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화 최명화&파트너스 대표
우린 누구나 자신만의 ‘각(角)’이 있다. 세상을 받아들이고 주변 일을 해석하는 고유의 앵글로서의 ‘각’이다. 너무 좁으면 편협해지지만, 너무 넓어도 밍밍하니 재미가 없다. ‘각’이 있어야 (현재의 생각과) 배척되는 생각도 생기고, 나와는 다른 ‘각’과의 충돌에서 오는 긴장감과 깨달음도 얻을 수 있기 떄문이다. 마케터인 나로서는 세상을 보는 ‘각’이 마케팅이다. 흥미로운 제품을 볼 때도 나에게 필요한 정보보다는 시장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어떠할까를 먼저 유추하게 되고,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도 저 사람은 어떤 소비형태를 지닌 어느 세그먼트에 속한 사람일까를 짐작해 본다.
‘직장생활 자체가 마케팅이랑 똑같다’. 이런 말을 후배들에게 한 적이 있다.
기업이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고, 의도적인 이미지를 부여하면서 특정 소비층에 어필하려 애쓰는 과정, 결과적으로 누가 더 빨리 선점하고, 누가 더 많이 받아들여졌느냐에 따라 더 놓은 가치의 상품이 되기도 하고, 뜻밖에 단종되기도 한다.
시장내 탄탄한 입지를 가지고 있는 기업의 안정적 지원을 받으며 치밀한 계획 하에 탄생하는 상품도 있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혜성처럼 나타나 시장을 사로잡는 상품도 있다.
목적을 부여하고 생산하고 어필하고 라이프 사이클을 관리하는, 일체의 과정은 다시금 ‘브랜딩’이라는 말로 총체가 될 수 있으며, 이는 우리네 인생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의식하든 안 하든, 자발적이든 수동적이든, 꾸역꾸역 해내고 있는 개인의 ‘셀프 브랜딩’ 과정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오랜 기간 워킹맘으로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마케팅을 공부하고 경영 컨설턴트로 커리어를 시작해서 몇 개의 대기업에서 마케팅 최고 책임자를 역임했다. 힘들고 답답했던 시간들도 많았고 혼란스럽게 비틀거리며 길을 잃는 두려움도 느꼈다.
그 흔한 입사 동기 하나 없었고 맘 터놓고 지낼 직장 선배는 더더욱 없었다. 최초의 여자 팀장, 유일한 여자 임원이라는 수식어는 훈장이 아닌 족쇄의 막막함이었다. 그래서 이야기를 좀 풀어내 보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통하는 성공 방정식 이런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겠지만, 그나마 조금 더 현명하게, 실수를 줄여가며 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희망적 가정 아래, 나의 경험과 나의 배움을 재미있고 유익하게 그러나 깐깐하고 체계적으로 한번 풀어내 보고자 한다.
싸움터의 규칙, 직장의 규칙을 파악해야 한다. 이 곳은 어떤 곳인지, 어떠한 규칙으로 지배되는 세상인지 파악해야 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오늘은 그 긴 이야기의 첫 번째 편이다. 직장 생활에서 필수적인 전략적 사고를 위한 전체 프레임의 서론이라 할 수 있다. 마케팅적 접근 방식을 직장 생활에 접목시킨 6단계 직장 생활 성공 필살기 프레임인 셈이다. <1단계> 성취의 목적 부여 단계다.
마케팅으로 따지면, 기업이나 상품의 KPI(key performance index) 설정 단계다. 직장 생활을 통해 내가 얻고자 하는 것, ‘나’라는 사람의 성취에 대한 궁극적 목적을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형태로 설정하는 것이다. 막연히 행복해지려고 또는 사회에 봉사하고 자아를 성취하려고 한다는 등의 목적은 자격 미달이다.
일단 말도 어렵고, 측정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구속력이 ‘빵점’이다. 친구들이 모두 다니니까 나도 다녀야 한다던가, 엄마의 자랑거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던가 하는 목적들은 가변적이어서 지속 가능하지가 않다. 지극히 스스로 달성해야 한다는 목적 의식이 있어야 하고, 달성 혹은 미달성이 분명해 스스로 평가가 가능해야 한다. 매우 속물적인 성격일 수도 있고, 아주 현실적이어서 일어나기 싫은 나를 이불 속에서 끄집어 낼 수 있는 구체성이 전제돼야 한다. 다른 건 다 모르겠지만, 무조건 이 회사 임원은 되야 한다던가, 3억원을 모을 때까지는 반드시 월급 봉투를 받고야 말겠다던가, 5년 후 이 분야에서 내 회사를 차려 독립하고 말겠다던가 하는, 나의 게으름과 나태함을 지배하고 매일매일의 직장 생활을 리드할 수 있는 현실적 이유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자꾸 사업하겠다며 슬금슬금 돈을 까먹는 남편의 존재는 하나의 축복이다. 별 다른 고민 없이 나의 직장 생활의 목표를 분명히 해주니까 말이다.
<2단계> 싸움터의 규칙, 직장의 규칙을 이해하는 단계다.
마케팅에서 말하는 시장 이해의 단계, 시장과 고객에 대한 인사이트를 수집, 분석하는 단계다. 이곳은 어떤 곳인지, 어떠한 규칙으로 지배되는 세상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표현되고 명시된 것보다 암묵적이고 은밀한 규칙들이 힘을 더 발휘하는 곳이 직장이란 곳이다.
