉴먼은 “그가 화를 냈다”고 말했다. 뉴먼은 그에게 새 직장을 알아보라고 몇 개월 간 시간을 준 후 해고했다. 토르토라는 분노했다.
토르토라는 유죄를 인정하고, 검찰이 뉴먼을 기소하는 데 도움을 주기로 했다. 뉴먼은 토르토라가 “돈을 다 써버리고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정부에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재판에서 토르토라는 자신이 단타 주식거래와 도박으로 수십만 달러를 날렸다고 증언했다. 재판에서 뉴먼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자, 토르토라는 “그를 증오한다. 지금도 그가 싫다”고 말했다(변호사를 통해 토르토라에게 코멘트를 요청했지만 그는 답하지 않았다).
이틀간의 심리 끝에 배심원단은 2012년 12월 17일 4건의 증권 사기와 1건의 증권 사기 모의죄에 대해 뉴먼과 키아손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뉴먼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판결문이 낭독되는 동안 의도적으로 아무런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배심원단은 ‘기밀 정보의 출처에 상관 없이, 해당 정보가 불법적으로 취득된 것임을 트레이더가 몰랐다고 해도 거래에 활용돼선 안 된다’는 검찰의 손을 들어주었다. 뉴먼의 변호인단은 이것이 기존 판례를 뒤집는 새로운 법이라고 주장했다. 뉴먼의 유죄 판결 전까지는 ▲기밀과 미공개 정보를 공유한 내부자가 주주에 대한 신의성실 의무를 위반하고, ▲입수한 정보를 활용해 거래한 인물이 해당 정보가 부적절하게 획득된 사실을 알았을 경우에만 불법 행위였다는 주장이었다.
앱스는 뉴먼 자신이 델과 엔비디아에 대한 정보가 ‘나쁜 정보’였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뉴먼은 “기소된 정보 제공자가 한 명도 없다. 델과 엔비디아 관계자들은 형사는 물론 민사상으로도 기소되지 않았다. 정보 제공자를 기소하지 않으면, 내부자 거래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013년 5월 2일, 판사 설리번은 뉴먼에게 연방 교도소 54개월 형을 내렸다. 뉴먼은 “내가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54개월 형을 받았다”며 “법원이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비난했다. 그는 100만 달러의 벌금과 함께 부정하게 취득한 보너스 73만 7,724 달러에 대한 압류 처분도 받았다. 당시 뉴먼이 가진 유동자금의 절반 정도였다.
바라라는 공개 성명서를 통해 뉴먼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겼다. 그는 재판 후 “오늘 판결을 통해 토드 뉴먼은 자신의 행위로 처벌 받을 부패집단의 첫 번째 인물이 되었다” 고 말했다. “불법적으로 우위를 점해 시장을 교란시키는 시도를 하면, 현재의 토드 뉴먼처럼 결국엔 자유를 박탈당하게 된다.”
3개월 후 뉴먼은 자신의 유죄 판결에 대한 항소를 제2순회 항소법원(Second Circuit Court of Appeals)에 제출했다. 배심원단의 유죄 평결 내용이 범죄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요지였다. 최소한 수십 년 간 적용됐던 내부자 거래 법률에 비춰보면 무죄라는 주장이었다. 뉴먼의 변호인단은 법률을 배심원단에게 적절히 설명하지 못한 판사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시어먼 앤드 스털링의 변호인단은 ‘종합적으로 볼 때, 뉴먼은 부적절하게 획득됐다고 알았던 정보를 이용해 거래를 해서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 아니다’라는 의견을 제출했다. ‘배심원단은 이런 내용이 입증돼야 한다는 점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고, 정부도 이에 대한 증거를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그리고 뉴먼은 일반 투자자들이 갖지 못한 정보를 이용해 수익을 올렸다는 사실만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것은 범죄가 아니다.’
2014년 12월 10일, 3명으로 구성된 제2순회 항소법원 판사들은 뉴먼의 손을 들어주며 키아손과 뉴먼에 대한 유죄 판결을 무효화했다. 판사들은 ‘검찰의 주장에 결함이 있으며, 설리번 판사가 배심원단에게 설명하면서 실수를 범했다’고 판결했다. 항소법원의 판결 내용 중 중요한 부분은 뉴먼과 키아손이 ‘신의성실 의무를 위반한 내부자들로부터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거래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 ‘아무런 증거도’ 재판에서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바라라는 곧바로 포기하지 않았다. 먼저 그는 제2순회 항소법원 ‘전원합의체(en banc)’의 판결을 요청했다. 3인으로 구성된 판사들뿐만 아니라, 법원 소속 모든 판사들에게 판결을 재심해달라고 요구한 것이었다. 2015년 4월 법원은 바라라의 요청을 기각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제2순회 항소법원 판결에 대한 재심의를 거부하면서, 뉴먼은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10월 22일 바라라는 토르토라를 포함해 뉴먼 소송에서 유죄를 인정했던 ‘협조 증인’ 6인에 대한 기소를 철회했다. 그는 이들의 유죄 인정을 유지하는 건 ‘정의를 위하는’ 길이 아니라고 말했다. 토르토라의 변호사는 ‘나의 고객은 5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끝에 무죄 판결을 받고 매우 기뻐하고 있다. 마침내 정의가 실현됐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뉴먼은 당연히 바라라가 자신을 무모하게 잘못 기소했다고 믿고 있다. 그는 “바라라는 월가의 모든 다른 사람들이 선을 넘었다고 비난하는데, 나에 대한 소송에선 그가 바로 그 선을 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바라라가 쇼타임 Showtime의 인기 프로그램 빌리언즈 Billions-내부자 거래를 하는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 소탕에 열중하는 뉴욕의 한 무자비한 연방 검사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의 프로듀서를 도와주었다는 글을 읽고 처음에는 불쾌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을 가볍게 다루려는 생각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뉴먼은 방송을 보고 난 후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그들은 사실 남부지역 미국 검사보다 헤지펀드 매니저를 더 멋지게 그렸다”고 말했다.
요즘 뉴먼은 그의 삶을 다시 되돌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주식 거래도 조금씩 하고 있다. 하지만 다시 헤지펀드 업체에 고용될 기회가 전혀, 혹은 거의 없어 굳이 시도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는 자신과 유사한 상황을 겪는 다른 이들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업을 시작할 생각이다.
그는 어렵게 얻어서 공유하고 싶은 교훈을 많이 갖고 있다. 재판 자체가 특히 고통스러웠다. 그는 “그 자리에 앉아 5주 동안 갈갈이 찢기는 것”이 특히 괴로웠다고 말했다. 모욕을 받은 뉴먼은 그 때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잃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추스르고 싸움을 계속했다. 뉴먼 자신은 그 과정에서 우리의 월가 규제 방식을 영원히 바꿔 버렸는지도 모른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BY WILLIAM D. CO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