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불황에 빠진 조선산업 활성화를 위해 조기에 발주한 대형 해경 함정 건조사업이 뜻하지 않은 유탄을 맞았다. 법정관리로 입찰 자체를 할 수 없는 업체가 많고 일부 조선사들은 물량 포화까지 겹치면서 유효 경쟁입찰이 이뤄지지 않아 결국 수의계약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30일 국민안전처 해경본부에 따르면 조달청은 3,000톤급 해경 함정 건조사업을 위해 지난 9월부터 입찰에 나섰으나 네 차례나 유찰됐다. 해경은 9월 불황에 빠진 조선업을 돕기 위해 30척(4,400억원 규모)에 달하는 해경 함정 조기 건조사업을 발표했다. 이후 방제선이나 구조보트를 비롯해 500톤급 등 중소형 함정의 경우 29척이 이미 입찰을 통해 계약을 마치고 건조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조기 발주된 물량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3,000톤급 대형 함정은 9월에 진행된 1·2차 입찰에서 응찰자가 없어 모두 유찰됐다. 이어 22일 재공고 1차 입찰에도 나서는 업체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9일에 진행된 2차 재공고 입찰에서 현대중공업이 처음으로 응찰했으나 역시 ‘나 홀로 입찰’로 유효경쟁이 안 돼 유찰됐다. 해경은 12월 초에 현대중공업과 780억원 규모의 함정 건조를 위한 수의계약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조선업이 불황에 빠졌지만 해경 함정 건조사업에서 유찰이 지속된 것은 우선 해경 함정의 경우 방산사업자로 지정된 업체만이 입찰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는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한진중공업·STX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강남조선소 등 5곳이 방산조선소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조선사들의 법정관리가 발목을 잡았다. 조선산업은 선수금 환급보증(RG) 발급 없이는 수주를 못하는데 두 회사는 법정관리 중이거나 임박한 상황이라서 RG 발급이 어려워 이번 입찰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했다. 강남조선소는 주로 중소형 함정을 건조해 역량 부족으로 입찰 자체가 불가능했다. 한진중공업은 이미 500톤급 함정 5척을 수주한 상황이라서 추가로 3,000톤급을 건조하기가 버거워 입찰에 나서지 못했다. 서류상 입찰 대상자는 5곳이지만 현실적으로는 현대중공업만이 유일한 사업 대상자여서 경쟁입찰 자체가 무의미한 상황이 되고 만 셈이다. 더구나 경쟁입찰의 경우 보통 낙착률이 발주금액의 90% 정도지만 수의계약의 경우 100% 가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중공업으로서도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없었던 셈이다.
안전처 해경본부 관계자는 “조선산업을 돕기 위해 조기 발주한 대형 함정 건조사업이 조선업 구조조정 때문에 뜻하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며 “추경을 통해 확보한 예산인 만큼 12월 중에는 건조계약을 맺어야 하는 상황이라서 조만간 수의계약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영일기자 hanu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