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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를 한다더니 승부수가 나왔다. 그냥 승부수가 아니라 상대의 뒤통수를 치는 역습이었다. 2차 대국민 담화 이후 25일간 모습을 감췄던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담화로 탄핵 정국을 흔들었다. 단 두 마디 때문이다.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 여야가 만들어주는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
당장 정치권이 요동치는 모습이다. 야당에서는 “탄핵을 물타기 하려는 꼼수”라며 강력히 반발했지만 동참을 선언했던 새누리당 비박계에서는 일정을 9일로 늦추며 변화 조짐을 보였다. 친박계에는 아예 대놓고 ‘모든 것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변하고 나섰다. 야당에서조차 탄핵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으로 바뀌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대통령의 승부수가 어느 정도 먹혀든 모양이다.
박 대통령은 3차 담화를 통해 국면 전환을 노렸을 것이다. 여야, 여당 내 친박·비박 간 대립이 격화하면 국정 혼란의 책임을 국회로 떠넘기고 자연스럽게 임기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정국이 또다시 개헌 블랙홀로 빠져들지도 모를 일이다. 그 어떤 것이든 벼랑에 몰린 박 대통령에게 불리할 게 없다. ‘국회 너희끼리 피 터지게 싸워라. 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가만히 있겠다. 대신 모든 책임은 국회가 져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모르는 게 있다. 분노한 민심이 요구한 것은 박 대통령의 조건없는 즉각적인 퇴진과 탄핵이었다. 영하의 차디찬 날씨에도 190만개의 촛불이 광장에서 청와대를 향해 목 터져라 외친 것도 이것이었다. 퇴진 시기와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 없이 국회로 모든 책임을 넘기는 모습을 보기 위해 시민들이 생업을 접고 매주 집회에 쏟아져 나온 게 아니다. ‘모든 잘못은 주변 탓’이라는 변명을 듣고자 어머니가 유모차를 끌고, 할아버지가 손자 손을 잡고, 어린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거리로 나선 것이 아니다.
또 깨달아야 한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본질은 최씨가 아니라 대통령 본인에게 있다. 대통령은 국민이 국정을 잘하라고 잠시 위임한 권력을 비선실세에게 넘겨준 것도 모자라 적극적으로 남용했다. ‘최 선생님’의 잇속을 채워주기 위해 국가 예산과 기업들을 동원하는가 하면 기업 인사에도 개입해 최고경영자(CEO)를 퇴진시키고 회사를 강탈하려고까지 했다. 이러한 대통령을 보며 국민들은 조폭보다 더 조폭 같은 권력을 떠올렸을 것이다. 촛불 집회에 참여했던 여고생의 말처럼 국민들이 박 대통령을 아직도 대통령이라 부르는 것은 그 외에 달리 부를 수 있는 호칭을 몰라서일 뿐이다.
하지만 3차 담화에서 박 대통령의 현실 인식은 이러한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 “저의 불찰로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 드린 점 깊이 사과한다”면서도 “단 한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이라며 사죄 아닌 사죄를 한 것도 ‘특정 개인의 위법행위’로 표현했던 2차 담화의 판박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많이 사용하는 박근혜 번역기를 돌리면 ‘나는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다 최순실이 꾸민 일이지만 자꾸 시끄럽게 떠드니 지난번처럼 사과한다’는 뜻으로 해석이 튀어나온다.
국민들은 지금도 박 대통령에게 묻고 있다. 대통령 본인은 정녕 아무 죄가 없느냐고. 죄가 없다면 왜 검찰의 대면 수사에 응하지 않느냐고. 왜 스스로 퇴진 시한을 밝히지 않고 자신이 저질러놓은 혼란의 책임을 왜 국회에 떠넘기느냐고. 여기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한 지금의 대통령은 우리의 대통령이 아닌 ‘피의자’일 뿐이다. 그래서 촛불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탄핵 시계를 멈춰서는 안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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