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첫 촛불집회는 지난 10월 25일 박 대통령의 제1차 대국민담화에서 비롯됐다. “저로서는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다”는 ‘1분 40초 녹화담화’에 대한 국민의 분명한 거부 의사표시였다.
광화문에 100만의 촛불이 집결한 지난 12일 제3차 촛불집회는 새누리당에 보낸 ‘옐로카드’였다.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야권 성향의 172명 의원 외에도 새누리당 의원 28명의 찬성표가 필요했다. 100만의 옐로카드를 엄중하게 받아들인 비박계 의원들은 다음날 비상시국회의를 출범시키며 새누리당의 본격적인 분화를 알렸다.
그러자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 의원들도 단일대오를 정비하고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17일 “촛불은 촛불일 뿐이지 바람이 불면 다 꺼지게 돼 있다”며 “민심은 언제든 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은 19일 제4차 촛불집회에서 136만의 촛불로 응수했다. 검찰도 20일 “박 대통령이 최 씨와 공범”이라는 중간수사 결과로 촛불민심에 화답했다.
촛불민심이 가장 극적인 역할을 한 것은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밝힌 지난 29일 박근혜 대통령의 제3차 대국민담화 직후였다. 비주류를 중심으로 탄핵을 추진하던 새누리당에서도 이 담화를 ‘사실상의 퇴진 선언’으로 봐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며 탄핵의 동력이 사그라지는 듯했다. 2일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소추안을 처리하려던 야당의 계획도 무산됐다.
2일 표결이 무산되자 다음날인 3일 전국에서 232만의 촛불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3차 대국민담화 이후 갈팡질팡하는 정치권에 보낸 민심의 엄중한 경고였다. 탄핵을 망설이던 새누리당 비주류 중심의 비상시국회의는 4일 곧바로 “여야 합의가 없다면 9일 탄핵 표결에 조건 없이 참여하겠다”며 발 빠르게 민심에 응답했다. 야 3당이 이미 ‘박 대통령 퇴진을 위한 여야 협상은 없다’고 공언한 터라 사실상의 표결 참여 선언이었다.
/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