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외신에 따르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2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일본 언론과 간담회를 갖고 “내년 1월1일 한국으로 돌아가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고향을 위해서 뭐가 가능할지 친구들, 한국 사회의 지도자들과 이야기하고 싶다”고 밝혔다.
올해 12월31일로 임기가 만료되는 반 총장이 대권 도전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 번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반 총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국민의 분노와 불만을 보고 있다”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명예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내에 마땅한 대선주자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친박 주류는 반 총장을 대선 후보로 옹립하는 방안을 물밑에서 검토해왔다. 여기에는 압도적으로 높은 대중적 지지도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 몸담은 적이 없어 ‘안티 세력’이 적은데다 선거 때마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는 충청권 표를 대거 흡수할 수 있다는 정략적 판단이 작용했다.
하지만 이번 국정농단 사태로 친박계가 사실상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으면서 반 총장은 김무성 전 대표를 구심점으로 한 새누리당 비박계,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등과 함께 ‘제3지대’에서 연대를 모색할 것으로 관측된다. 여권 관계자는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꾸준히 탄핵 연기를 주장한 것도 같은 충청권으로서 반 총장의 귀국 시점까지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의도 아니었겠느냐”고 분석했다.
반 총장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인사가 개헌론자들임을 감안하면 개헌을 고리로 ‘비문(非文)·비박(非朴) 빅 텐트론’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생기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비문·비박의 연대 세력은 자연스럽게 현재 대선주자 지지율 1위인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에 맞서 ‘반(反)문재인 전선’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평소 문 전 대표는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소신을 피력해 왔는데 최순실 사태 이후 차기 대선 승리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슬그머니 입장을 바꿔 개헌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문 전 대표를 비롯한 친문 지도부가 개헌 논의에 선을 그으면서 ‘즉각 하야 및 조기 대선’을 줄기차게 외치고 있는 것 역시 대선 시기가 늦춰지면 승리의 불확실성이 그만큼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가운데 최순실 사태를 기점으로 ‘강경 투사’의 이미지를 구축한 이재명 성남시장과 지지율 정체에 고심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 등은 친문이 장악한 민주당 내에서 대권 후보로 낙점되기 위한 돌파구를 지속적으로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유승민 의원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김무성 전 대표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가운데 박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자’ 낙인이 찍힌 유 의원은 최근 들어 친박계를 향한 발언 수위를 점점 높이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새누리당의 다수는 친박계임에도 차기 비대위원장 후보로 유 의원이 거론되는 것만 봐도 얼마나 그의 입지가 당내에서 넓어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