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가결되면서 ‘박근혜식 금융개혁’은 동력을 상실한 채 표류할 것으로 예상된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야권의 목소리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데다 임종룡 경제부총리 내정자의 애매모호한 위치까지 고려하면 야권과의 교감이 부족한 성과연봉제 도입이나 은산 분리 규제 완화 등이 힘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에 더해 인사 검증의 컨트롤타워가 붕괴되면서 한시가 바쁜 금융기관장 인사 역시 현재와 같은 답보 상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 당장 미국 금리 인상이 예고된 가운데 금융기관의 운영 공백이 나타날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성과연봉제 도입과 은산 분리 규제 완화 등 박 대통령이 추진한 금융개혁의 핵심 정책들이 올해를 넘길 경우 내년 대선 정국과 맞물리면서 추진 동력을 급속히 상실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성과연봉제는 대통령 탄핵에 따라 금융 당국의 영향력이 약해진데다 시중은행도 노동조합 교체와 은행장 임기 만료 등으로 내년 초까지 현실적으로 추진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사회 의결을 통해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을 결정한 금융공기관들조차 노조의 가처분 소송 등으로 시행 여부가 불투명하다.
인터넷전문은행 등 금융개혁의 상징과 같은 정책들도 출범 이상의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전문은행은 KT가 주축이 된 K뱅크가 이달 정식 인가를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사업을 이끌어갈 KT가 은산 규제의 벽에 막혀 10%의 지분을 보유하는 데 그치고 있다. 핀테크 업계에서는 혁신적인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인터넷전문은행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은산 분리 규제를 완화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최근 정세를 감안했을 때 여야가 협의해 특례법 제정에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하기 힘든 형편이다.
이미 표류된 금융공공기관 최고경영자(CEO) 인사는 더욱 난관에 부딪혔다. 대통령 탄핵 시에도 차관급 이하에 대한 인사는 이뤄질 수 있다지만 금융공공기관 CEO 인사에는 정무적 판단이 크게 작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통령 대행 체제에서 인사를 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당장 권선주 기업은행장은 이달 27일 임기가 종료되는데 금융 당국은 여전히 후임 은행장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권 행장의 후임 인선이 늦어지면 박춘홍 기업은행 전무가 은행장 대행업무를 맡게 되지만 박 전무 역시 임기가 다음달 20일 종료된다. 자칫하다간 은행장과 전무가 모두 공석이 되는 ‘CEO 공백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은행은 또 계열사인 IBK자산운용과 IBK캐피탈·IBK신용정보 사장 역시 임기가 종료됐거나 이달 끝나게 돼 은행장 공백에 따른 업무 공백이 전 계열사로 확대되는 상황이다.
수출입은행과 기술보증기금 등 금융공기업도 인사 공백이 우려된다. 김한철 기보 이사장은 내년 1월13일,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은 내년 3월5일 각각 임기가 만료된다. 기보는 이달 공모를 진행할 계획이지만 인사 검증 컨트롤타워가 마비 상태여서 최종후보자 선정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수출입은행장은 상대적으로 시간이 남아 있지만 차기 대선 일정에 따라 은행장 선정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 역시 청와대의 인사 검증을 거쳐 임용되는 임원이 두 명이나 공석인 상태다.
문제는 인사 난맥이 자칫 은행권의 경영 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조달금리가 인상돼 대출금리도 덩달아 오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은행의 연체율이 높아질 수 있다. 대출금리 인상으로 국내 부동산 시장이 하락세를 타면 중소기업 담보대출에 대한 리스크도 커진다. 금융권에서는 국내외 금융 환경이 모두 불안한 만큼 여야정이 경제부총리와 금융위원장의 인선 과정을 빠르게 마무리 짓고 후속 인사를 단행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강동효기자 kdhy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