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스와프 협상 중단...환란 때 뒤통수 친 日 데자뷔

한일 군사협정은 맺은 日, 스와프에는 "협상할 방법이 없다" 사실상 중단 선언
외환위기 때 "진짜 필요한 친구가 진짜 친구" 통사정에도 단기대출금 대거 인출해 결정타
당시 노무라 "대우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 보고서....대우 부도로 연결
현재도 노무라 "내년 성장률 1.5%에 그칠 것" 비관 보고서
니혼게이자이 "일본 은행권, 한국 대출금 경계심 고조"

‘이때만해도 분위기 좋았는데...’ 지난 8월 유일호(왼쪽)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 서울청사에서 아소 다로 일본 재무장관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서울경제DB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장관의 “한국의 누구와 협상을 할지 알 수 없다”는 발언으로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이 사실상 중단된 가운데 일본의 이 같은 태도가 1997년 외환위기 때 우리의 도움 요청을 뿌리친 것과 비슷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당시 일본은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우리의 통사정에도 “일본도 어렵다”라며 자금을 대거 회수해 갔고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는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일본계 증권사인 노무라도 “대우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는 4페이지짜리 보고서를 발간해 대우의 문제가 공론화됐고 부도를 맞는 단초가 됐다.

시작은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은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자 경기를 살리기 위해 초저금리 정책을 쓴다. 당연히 국내에서 먹을거리가 없어진 일본 내 투자금은 세계 각지로 뻗어 나간다. 저리로 엔화를 빌려 고리의 다른 나라 자산에 투자하는 이른바 ‘엔캐리 트레이드’가 시작됐다. 마침 한국 기업, 금융권 상황과 이해타산이 맞았다. 1990년대 초중반부터 반도체 등 투자 열풍이 불었고 별다른 제재가 없었던 종합금융사(종금사)들은 해외로부터 자금을 차입해 기업에 빌려줬다. 외국은 위기 시 언제든 돈을 빼갈 수 있는 ‘단기’ 대출을 선호했고 이에 대한 별 지식이 없던 우리 금융사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1997년 말레이시아, 태국 등이 넘어가며 위기감이 증폭됐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300억달러 내외였던 1997년 우리 금융권은 일본에게만 총 220억달러의 단기대출을 지고 있었다. 일본은 그 해 9월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8%를 지키려면 어쩔 수 없다는 이유를 대며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우리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은 일본 재무성과의 인맥을 총동원해 “햇빛 쨍쨍할 때 우산을 빌려주고 비 올 때 회수하지 말라”며 부탁했지만 일본은 결국 60% 가량인 130억달러를 회수해갔다. 특히 11월 이후 총 83억달러를 회수해 가 우리가 그 해 11월 IMF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지금은 구속됐지만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이었던 강만수 전 기재부 장관은 “일본은 머나먼 이웃이었다”고 저서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에서 돌아봤다.


노무라도 대표적인 예다. 1998년 10월 일본 최대 증권회사인 노무라증권 서울지점은 4페이지 짜리 간단한 보고서를 외국인 고객에게 한정배포했다. 제목은 ‘대우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 부제목은 ‘더 이상 (대우에) 자금 조달원이 없다“였다.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금융기관의 회사채 보유를 제한한 조치에다 대우의 낮은 주가로 대우는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없다“며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우의 상황이 대외에 공표됐고 결국 대우는 이듬해 공중 분해됐다. 일차적으로 경영에 실패한 대우그룹의 잘못이 컸지만 어찌 됐든 결정타를 날린 것은 일본이었다.

지금도 비슷하다. 한국은 최악의 국정공백, 시중금리 상승, 달러화 강세에 따른 신흥국 기업부채 위기 가능성 등으로 위태로운 상황이어서 스와프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일본은 외면하고 있다. 물론 아소 부총리가 “한국의 누구와 협상할 지 알 수 없다. 협상을 할 수가 없다”는 발언이 순순히 한국의 부총리가 애매한 상황을 지적한 것일 수 있지만 통상 스와프에 대해서는 양국이 최종 결론이 나기까지 언급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일본이 최근 국정혼란에도 자국에 이익이 되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은 아무 말 없이 체결한 반면 스와프에는 문제를 제기한 점 역시 역시 경제적인 면에서 한국의 뒤통수를 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노무라는 최근 한국의 성장률 내년 전망치를 과도하게 낮췄다. 노무라는 내년 한국 성장률이 1.5%에 그칠 것이라고 봤다. 경제협력개발기구(2.6%), LG경제연구원과 한국경제연구원(2.2%) 등보다 지나치게 낮다. 외환위기와 같이 일본계 자금이 빠져나갈 조짐도 보인다.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 리스크가 고조되며 일본은행들의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6월 말 현재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일본의 한국에 대한 채권액은 334억달러다. 니혼게이자이는 “자금운용처를 찾기 어려운 일본 은행들이 삼성전자와 포스코 등에 대한 융자를 공격적으로 늘려왔다”며 “정치경제적 리스크가 커진 지금 한국에 대한 채권이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김대종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고용시장이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며 미국의 금리 정상화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며 “국내 정치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위기가 올 수 있어 스와프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일본이 한국의 부총리가 애매하다는 점을 들어 스와프에 소극적인 점과 국내외 경제 리스크에 제대로 대응해야 하는 점 등을 종합 고려했을 때, 하루라도 빨리 컨트롤타워를 제대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