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계란 대란




13가지 필수비타민과 미네랄이 다량 함유돼 있고 고단백질과 항산화제가 들어 있는 완전식품. 70㎈의 열량을 보유하고 있어 체중관리는 물론 뇌 기능 활성화와 임산부 건강에 특히 좋은 보양식. 서민 반찬 계란이다. 한국에서 고아들을 1,000여명이나 돌봐 ‘고아들의 아버지’라고까지 불렸던 일본인 전도사 소다 가이치씨조차 계란이 몸에 좋다는 사실을 알고 아이들 몰래 매일 한 알씩 챙겨 먹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그는 죽는 날까지 아이들이 배를 곯고 있는데 자신의 배만 채웠다는 죄의식에 시달려야 했지만. 17세기 유럽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희고 부드러운 빵’도 이 완전식품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다.

쇠고기나 돼지고기 등을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시절 이 완전식품은 서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초까지 우리나라에서 계란은 아무나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학교에 계란프라이로 덮인 도시락이 등장하면 교실에서 ‘와’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오는 시대였다. 산란용 닭을 통한 대량생산은 이 모든 것을 한순간에 바꿔놓았다. A4 용지 한 장 넓이도 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날개도 못 펼친 닭들이 쉴 새 없이 쏟아낸 계란은 50구를 사는 데 한 달 월급을 통째로 써야 하는 시대를 몰아내고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물론 그 와중에 면역력이 떨어진 닭들은 온갖 질병에 희생돼야 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한 가금류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공급 부족에 따른 ‘계란 대란’이 일어날 조짐이다. 살처분된 가금류의 70%가 산란계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가격 상승은 물론이고 일부 창고형 할인점에서는 1인당 1판, 30구로 판매 수량까지 제한하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 때문일까. 식당에서 서비스로 내놓던 계란찜도 이제는 보기 힘들어졌다. AI가 우리나라를 덮쳤을 때마다 반복되는 후폭풍이지만 개선될 조짐은 여전히 안 보인다. 하기야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는 것이 어디 이것뿐일까. /송영규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