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지켰던 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전환을 처음으로 공식화했다. 지난달 등기이사로 선임된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에 속도를 내고 지배구조 개편도 본격화하겠다는 의미다.
‘최순실 게이트’, 갤럭시노트7 단종 등 어려운 경영여건에도 불구하고 지주회사 전환과 경영권 승계를 통해 정면 대응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도 담겨 있다.
아울러 지주회사 카드는 삼성전자의 지배구조 개편을 줄기차게 요구해온 외국인투자가와 소액주주들의 이해관계도 반영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투자(IB)업계에서는 “드디어 삼성전자가 지주회사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며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재용 부회장 경영권 승계 속도=삼성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이 부회장 등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주회사 전환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삼성전자가 인적 분할을 통해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눠지면 이 부회장은 사업회사 지분을 지주회사에 현물 출자하고 신주를 받는 형식으로 삼성전자 지주회사 지분을 크게 늘리게 된다. 결국 이 부회장과 특수관계인→삼성전자 지주회사→삼성전자 사업회사와 전자계열사 등으로 연결되는 지배구조를 짜게 된다.
현재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0.6%에 불과하다. 이건희 회장과 특수관계인, 계열사 지분을 합해도 18.2%에 그친다. 반면 외국인 지분율은 50.0%를 웃돈다. 이 부회장 등 오너 일가로서는 안정적인 경영권을 유지하려면 지분율을 높여야 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된다. 삼성전자 1%(140만6,793주)를 확보하려면 28일 종가 기준으로 2조3,000억원가량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적 분할을 통해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뉘게 되면 교부받는 사업회사 신주를 지주회사에 현물출자하고 지주회사로부터 신주를 받아 지분율을 끌어 올릴 수 있다. ‘인적 분할의 마술’에 의해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셈이다.
◇지주회사 전환 비밀병기는 ‘자사주’=삼성전자가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13.3%의 자사주가 ‘비밀병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현행법상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인적 분할을 통해 회사가 분리되면 자사주 의결권이 살아난다.
지주회사가 13.3%의 자사주를 통해 사업회사 지분 13.3%도 갖게 된다. 또 이 부회장과 오너 일가가 사업회사 지분을 지주회사에 현물 출자하기 때문에 사업회사에 대한 지주회사 지분은 대폭 확대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주회사가 사업회사 지분을 30% 수준까지 높일 수 있다. 공정거래법상 자회사 소유 요건(상장회사 20%, 비상장회사 40%)을 쉽게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시나리오가 차질 없이 진행되면 향후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삼성물산 간 합병도 예상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29일 이사회에 이어 열린 컨퍼런스콜에서 “현재로서는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삼성물산과의 합병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이 부회장이 17.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지주회사를 합병하는 방식으로 지배구조 퍼즐을 완성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주회사 전환에 걸림돌도 도사리고 있다. 입법 환경이 녹록지 않다. 국회 주도권을 쥔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자사주를 이용한 대기업 오너들의 지배력 강화와 경영권 승계를 제한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해놓은 상태다. 개정안은 대기업집단 소속 회사가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해 회사를 분할할 경우 반드시 자사주를 미리 소각하도록 의무화했다.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서는 지주회사를 설립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이 같은 입법이 발효되면 삼성전자의 인적 분할과 지배구조 개편은 사실상 물 건너갈 수도 있다. 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전환에 속도를 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정명기자 vicsj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