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판도라’ 김남길, “좋은 일이 생기길 바라지 않아요...무탈하길”



“아수라 현장에서 제 롤은 ‘당근’ ”

배우 김남길의 화법은 흥미진진한 리듬감이 살아있었다. 무거운 이야기를 하는 가 싶으면 곧 무거움을 덜어내는 위트로 귀를 쫑긋거리게 했다. 진솔함과 유머감이 적재적소에 담겨있어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적극 추천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국내 최초 원전 재난 블록버스터 ‘판도라’(감독 박정우)의 주인공으로 돌아온 김남길은 극증 가족을 구하기 위해 재난에 맞서는 발전소 인부 ‘재혁’으로 나섰다. 컨트롤타워의 부재 속에서 내 힘으로 나와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앞장서는 청년 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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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장은 그 자체로 ’아수라‘ 였고, 실제 재난현장 같았다’고 말문을 연 김남길은 “준비할 게 많아 배우와 스태프들 모두 예민해져 있었다”고 했다. 그 결과 다들 소리가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고.

특히 전체 팀을 끌고 나가야 할 박정우 감독은 그 누구보다 예민해질 수 밖에 없었다. 거친 욕설이 나오는 걸 막아 선 이가 바로 김남길이다. 감독이 언성이 높아지려고 할 때마다 대신 의사표시(거친 욕설이 담겨 있음)를 할 수 있는 푯말을 만들어 들게 한 것.

욕을 입으로 내 뱉으면 현장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일쑤인데, 마치 게임처럼 푯말을 들고 내리게 하니 오히려 색다른 재미가 생겨 촬영이 수월하게 진행됐다고 한다.

그는 “감독님이 ‘채찍’ 역할을 했다면, 제가 ‘당근’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곧 “전 당근이다. 당근. 이렇게 현장에서 말을 하고 보니, 게임을 하자는 건가? 생각이 들던걸요”라고 장난스럽게 멘트를 던져 현장에선 웃음꽃이 터지기도 했다.

최근 삼청동의 카페에서 만난 김남길은 “‘판도라’는 시나리오가 나온 뒤부터만 어림잡아도 4년이란 시간이 흘렀어요. 제작시기가 계속 늦춰져서 의문부호도 있었는데, 이렇게 영화 개봉을 하게 돼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작 시기는 계속 늦어지고 있지,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어떻게 구현될까 등 고민이 많았어요. 감독님 작업실과 가까워 자주 만나면서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외압이 걱정된 작품이요? 그런 걱정은 없었어요. 원자력 발전의 위험, 컨트롤 타워의 부재에 대해 미리 대비하자는 것을 의논했지, 외압에 대한 논의는 없었어요.“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넷플릭스 전 세계 190여 개국 월드와이드 배급을 체결 한 ‘판도라’에서 김남길은 철없어 보이는 막내아들이자, 믿음직스러운 청년으로 분했다. 아픈 상처와 기억을 남긴 원전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하청업체 노동자로 살아온 막내 아들이다. 그 청년이 영웅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지 가족을 위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재난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관객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또한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사람들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신화 속 ‘판도라’의 결말과 중첩되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아낸다.


특히 지난 9월, 경주 지역에서 여러 차례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잠들어 있던 안전 문제와 함께 밀집된 원전 관리에 대한 국가적인 논의가 활발해진 가운데, ‘판도라 는 우리 사회에 원전에 대한 관심을 다시 한번 불러일으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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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마카오 국제 영화제에 한국영화 중 유일하게 공식 초청돼 화제를 모으고 있는 ‘판도라’에서 주목할 점은 이번 영화가 사회 고발 영화가 아닌 재난극이라는 점. 원전사고 영상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폐허가 된 체르노빌은 황폐한 미래도시 같았다.”며 “가상현실 이미지를 상상하면서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이게 현실이 됐다. ”며 다소 씁쓸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언론 시사 후 ‘아마겟돈’ 한국판이라는 평도 흘러나왔다. 이에 대해 김남길은 “할리우드 영화에선 인물이 쿨하게 또 멋지게 희생한다면 우리 작품은 되게 솔직하고, 무섭고 공포스런 감정을 담아낸다”며 “그 점에 끌렸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웅담이 아닌 소시민의 이야기에 가깝다. 후반 장면은 박정우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집약 돼 있다. 또한 김남길의 또 다른 매력이 제대로 힘을 발하는 장면이다.

“시나리오 보고 욕심이 났던 장면인 건 맞는데, 다른 장면들이 찍을 게 많았고, 그 장면에 대한 중압감이 크다보니 진짜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모든 촉각이 예민해져있었거든요.

전 그 장면이 거창하게 보이지 않게 하고 싶었어요. 아무 잘못 없는 내 가족들이 다 죽는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고 분한 거거든요. ‘츤데레’ 혹은 철부지 막내아들 그 느낌이 갑자기 영웅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음 했어요. 그 장면을 찍으면서도 감독님과 생사의 갈림길 앞에서 ‘이야기가 너무 많다’ 했는데 막상 그 폐쇄적인 곳에서 인간들의 반응은 다 다를 수 있다는 말에 또 수긍이 되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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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길은 2009년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담’ 역을 맡아 이른바 ‘비담 열풍’을 일으키며 대중들에게 이름을 각인시켰다. 그 작품으로 제46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신인 연기상, MBC 연기대상 남자 우수상을 수상했다.

2014년 ‘해적: 바다로 간 산적’으로 에선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코믹한 모습을 선보이며 866만 관객을 동원, 티켓 파워를 갖춘 배우로서 입지를 다졌다. ‘무뢰한’이 제68회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으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가 주목하는 배우로 거듭났다.

그는 티가 안 나더라도 묵묵히 영화 작업을 해 내가는 배우다. “사람들이 다 알아봐주는 스타 배우로 자리매김 하기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영화 작업을 해 나갈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요.”

이어 “점점 시간이 흐르다보니 좋은 일이 생기는건 바라지도 않고, (사건 사고 관련해)아무 일이 없었으면 하는 걸 원하게 된다고”고 덧붙였다.

‘판도라’는 관객 동원수를 고려한 잘 만들어진 영화라기 보다는 재난 영화의 묵직함을 진중하게 풀어간 작품이다.

그는 영화 속 재혁이 그랬듯 진솔한 한 마디를 전했다.“시국이 이래서 온 국민들이 화가 많이 나 있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전 그게 폭력성으로 번질까? 걱정되는 게 있어요. 쌓인 스트레스를 긍정적으로 풀 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봐요. 결국 건강으로 이어지거든요. 저 역시 긍정적인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

한편, 김남길은 이윤기 감독의 영화 ‘어느 날’과 원신연 감독의 ‘살인자의 기억법’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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