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일인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아트홀에서 열린 ‘세계인권선언 제68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9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면서 당장 내년 ‘6월 대선’이나 ‘8월 대선’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헌재는 이날 소추의결서가 접수되면 사건번호와 사건명을 지정해 시스템에 입력, 주심 재판관을 결정하고 최장 180일간의 심리에 돌입한다. 탄핵안이 최종 인용될 경우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의 탄핵이 이뤄지는 것으로, 2개월(60일) 이내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
헌재가 법적으로 허용된 심리기간을 최장으로 활용한다면 6월 초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 이 경우 60일 내 대선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8월에 대선을 하게 된다. 그러나 국정공백 장기화에 따른 부담감과 들끓는 ‘촛불민심’의 열기를 감안할 때 헌재가 심리를 앞당길 가능성도 상당하다.
헌재가 심리절차를 서두르면 빠르면 내년 2월 초에 결정이 내려지고, 이보다 절차가 더디게 진행되면 3∼4월까지는 헌재 결정이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박한철 소장이 내년 1월31일, 이정미 재판관이 3월13일 퇴임하는 점이 변수다. 일각에서는 두 사람의 퇴임시점에 비춰볼 때 헌재 결정이 1월 또는 3월 내에 내려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렇게 되면 내년 3~4월 또는 5~6월 대선이 가능하다. 헌재 심사에 걸릴 기간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의 국회 의결부터 헌법재판소의 결정까지는 만 63일이 걸렸다.
여당은 ‘6월 대선’에 무게를 두고 있다. 새누리당은 당론으로 박 대통령의 ‘내년 4월말 사퇴 와 6월말 조기 대선’을 당론으로 채택한 바 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안정적 정권 이양을 위해, 최소한의 대선 준비기간 확보를 위해, 또 (내년 4월말이) 탄핵 심판의 종료와 비슷한 시점이라는 점에서 가장 합리적이라는 일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시기를 특정하기 보다 “헌재의 결정을 기다려 보자”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박 대통령도 최근 청와대에서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를 면담한 자리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면 헌재 과정을 보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차분하고 담담하게 갈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여당 내 경쟁력있는 대선 후보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시간을 벌며 정계개편 등을 통해 새로운 후보를 내세우겠다는 전략이다.
야당의 시간표는 이보다 빠르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헌법재판소에서 내년 1월 정도에 결정을 내릴 전망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즉시 퇴진하지 않더라도 늦어도 1월까지는 강제 퇴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경우 불과 4개월여 뒤인 내년 3월에 대선이 치러질 수 있다. 이같은 조기 대선은 당내 대선후보가 만만치 않은 여당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지만, 야당은 대선과정의 변수를 최대한 줄여 야권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문재인 전 대표의 독주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선호하고 있다.
야권 일부에서 박 대통령의 ‘탄핵 후 즉각 하야’를 주장하고 있어 내년 2월 대선도 열려 있다. 박 대통령이 탄핵안 가결 후 바로 사퇴한다면 60일 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 하지만 여당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가능성은 낮다. 여당 비주류인 황영철 의원은 야권 일각의 ‘탄핵 후 즉각 하야’나 ‘황교안 국무총리 즉각 교체’ 주장에 대해 “탄핵안이 가결된 후에는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모든 게 진행돼야 한다”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반대로 헌재서 기각결정이 내려지면 박 대통령의 직무권한이 바로 부활, 정상적으로 2018년 2월까지 임기를 마무리하게 되고 이에 앞서 내년 12월 대선이 치러진다.
여야 대선 주자들은 탄핵안 가결을 사실상 대선 신호탄으로 판단, 대권 로드맵을 수정하고 전략을 다듬으며 물밑으로 조기 대선 채비에 나서는 분위기다. 여권에서는 내년 1월 중 귀국이 예정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행보에 촉각이 쏠린 가운데 유승민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준비중이고, 야권에서는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는 문 전 대표와 그를 추격하며 역전을 노리는 이재명 성남시장 등 후발주자들, 사퇴 시점을 저울질해야 하는 자치단체장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김홍길기자 wha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