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인천시에 따르면 ‘스튜어드 호텔(怡泰樓)’은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인 대불호텔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진 호텔이다. 스튜어드 호텔 표지석의 발견으로 대불호텔에만 쏠렸던 관심이 두 번째 호텔인 스튜어드에 대한 새로운 연구로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에 따르면 호텔의 건립 시기는 1888년경으로 알려졌으며 스튜어드호텔의 표지석이 발견된 곳은 인천시 중구 북성동 차이나타운내 화교협회 회의청 앞마당이다.
표지석은 적어도 100여 년간 인천화교들의 격랑의 근현대사를 묵묵히 지켜봐온 귀중한 유물이다.
표지석에는 ‘華商 怡泰地界’라고 쓰여져 있으며 인천화교협회 회의청 앞 마당 수풀사이에 가려져 있어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 존재를 알 수 없다.
스튜어드호텔의 원래 자리는 중구 한·중문화관에서 올라와 차이나타운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길목이다. 지금 본토(本土)라는 중국집이 있는 자리다. 본토 자리에 있어야 할‘華商 怡泰地界’표지석이 언제부터 인천화교협회에 보관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이태루를 운영하던 중국인 양기당(梁綺堂)이 인천화교협회 2대 회장(1919~1928)을 지냈던 인연으로 이곳으로 오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양기당은 오랫동안 인천화교협회 회장을 지냈다.
이태루는 1883년 인천항 개항 당시 한국을 방문했던 주요 인사들이 숙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인천시 관계자는 “이태루가 쇠락한 이유는 1899년 경인 철도 개통 때문으로 보인다”면서 “조랑말과 가마 외에 다른 교통수단이 없어 서울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루 이틀 인천에 묵어야 했는데 경인철도의 개통으로 그럴 필요가 없어지면서 경영난에 부딪쳤고 결국 폐업된 것으로 추측된다” 라고 말했다.
이태루가 폐쇄된 뒤 에는 일제때 동흥루(東興樓)라는 중국요리점이 들어섰고, 6.25 전쟁 중에는 월미 연탄공장으로 사용됐으며 그 이후에는 화교들의 가정집, 주류창고 등으로 사용되다 10여 년 전부터 본토라는 중국집으로 활용되고 있다.
조우성 인천시립박물관장은 “華商 怡泰地界 표지석이 이제는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면서 “화교협회 마당에 아무도 관심없는 곳에 놓아둘 것이 아니라 원래 자리에 놓아 역사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천=장현일기자 hicha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