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12월 전격적으로 이뤄진 미·쿠바 국교 정상화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대표적인 외교 유산이다. 피델 카스트로 전 의장이 1959년 쿠바에서 친미정권을 무너뜨리고 공산화에 성공한 후 구소련의 미사일 기지 추진으로 1961년 양국 국교가 단절된 지 53년 만에 이뤄진 외교적 성과다. 이후 미국은 지난해 쿠바 수도 아바나에 대사관을 개설한 데 이어 상업교류 활성화와 여행제한 해제, 환전절차 간소화 등을 잇따라 추진했다. 특히 3월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는 88년 만에 쿠바를 방문해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정상회담을 열고 양국 간 정기 항공 운항이라는 상징적 합의까지 이끌어냈다.
급격한 해빙 무드가 악재를 만난 것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공화당의 의회 장악이다.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오바마가 아무 대가도 없이 쿠바를 경제·정치적으로 지원했다”고 비난하며 당선 이후 쿠바 민중과 미국을 위해 더 나은 딜(deal)에 나서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 역시 국교 정상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쿠바 금수조치 해제를 반대하며 교류 확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 정부 출범을 기점으로 미국의 대쿠바 정책이 온건에서 강경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지난 3월21일(현지시간) 쿠바 아바나에서 88년 만에 열린 역사적 정상회담을 마친 버락 오바마(왼쪽)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기자회견 도중 서로 마주 보며 미소 짓고 있다. /아바나=EPA연합뉴스
하지만 전문가들은 독재의 상징인 피델의 퇴장이 양국 관계를 한 단계 진전시킬 새로운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 당선인이 논평을 통해 피델 카스트로를 혹평하면서도 “우리 행정부는 쿠바인들이 번영과 자유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힌 것에 주목했다. 오바마 정부보다는 노선이 다소 강경 기류로 바뀔 수는 있지만 기존 국교 정상화의 흐름을 완전히 뒤집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양국 관계 개선 속도가 오히려 더 빨라질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피델 사후 동생인 라울 의장이 국정운영에 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내다봤다.
텍사스대의 쿠바 전문가인 아르투로 로페스 레비 교수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피델이 없어져 라울이 시장 중심 개혁에서 힘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AFP는 이와 함께 고령의 라울 의장 역시 2018년 은퇴할 예정이어서 2인자인 미겔 마리오 평의회 수석부의장 등 혁명 이후 세대가 순조롭게 권력을 물려받으면 쿠바의 정치·경제 개혁 속도가 빨라질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결국 트럼프 정부의 대쿠바 정책은 ‘관계 정상화’라는 오바마 정부의 큰 틀은 유지하되 쿠바 정부의 정치·경제 개혁 여부에 따라 속도를 조절하며 미국의 이익을 관철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