딱히 끄집어 내 말해주지도 똑 부러지게 요구되지도 않지만, 원래 이런 거고 직장이 다 그런 거다라는 보이지 않는 규칙들이 있다. 조직 문화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뭉뚱그려 조직 분위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을 곧잘 한다는 평가를 넘어서 일을 아주 썩 잘하는, 조직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듣기 위해서는 이 규칙들을 면밀히 파악하고 이해해야 한다. 가장 핵심적인 규칙으로는 조직이 갖는 ‘가변성’과 ‘불확실성’의 규칙. 그 하나하나를 풀어내가면서 직장내 나의 태도와 행동을 규정해 보는 것이 이 단계의 필살기다.
<3단계> 핵심 성공 요인을 선점하는 단계, 마케팅의 경우 내 상품을 차별화시키는 단계다.
업무에 대한 지식, 태도, 커뮤니케이션 스킬, 언어 능력, 훈훈한 외모에 이르기까지 직장내 성공을 가늠하는 수많은 요인들이 있겠지만, 그 중심에는 ‘철갑멘탈’이 존재한다. 위기는 누구에게나 있다. 하루 중 한 고비 두 고비가 올 수도 있고, 길게 보면 어떤 시점의 1~2년일 수도 있다. 어떻게 그러한 시기를 견뎌내고, 더 나아가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지, 척박하고 때로는 처절할 수 있는 직장에서의 성공 요인은 다른 어떠한 기술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나의 태도를 지배하는 ‘철갑멘탈’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누가 단단히 움켜 쥐느냐, 누가 그 핵심에 먼저 도달했느냐가 나의 차별성을 강화한다.
<4단계> 차별화가 확보된 다음에는 본격적인 브랜딩의 단계다.
나에 대한 이미지를 부여하고, 특정 단어를 연상케 하며, 가치를 부각시키며 포지셔닝을 주도하는 단계다. 강점은 칼끝처럼 더욱 날카롭게 연마하되, 약점은 기술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열등감을 무기로 만들어 나에 대한 또 하나의 상징성으로 삼으면서, 나에 대한 스토리를 완성해야 한다. ‘자뻑’은 기본, 매일 밤 ‘자뻑 일기’를 쓰면서 잠들어야 하는 단계이다. 내가 믿지 않는 브랜드는 아무도 사주지 않는다. 가치를 분명히 하고 내가 먼저 반해야 한다. 그렇게 ‘대체불가한’ 브랜드로 나를 완성시키는 단계다.
자뻑은 기본, 매일 밤 ‘자뻑 일기’를 쓰면서 잠들어야 한다. 내가 믿지 않는 브랜드는 아무도 사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5단계> 고 투 마켓(Go To Market), 주변 소통 단계다.
너무도 훌륭하지만 나만 알고 있으면 무용지물. 소용없는 매체에 커뮤니케이션을 하려고 힘 빼는 짓도 어리석다. 가장 필요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나를 드러내고 알려야 한다. 직장에서의 자신의 욕망도 드러내고, 지지해 줄 서포터 발굴에 정성을 쏟고, 마음을 다해 멘토를 곁에 두어야 한다. 정기적으로 피드백을 구하는 용기, 상사를 빛나게 만들고, 후배를 신나게 만들어 주면서, 주변의 지지를 이끌어 내야 한다. 나 스스로 성공하겠다는 것이 아닌 ‘남을 통해 내가 성공하겠다’는 전략이어야만 지속 가능한 곳이 직장이다. 까다롭게, 치밀하게 그러나 마음 다하는 진정성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단계다.<6단계> 성공적인 직장 생활을 위한 마지막 단계다.
출시되자마자 얼마 못 가 개점 휴업 상태에 놓이는 상품이 아닌, 오래오래 사랑 받는 상품이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지속 가능한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일과 삶의 융합 단계다. 일과 삶의 균형(Work life balance)이라는 막연한 전제로 자신의 일상 생활이 엉망이라 치부할 필요는 없다. 일을 택했다면 일 중심으로 삶을 융합시키고, 보다 여유로운 생활을 택했다면 그것을 중심으로 일을 융합시켜야 한다. 일하는 여자, 특히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더 엄격한 트레이드 오프(trade off?한쪽을 추구하면 부득이 다른 쪽을 희생해야 하는 이율배반적인 관계)를 감행해야 하며, 보다 큰 가치를 위해 소소한 가치를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지속 가능해진다.
생각보다 긴 싸움이 직장 생활이다. 그냥 덤벼들어 잘해봐야지, 열심히 해야지 하는 것은 대단히 무모한 자세다. 차분히 짜보는 전략이 필요하고, 틈틈이 참조해야 할 조언들이 절실하다. 부족하지만 그 출발의 의미로 몇 자 적어보면서 서문을 대신하고자 한다. 이 땅의 많은 워킹우먼들에게 뜨거운 응원과 사랑을 전한다.
/최명화 최명화&파트너스 대표 myoungwha.choi00@gmail.com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의 마케팅 컨설턴트, LG전자 최연소 여성 상무, 두산그룹 브랜드 총괄 전무를 거쳐 현대자동차 최초의 여성 상무를 역임했다. 국내 대기업 최고 마케팅 책임자로 활약한 마케팅계의 파워 우먼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최명화&파트너스의 대표로 있으면서 국내외 기업 마케팅 컨설팅 및 여성 마케팅 임원 양성 교육 프로그램인 CMO(Chief Marketing Officer) 캠퍼스‘를 운영하고 있다. 오랜 직장 생활을 통해 직접 경험하고 터득한 ’조직에서 스마트하게 승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현장 전략서 ’PLAN Z(21세기북스)‘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