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9일 가결되자 여야 대선 주자들은 이를 사실상 대선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물밑에서 조기 대선 채비에 나서는 분위기다. 당장 내년 ‘6월 대선’이나 ‘8월 대선’ 등 다양한 대선 시기가 점쳐지는 가운데 여야 잠룡들은 시나리오별 전략을 다듬으며 대권 로드맵 수정에 돌입했다.
통상 대선 시간표를 보면 선거일로부터 240일(8개월) 전에 예비후보등록을 하고 이후 당내 경선을 거치며 열기를 고조시켜왔던 것을 감안하면 대선까지 4~7개월을 남긴 지금 사실상 레이스가 시작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여권에서는 내년 1월 중 귀국이 예정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행보에 촉각이 쏠린 가운데 유승민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준비 중이고 야권에서는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그를 추격하며 역전을 노리는 이재명 성남시장 등 후발주자들, 사퇴 시점을 저울질해야 하는 자치단체장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의 ‘내년 4월 말 사퇴, 6월 말 조기 대선’을 당론으로 채택했지만 청와대가 탄핵안이 가결되면 ‘헌법재판소 심판 전 퇴진 가능성은 없다’는 입장을 보임에 따라 가능성이 낮아졌다. 대신 탄핵소추안이 복잡하고 방대해 헌재가 법이 허용한 180일(6개월)의 심리 기간을 모두 활용할 가능성이 커 8월 초 대선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여당은 경쟁력 있는 내부 대선 후보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시간을 벌게 돼 정계개편 등을 통한 새로운 후보를 내세울 수 있게 됐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여당이 탄핵안 가결로 분당 수순을 밟게 되면 탄핵안에 찬성한 비박계 의원들과 반기문 총장이 연대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며 “이렇게 되면 야당 내 반문(반문재인) 세력인 김종인 의원과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도 ‘빅텐트론’을 외치며 합류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친박 진영에서는 당내 경쟁력이 있는 대선 후보 물색에 나설 예정이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 등이 거론되고 있다.
야당의 시간표는 이보다 빠르다. 헌재에서 내년 1월 말 정도에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대통령이 즉시 퇴진하지 않더라도 불과 4개월여 뒤인 3월 대선이 가능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같은 조기 대선은 당내 대선 후보가 만만치 않은 여당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지만 야당은 대선 과정의 변수를 최대한 줄여 야권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문재인 전 대표의 독주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선호하고 있다. 야권 일부에서 박 대통령의 ‘탄핵 후 즉각 하야’를 주장하고 나선 것도 대선을 빨리 치를수록 문 전 대표에게 유리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변수는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는 이재명 성남시장이다. 이 시장은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3위인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를 뛰어넘어 문 전 대표를 턱밑에서 위협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 당원 구조에서 당내 경선에 유리한 문 전 대표와 이 시장 등 대선 주자들 사이에 당내 경선 룰을 놓고 치열한 협상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의 당원 구조로 보면 문 전 대표가 당내 경선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시장 등은 완전국민참여경선·결선투표제 도입 등을 요구하면서 경선 룰을 최대한 활용해 역전의 드라마를 노릴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로 헌재에서 기각 결정이 내려지면 박 대통령의 직무권한이 바로 부활, 정상적으로 오는 2018년 2월까지 임기를 마무리하게 되고 이에 앞서 내년 12월 대선이 치러진다.
한편 헌재의 심리 기간에 따라 대선 시기도 왔다 갔다 할 것으로 보인다. 헌재가 4월 중 탄핵안 인용을 결정하면 6월 대선이, 법적으로 허용된 심리 기간(180일)을 최장으로 활용한다면 6월 초 결정이 내려지고 대선은 8월 초 치르게 된다. 그러나 국정 공백 장기화에 따른 부담감과 들끓는 ‘촛불민심’의 열기를 감안할 때 헌재가 심리를 앞당겨 2~3월 중 결정이 나오면 4~5월 대선이 가능하다.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의 국회 의결부터 헌재의 결정까지는 만 63일이 걸렸다.
/김홍길기자 wha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