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큰 집>위대한 건축물엔 '특별한 것'이 있다

■구본준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파르테논 신전서 종묘·경복궁까지
기둥 줄지어 세우는 '열주' 방식으로
장엄함·절제된 아름다움 표현해내
"위대한 건축은 독창적 정신의 산물"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이집트의 핫셉수트 신전,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광장 등 인류의 ‘위대한 건축’에는 공통점이 있다. 세계 최초의 박물관인 영국박물관과 신고전주의 작품인 베를린 구 박물관. 나아가 일본 교토의 산주산겐도 사찰, 티베트의 라브랑 사원까지도 아우르는 디자인의 공통분모. 바로 줄지어 늘어선 ‘기둥’이다.

‘땅콩집’ 붐을 일으킨 ‘두 남자의 집짓기’ 등 저서와 다양한 건축평론글을 써 온 구본준은 신간 ‘세상에서 가장 큰 집’에서 공공건축을 통해 무엇이 건축을 위대하게 만드는지에 대해 접근했다. 일간지 기자였던 그는 2년 전 이탈리아 현지 연수 중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맨홀 뚜껑이나 창틀, 가로등처럼 우리를 늘 감싸고 있지만 눈여겨 보지 않는 주변의 디자인에 대한 관심을 늘 일깨우던 그의 호기심과 관찰력, 박학다식과 애정이 책에 짙게 배어 있다.

이집트의 신전이자 왕의 무덤인 핫셉수트 장제전 /사진제공=한겨레출판
서양건축의 고전이 된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사진제공=한겨레출판
이 책에서 저자가 주목한 공공건축이란 개인 소유의 ‘우리 집’ 말고 ‘우리 모두의 집’이라 불리는, 즉 “우리 세금으로, 시민 모두를 위해 짓는 여러 건물”을 일컫는다. 특히 줄기둥에 깊은 관심을 보인 그는 “긴 건물을 떠받치는 기둥이 거의 소실점이 보일 정도로 길게 늘어선 장면은 그 자체로 장관”이라며 “가장 단순한 방식이 가장 매력적인 다자인이며 놀랍게도 인류는 아직도 이 줄기둥처럼 강력한 디자인을 찾아내지 못했고 결국 동서고금 통틀어 모든 위대하고 특별한 건축은 기둥을 줄지어 세우는 디자인을 지금도 반복한다”고 말한다.


기둥을 줄지어 세우는 열주(列柱) 방식으로 건물의 신성함을 끌어올린 건축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바로 종묘다. 특히 종묘에서도 왕을 모시는 핵심 건물인 정전은 한국에서 가장 긴 목조 건물로, 길이가 101m”에 이른다. 종묘의 디자인은 아주 단순하다. 지붕도 화려한 팔작지붕이 아니라 단순한 맞배지붕이며 제사 공간으로 비워놓은 앞마당 때문에 적막감이 흐를 정도다. 그러나 이 절대적인 고요함 속에 오묘한 기운이 충만하다. 신들이 사는, 세상에서 가장 큰 집이라 불릴 만하다.

일례로 스페인 구겐하임 빌바오미술관 등으로 유명한 현대 건축 최고의 스타인 프랭크 게리는 2012년 가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종묘를 방문했고 “아름다운 여성이 왜 아름다운지 이유를 대기 어려운 것처럼 아름다운 것을 말로 설명할 수 없다”면서 이처럼 장엄한 느낌의 건축은 파르테논 신전이 유일하다고 극찬했다.

종묘 정전은 한국에서 가장 긴 한옥으로 조선왕조의 500년 역사와 함께 유기체처럼 칸이 늘어났다. 지붕의 색깔이 다른 부분이 시대에 따라 증개축한 흔적이다. /사진제공=한겨레출판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목조건축으로 길이가 101m에 이르는 종묘 정전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들. /사진제공=한겨레출판
종묘를 시작으로 우리의 문화적 자부심을 세워준 저자는 조선의 정궁 경복궁도 자세히 소개한다. 경복궁은 원래 8,000칸에 이르는 규모였다. 칸수로는 베르사유 궁전보다 훨씬 크고 자금성과 맞먹는다. 그러나 경복궁은 일제로부터 철저하게 훼손됐고 여전히 제대로 복원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중국의 자금성은 타지마할이나 앙코르와트 같은 건축에 비해 황홀한 아름다움은 덜하지만 권력과 정치관계를 구현한 결정체로 중화주의를 전파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20년마다 건물을 헐고 새 건물을 짓는 방식으로 영원성에 도전하는 ‘이세 신궁’이 있다. 땅을 두 필지 마련해 양쪽에 번갈아 새 건물을 짓는 방식으로 서기 260년부터 2,000년 동안 고대 목조건축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이탈리아 산 피에트로 광장을 둘러싼 줄기중은 도리아식 원기둥 284개와 각기둥 88개로 이뤄져 있다. /사진제공=한겨레출판
궁궐이라기 보다 하나의 도시로 불릴 만한 규모인 중국의 자금성 /사진제공=한겨레출판
건축물은 도시를 상징하고, 역사와 기술을 반영하며 문명과 문화를 대변한다. 저자는 “위대한 건축이란 규모로 압도하는 건축이 아니라 독창적인 정신을 담은 건축”이라며 “자금성과 비교하며 경복궁의 규모에 위축될 것이 아니라, 나라 잃은 아픈 역사를 간직한 경복궁의 진면목을 우리 스스로 재발견해야 할 때”라고 꼬집는다. 1만4,5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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