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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영화 ‘판도라’의 주요 내용이다. 영화 ‘판도라‘는 국내 최초 원전 재난 블록버스터로 지진의 여파로 인해 벌어진 원전 폭발 사고에서 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판도라‘가 개봉 8일 만인 지난 14일 하루 전국 16만2,160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누적 관객수 194만 7,559명으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최근엔 국회·정부 인사까지 단체 관람에 나섰다. 박원순·김부겸 등 대선 주자들과 김종인 전 대표, 야당 의원 20여명은 14일 단체 영화 관람을 했다. 원전 정책을 총괄하는 우태희 2차관 등 산업통상자원부 고위공무원들도 영화를 보고 에너지정책을 검토 중이다. 영화의 흥행 성공은 지난 9월 경주에서 국내 관측 사상 최대인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한 이후 원전 안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최초의 여자다. ‘상자를 절대 열지 말라’는 제우스의 경고에도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결국 상자 안을 들여다보고 말았다. 그 안에는 갖가지 재앙과 죄악이 담겨 있었고, 판도라가 상자를 여는 순간 빠져나와 여기저기로 퍼졌다. 영화 ‘판도라’는 인류가 열지 말았어야 할 또 하나의 상자, 원전 문제를 스크린으로 끌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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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영화 판도라에 나온 내용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우선 영화에서는 나온 규모 6.1의 강진으로 원전에 문제가 생긴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에 대해 한수원은 원전은 단층이 없는 단단한 암반 위에 지어졌다고 밝혔다. 리히터 규모 7.0의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안전하게 정지되도록 설계돼 있다는 것이다. 한수원 측은 “영화의 모델인 고리 1호기는 바로 밑에서 규모 6.5를 버티도록 설계돼 있다”며 “오는 2018년까지 모든 원전을 7.0까지 견딜 수 있게 보강작업을 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또 냉각계통은 기본 냉각 밸브에 이상이 생기면 비상물탱크가 곧바로 가동된다. 이에 대해 한수원은 “밸브 한 곳이 터져도 유출된 냉각수를 보충하는 주입 설비와 펌프 시스템이 이중 삼중으로 장착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원자로 온도가 안 떨어지면 단기→장기→직접 노심 냉각수가 순차적으로 들어간다.
다음은 원전이 과연 폭발하느냐 하는 점이다. 영화는 지진으로 원자로 건물 내에 57번 냉각수 밸브가 터진 후 원자로 내 냉각수 수위가 내려가면서 원자로가 과열되고 이로 인해 수소가 발생해 압력이 커져 원전이 폭발한다는 상황을 설정했다. 540킬로파스칼(㎪·㎠당 5.4㎏의 압력)에서 원자로가 폭발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선 핵 연료봉 자체는 폭발하지 않는다. 핵연료봉의 우라늄 비율은 3~5% 정도로는 폭발하지 않고 과열로 녹을 뿐이다. 녹은 연료봉은 압력 용기 안에, 압력용기 이상이 있을 경우 비상용 외부 콘트리트 용기 안에 고인다. 문제는 수소 폭발이다. 원자로 온도가 1,600도가 넘으면 냉각수가 수소와 산소로 분해된다. 지난 2011년 지진에 이은 쓰나미로 폭발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이 바로 이 경우다. 그러나 우리 원전엔 수소 폭발을 막기 위해 수소 재결합기와 제거기가 있다. 비전원식으로 수소가 생기자마자 바로 작동한다. 비상 살수 보조계통도 원자로 내부 압력을 낮춰 폭발을 미리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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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원전 밸브가 3만 개, 배관 길이는 170㎞라 40년이 지나면 모든 부식을 파악할 수 없다”는 전 한별 원전 소장의 발언이 나온다. 한수원은 “밸브와 배관은 프로그램에 따라 정기검사를 하고 모든 원전 설비는 식별 고유번호가 있어 각각 관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수원은 “설계수명을 설계 당시에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설정하였으며, 최신 정비, 운영 기술의 발달로 설계 수명 이후에도 충분히 안전성 확보가 가능하다”면서 “설계 수명 이후에도 기기들의 시간에 따라 취약해지는 상태를 평가, 관리하며 주기적인 검사와 예방정비를 통해 발전소를 안전하게 유지관리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수원은 이어 미국에서는 설계수명 40년 이후에도 20년간 1차 계속 운전은 물론, 20년 더(총 80년) 운영하는 것에 대해 규정 개정 검토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대통령은 “방사능 비상사태 발생 시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고백한다. 우리 정부는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에 따라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대피·소개 등과 같은 주민보호대책을 집중적으로 마련하는 내용의 위기 대응 매뉴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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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폐 연료봉의 문제점은 적절한 지적이라는 분석이다.
6기의 원전이 가동 중인 영광 한빛원전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총 5,693다발의 폐연료봉이 보관 중이며, 보조건물 안의 가로 21.6∼10.4m, 세로 8.0∼8.5m, 수심 12m의 수조에 냉각펌프 2대에 의지해 쌓이고 있다. 원전 격납 건물이 아닌 일반 건물 내 수조 속에 보관 중인 폐연료봉은 냉각수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자체적으로 녹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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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한수원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공포는 어쩌면 당연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으로 불안 심리가 높아진 와중에 원전 납품비리·시험 성적서 조작 등을 비롯한 각종 사건으로 국민의 신뢰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현재 준공된 지 30년이 넘은 원전은 고리 1·2·3·4호기, 한빛 1·2 호기, 월성 1호기 등 7기로 경주, 부산, 전남 영광에 밀집돼 있다. 정부와 한수원이 안전 검사 항목을 몇십 개 더 늘린다고 이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원전 운영과 설비 현황의 정보의 투명한 공개가 공포를 씻을 수 있는 유일한 답이다. 한 반핵운동가는 “정부는 원전의 철저한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원전은 우리나라 전체 전력의 약 30%를 담당한다. 신재생 에너지가 늘어나 원전이 필요 없을 때까지는 불편하지만 동거해야 한다.
원전 당국은 울주에 들어설 예정인 신고리 5·6호기 등 향후 원전 건설 계획에 대한 반대 여론이 고조되고 2053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 건립에도 불똥이 튀지 않을까 예의주시하고 있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우리는 원전 밀집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아 국민적 불안감이 큰 게 사실”이라며 “정부와 한수원이 원전 운영 실태를 더 투명하게 공개해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 시작 장면에서 월촌리 마을 아이들이 바닷가에 모여 원전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 지를 두고 논쟁을 벌인다. 한 아이가 원전 속에는 커다란 밥솥이 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 밥솥으로 주민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밥솥’처럼 생긴 거대한 원전으로 우리나라가 부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다른 어린이는 ‘무슨 상자’가 들어있다고 한다. “열면 큰 일이 생기는 상자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무슨 상자란 ‘판도라의 상자’를 의미한다. 과연 우리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일까. /문병도기자 d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