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5A02 설비투자 증감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수출 부진을 메워온 내수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기업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불확실성이 높아져 움츠리고 있는 가운데 다음달 총수들의 국정조사 출석, 최장 120일의 특검 등으로 투자는 급속히 위축될 것으로 우려된다. 소비 역시 경기는 부진한데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다 시중금리 상승으로 원리금 상환 부담도 늘어 급격히 쪼그라들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기업들의 ‘투자절벽’이 불가피하다. 트럼프 당선으로 전 세계 무역 질서가 뒤바뀔 것으로 보이면서 기업들은 일단 투자계획을 멈추고 동향을 살피고 있다. 여기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당장 삼성·현대차를 비롯해 재계 총수 9명은 다음달 5일 국회 국정조사에 출석하며 최장 4개월 동안 열리는 특검에도 대비해야 한다. 익명의 한 기업 관계자는 “총수가 여기저기 불려다니는데 신규 투자가 눈에 들어오겠느냐”고 반문했다.
경기 사이클상의 투자여건도 좋지 않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공장 가동률이 높아져야 설비투자도 늘릴 텐데 지금은 가동률도 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건이 안 팔려 있는 기계도 안 돌아가고 있는데 새로운 기계를 살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다. 지난 9월 현재 제조업 가동률은 71.4%로 9월 기준으로는 금융위기 때인 2009년(79.9%)보다 낮았으며 1998년(68.6%) 이후 18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이 연구위원은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언제 수그러들지 가늠하기 힘들고 만약 줄어든다 해도 트럼프발 불확실성은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산업연구원은 지난해 5.3%를 기록한 설비투자 증감률은 올해 3.8%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2009년(-7.7%) 이후 가장 낮다. 산업연에 따르면 올해 기저효과에도 불구하고 내년 2% 증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2915A02 부문별 소비
2915A02 가계향후
더 큰 걱정은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민간 소비의 위축이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11월 소비자심리지수(CSI) 중 향후경기전망 CSI는 64로 한 달 사이 무려 16포인트나 급락했다. 2008년 12월(55) 이후 약 8년 만에 가장 낮다. 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밑돌면 부정적 응답자가 더 많다는 뜻이다. 6개월 후의 경기가 지금보다 안 좋아질 것이라는 응답이 급증했다는 의미다. 소비지출전망 CSI는 1포인트 내린 106을 기록했으며 세부적으로 자동차 등 내구재, 의류, 외식, 교양·오락·문화비 지출의 CSI가 동반 급락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가계소득은 늘지 않는데 시중금리는 오르면서 원리금 부담이 커진 가계의 소비 여력은 더욱 축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3·4분기 실질 경제성장률은 2.7%(전년 대비)를 기록했지만 가계의(전국 2인 이상) 실질 소득은 0.1% 줄었다. 경제성장률은 그래도 2%대를 이어오고 있지만 가계소득 증감률은 5분기 연속 줄어 사상 최장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이런 가운데 물가까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조짐마저 나타나 소비위축을 부채질하고 있다. 주 실장은 “향후 탄핵정국이 본격화하면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심리 위축과 내수 실물경기 위축도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그동안 경기를 지탱해온 건설투자도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연구위원은 “4·4분기 가계부채 대책으로 분양 열기가 식으면서 건설투자는 큰 폭으로 둔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LG연의 전망에 따르면 건설투자는 지난해 3.9% 성장하고 올해 7.6% 불어나지만 내년에 0.6% 증가로 폭이 대폭 둔화할 것으로 보인다. 가계부채 대책, 최근의 시중금리 오름세 등이 반영되면 건설투자가 내년 마이너스로 돌아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내수가 침몰하고 있지만 정부 대책이 약발을 발휘할지도 안갯속이다. 기획재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순실 사태로 가장 뼈 아픈 건 정부가 ‘신뢰의 위기’에 직면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원동 전 경제수석 등 정통 관료가 비위행위에 휘말리면서 정책 신뢰도가 땅에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경기를 살리기 위해 다음달 정부가 발표할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부터 국민, 시장 관계자들에게 먹혀들지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