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담화 내용의 핵심은 대통령의 거취를 국회에 백지 위임하는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이다. 퇴진 시기와 방식에 대해 국민의 민의기관인 국회가 정해달라는 것은 퇴진밖에 없다는 ‘민심(民心)’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즉각적 퇴진의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국정 공백과 차기 대통령 선거 과정의 혼선·혼란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이를 최소화하는 질서 있는 방식을 여야가 합의해 정해달라는 것이다. 형식 논리상으로도 부정하기 어려운 주문이다.
우리는 박 대통령의 이날 담화를 정국 수습 방안의 하나로 평가한다. 야권에서는 이날 담화에 대해 ‘탄핵 국면을 탈출하려는 꼼수’라고 평가절하했지만 이 방식 외에 정권 이양기의 혼선과 혼란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공직과 달리 대통령직의 공백은 안정적 국정 운영 차원에서라도 피해야 할 길이다. 여야 정치원로들이 27일 박 대통령의 하야 선언과 하야까지 일정 정도의 시한이(내년 4월)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비록 야권에서는 정권연장의 꼼수라고 비판하지만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나온 입장표명이요, 결단이다. 국회 역시 꼼수에 치우침 없이 현명하게 대처하려면 대통령만큼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국회가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대통령의 이번 담화로 광장의 촛불이 사그라질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한 달 이상 지속돼온 국정 공백과 또 앞으로의 불가피한 정치 일정에서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크다. 이제 분노와 허탈 상태에서 벗어나 과도기를 얼마나 지혜롭게 넘길지 대안과 수습책을 공론화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