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늦은 후회’는 아쉬움만 남길 뿐이다
“떠나기 전, 결혼부터 했어야 했다”
“아니, 직장을 옮기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다! 한 번이라도 더 연락했어야 했다”
“그것도 아니다! 한 번이라도 더 만났어야 했다”
“한 번이라도 더, 더, 더…”
후회 가득한 한숨과 함께 잠을 청해보지만, 그녀의 얼굴이 아른거려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뒤척뒤척’, ‘이리저리’
‘발악’을 해 보지만 그녀를 놓친 후 시작된 ‘불면증’은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술을 거나하게 먹고 그녀와의 추억을 곱씹어 봤다.
참 많이도 적었더군…
-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 그 아찔한 기분을 잊을 수 없었다
- 그녀의 매력을 처음으로 느꼈을 때 : 한동안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 그녀의 손을 처음 잡았을 때 : 이 손을 절대 놓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다
- 그녀의 입을 처음 맞추었을 때 : ‘그래, 내 평생은 이 여자 하나다!’ 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모든 건…
정말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나만의 착각이었다. 내가 옆에 오래 있지 못해도,, 내가 그녀의 눈에 멀어져 있어도 그녀와 내 사이는 굳건할 줄 알았다.
‘보통 남자’들의 착각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 대해 신뢰가 강했으니깐…
취업을 못해 힘들어하던 때가 있었다.
그녀가 나보다 먼저 직장을 얻었던 그 날,
내가 뻔히 그녀의 취직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녀는 내 앞에서 기뻐하는 티를 내지 않았다.
‘뭐지? 이상하게 솟구쳐 오르는 분노는??’
내가 기분이 나쁠까 봐 그토록 원하던 직장에 들어갔는데도 티도 내지 못하고 있는 그녀를 보며, 괜한 ‘자격지심’에 화가 났다.
‘그 지점에서 왜 화를 내는 거야? 축하해줬어야지, 이 쫌생아...’
#2 ‘손 닿을 수 없는 저기 어딘가’, 애틋함은 어느새 의심으로 모습을 달리하고 있었다
그랬던 그녀가… 이제는 너무나 멀리 있다.
직장을 처음 옮길 때부터 이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지만,, 혼자 상상을 거듭하는 날이면 ‘하지 말아야 할 의심’부터 떠오르곤 했다.
남자 : 서경아, 어디니?
여자 : 오늘 회식이라 아직 밖이야. 저녁 먹었어?
남자: (...) 먹었지… 너무 늦게 들어가지 말고, 들어갈 때 연락해. 꼭!!
(2시간 후, 자정을 가리키는 시침)
따르릉, 따르릉....
남자 : 어디야? 이서경!
여자 : (...) 엥? 울 남친이넹.. 헤헤 나 이제 집에 가려궁..자기양~~
남자 : .... 이서경.. 어디냐고?
여자 : 왜 화내? 지금 화내는거양?
남자 : (화를 꾹 참아가며) 아니.. 서경아, 어디냐구?
여자 : 화낸거 맞넹.. 쳇 끊어.. 화낼거면 끊엉..
여자친구의 ‘혀 짧은 소리’와 함께 내 의심은 ‘공상과학 영화’ 수준으로 심각해진다.
어디서 뭐하는 걸까? 누구랑 있는 걸까? 혹시 남자와 있는 것은 아닐까...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샌다. 매 시간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의 컬러링인 트와이스의‘ TT’만 지겹도록 들었을 뿐이다. 그렇게 날이 밝았고, 머릿속에서 일어난 온갖 지저분한 상상 때문에 이미 그녀에게 정이 뚝 떨어진 나로선 ‘미안하다’는 취지로 장황하게 변명을 늘어놓은 그녀의 카톡이 짜증날 뿐이었다.
대학생 때였다면 다음 날 여자친구의 얼굴을 보며 ‘내 상상’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겠지만, 나 역시 출근 도장을 찍게 된 후에는 ‘상황을 분별할 수 있는’ 시간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게 믿음의 ‘배터리’는 서서히 방전되고 있었다.
그래도 어렵사리 이어온 우리의 인연을 여기서 끝낼 수는 없었다.
금요일 저녁 퇴근과 함께 서울행 KTX를 잡아타고 서경이를 만나러 출발한다.
