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으로 퇴직한 한 경제관료가 최근 기자와 만나 연이은 경제부처 고위직들의 추락을 보면서 한탄하듯 내뱉은 말이다. 개인으로 놓고 보면 천재 소리를 들을 정도로 능력이 뛰어났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물론 명예욕도 높았던 이들인지라 그의 충격은 컸던 것 같았다. 그는 “다각도의 측면에서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면서도 “어느 순간 청와대가 모든 인사권을 쥐락펴락하고 부처가 아닌 청와대가 정책을 직접 수행하면서 이런 불상사가 많아지고 있는 것은 맞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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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경제관료 출신들이 잇따라 검찰청을 들락거리는 이유를 관료사회나 학계 등에서는 세 가지 정도로 해석한다.
먼저 제왕적 대통령 중심제가 가지고 온 폐해다. 대통령으로부터 인정받아 경제관료로서 승승장구하려면 철저히 정권의 코드를 맞출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정권이 바뀔수록 청와대에서 행사하는 인사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정권에 코드를 맞추지 못하면 관료로서의 꿈인 ‘장관’은 물론 기관장도 바라볼 수도 없게 된 것이다. 경제부처의 한 관료는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는 7,000여개에서 많게는 1만여개에 이른다”면서 “심지어 국장의 인사마저도 장관이 청와대 허락을 받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털어놨다.
업무의 부처 자율이 사라지고 있는 것도 이유다. 청와대의 하명이 떨어지면 무조건 강행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한 전직 고위 관료는 “핵심 이슈가 아니어도 ‘VIP 관심사안’이라는 표식이 달려있으면 해당 부처는 두 말 않고 달려들어 먼저 해결하곤 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만약 청와대의 그릇된 지시가 뱃심 없는 정무직 관료에게 하달될 경우 사고가 날 개연성도 커진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밖에서 보면 고위 경제관료가 힘이 엄청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사람 역시 한 명의 생활인”이라며 “위에서 지시를 했을 때 그 지시를 따르지 않을 방법은 사표를 쓰는 것밖에 없을 텐데 과연 그 결정을 쉽게 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공무원은 책임과 권한을 인식하고 이를 행사할 만한 배짱과 의무감이 있어야 한다”며 “다만 그 과정에서 자기관리를 잘하고 깨끗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진념 전 부총리는 “대통령에게도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낙하산 인사도 경제관료 출신들의 몰락을 낳은 한 요인이다. 정권의 신임을 받은 경제관료들은 퇴임 후에도 회전문 인사 등을 통해 국책은행, 국민연금이 대주주인 기업의 수장자리를 꿰차곤 한다. 이들 중 일부가 각종 비리를 저지르거나 혐의에 휘말리고 있는 실정이다. 민간에 개입할 수 있는 정부의 힘이 너무 큰 것도 문제 발생의 소지를 키우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민간기업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너무 많고 정권 하의 경제관료가 조자룡 헌 칼 쓰듯이 그 권한을 남용하는 데 문제가 있다”며 “정부의 민간개입을 어느 정도 줄이고 민간의 이의제기권을 확대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