‘우리가 어떤 사이인데, 거리가 좀 멀다고, 마음까지 멀어질 수 있겠어? 안 그래? 그래, 대구에서 서울까지 거리 정도야 먼 것도 아니지!’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적당한 사과의 ‘멘트’와 적절한 스킨십 지수까지 계산해 본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웃기고 있네. 그딴 거 믿지 않아’
#3 ‘고집’과 ‘불안’의 끝은 결국!
3시간 후 그녀의 집 앞.
괜한 의심이었다고, 널 의심한 게 아니라 혹시나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고,,,
숱한 변명이 입술 언저리를 맴돌지만 얼굴을 보면 아무 말도 없이 ‘와락’ 그녀를 안아보리라 다짐한다.
그렇게 30여분이 흘렀을까… 그녀의 집 앞 놀이터를 서성이다 저 멀리서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어오는 그녀를 발견한다.
남자 : 자, 잘 지냈어? 많이 춥지? 옷은 따뜻하게 입고 다니니?
여자 : …
남자 : 내가 잘못했어. 많이 서운했지? 내 딴에는 너가 걱정되서 그랬던 거야. 내 마음 알지?
여자 : ….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해?
남자 : …. 왜? 우리가 뭐가 어때서?
여자 : 자기는 힘들지 않아? 애틋한 것도 하루 이틀이지. 자기 많이 변했어. 예전에는 안 하던 의심도 하고.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잖아. 이렇게 만나다 보면 우리 마지막은 뻔해.
남자 : …. 왜? 난 하나도 안 힘든데. 너가 변한 거잖아. 너가 변했으면서 내 핑계 대지 마. 우리 이런 일들 많았잖아. 이번에도 잘 극복할 수 있을 거야. 응?
여자 : 그만하자. 이제. 우리 이미 서로에 대한 신뢰 무너진 거 자기도 알잖아. 그만하자. 나 편해지고 싶어. 이제 그만 울고 싶어.
남자 : ….
‘그녀에 대한 미안함?’ 그것만은 아니었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표현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나도 너무 힘들었고, 지쳤다.
항상 행복하게 보여야 한다는 내 ‘강박감’이 그녀와의 관계를 유지시키는 유일한 이유였을지 모른다.
그녀의 행복보다는 내가 좀 더 안정적으로 보여야 하고, 항상 사랑하고 있기에 ‘부러움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욕심이 더 컸는지 모른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난 그녀를 잡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 언제부터였는지 그녀가 없으면 오히려 편했다.
그녀의 전화가 오면 일부러 무음으로 전환한 후 하던 일을 끝냈고, 그녀의 카톡이 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친구와의 대화창에서 나오지 않았다.
친구들과, 동료들과, 선배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걸려온 그녀의 전화나 카톡이 ‘불청객’처럼 느껴졌다.(내가 나쁜 놈인가? 아니, 아마 그녀도 그럴 것이다. 아니, 대부분의 연인들이 그럴 것이다)
갑작스런 그녀의 방문이 ‘단 1%도’ 반갑지 않은 순간마저 있었다.
300km라는 절대적인 거리 앞에서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던 내 ‘자신감’은 결국 ‘고집’이었고 ‘오만’이었다는 사실이 명백해진 것이다.
#4 난 사랑하기에 너무 나약했다
그래도 그녀가 보고 싶다.
나쁜 놈이라도, 무책임한 놈이라고 욕을 먹는대도
오늘 같은 밤에, 지금 이 순간에 그녀를 보고 싶다.
그리고 전해주고 싶다.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우리는
서로가 모른 척
어색한 눈인사 건네며
그렇게 애써 웃겠죠
해주고 싶은 말
듣고 싶었던 말
수많은 말들을 남긴 채
그렇게 스쳐가겠죠
- 아번 자카파의 ‘재회’
/사랑할줄모르는남자 sednews@sedaily.com
[서경씨의 #그래도_연애]는
서울경제 2030 기자들이 다양한 주제의 연애 경험담을 연재하는 글입니다. sednews@sedaily.com으로 애정 어린 격려와 따끔한 질책 모두 감사히 받겠습니다. 은밀한 연애담이니만큼 매주 금요일 익명으로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