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목숨 건 연애’ 하지원 “내년이면 40세, 미리 고민하지는 않을래요”

하지원을 보고 있으면 세월이 벌써 이렇게 빨리 흘렀나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아직도 20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동안인 그녀가 벌써 올해로 배우로 데뷔한지 20년이 됐고, 내년이면 어느덧 40대의 문턱에 접어든다는 사실 때문이다.

12월 14일 개봉한 영화 ‘목숨 건 연애’에 출연한 하지원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과 ‘길라임’ 논란으로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밝은 로맨틱코미디에 출연한 하지원은 영화 속 ‘한제인’의 캐릭터처럼 밝고 명랑했다.
배우 하지원이 서경스타와의 인터뷰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 = 오훈 기자


천성이 밝고 명랑한 하지원이지만, 그동안 하지원이라는 배우를 바라보는 대중의 이미지는 하지원의 성격과는 크게 달랐다. 데뷔 초기에는 호러영화 ‘가위’와 ‘폰’에 연이어 출연하며 ‘호러퀸’이라는 이미지가 덧입혀졌고, 드라마 ‘다모’를 시작으로 이명세 감독의 ‘형사 DUELIST’, ‘7광구’, 스턴트우먼 ‘길라임’으로 출연한 드라마 ‘시크릿 가든’ 등의 작품을 통해 ‘여전사’라는 이미지가 생겨났다.

그래서일까? ‘목숨 건 연애’에 하지원과 함께 출연한 천정명은 하지원의 팬이었다고 밝히면서도 “자기만의 연기철학이 있고, 차가울 것 같았다”며 하지원이 차가운 성격일 것이라 지레 짐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목숨 건 연애’는 하지원이라는 배우의 엉뚱하고 발랄한 매력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한동안 ‘기황후’나 ‘허삼관’처럼 묵직한 작품을 한 하지원에게도 모처럼 밝고 환하게 웃으며 촬영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고 말이다.

“‘허삼관’을 하면서 무겁고 진지한 역할을 하다보니 가벼운 시나리오나 캐릭터가 그리웠어요. 그러다 ‘목숨 건 연애’를 만나게 됐죠. 저 원래 성격이 밝거든요. 무거운 역할이나 힘든 신이라고 해서 현장에서 일부러 감정 잡고 그러지도 않아요. 촬영 전에도 좋아하는 음악 듣고 커피나 간식을 먹으며 릴렉스하고 있어요.”

“‘목숨 건 연애’는 로맨틱코미디에 스릴러가 같이 있고, 또 영화를 보면 슬랩스틱 같은 부분도 있어요. 예전에 ‘색즉시공’도 신선했던 것이 슬프면서 웃겼잖아요. ‘목숨 건 연애’도 로맨틱코미디인데 무서운 부분도 있고, 그러다 관객들이 예상 못 하는 지점에 슬랩스틱을 떠올리게 하는 코미디가 등장하는 거죠. 이런 캐릭터도 처음이고, 그런 새로운 느낌도 좋았어요.”
배우 하지원이 서경스타와의 인터뷰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 = 오훈 기자


‘목숨 건 연애’에서 하지원은 다양한 모습을 선보인다. FBI 프로파일러인 미남 진백림 앞에서는 그가 연쇄살인범일지도 모른다고 의심을 하면서도 눈에 하트가 뿅뿅 그려지는 ‘러블리 제인’이 되며, 소꿉친구인 파출소 순경 천정명 앞에서는 아이처럼 티격태격하는 짓궂은 ‘큐트 제인’이 된다. 그리고 연쇄살인 용의자이자 동네 강도인 오정세와는 만나기만 하면 황당하게 웃음을 자아내며 코믹 커플의 진가를 선보인다.

“웨딩홀에서 마네킹 흉내를 내는 장면은 정말 즐거웠어요. 어린아이같은 발상이라 우리도 어릴 때 애들이 장난치는 것처럼 계속 연습해서 호흡을 맞췄죠. 오정세 오빠와 연기한 장면들은 특히 합이 딱 맞아야 웃을 수 있는 장면이 많아서 정말 많이 연습하고 웃으면서 촬영했어요.”


1978년생인 하지원은 1996년 KBS ‘신세대 보고서 어른들은 몰라요’의 단역으로 처음 연기에 발을 들였다. 그러니 올해로 연기를 시작한 지 딱 20년이 지났고, 2017년이면 한국식 나이로는 40세가 된다. 외모만 보면 아직도 천진난만한 20대 초반 같은 얼굴이지만, 어느새 중견배우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관록이 붙었다.

“데뷔 때부터 실제 제 나이보다 어린 역할들을 해와서 그런지, 나이가 유난히 더디게 가는 것 같아요. ‘황진이’에서도 10대 시절을 아역이 할 줄 알았는데 제가 직접 연기하고 있고, ‘코리아’도 극 중 현정화 역할이 20대 초반인데 그런 걸 직접 연기하다보니 ‘하지원’이라는 개인의 시간은 정지되고 영화 속 캐릭터 나이로 살게 되는 것 같아요.”
배우 하지원이 서경스타와의 인터뷰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 = 오훈 기자


“영화를 할 때는 저에게 나이를 인식시켜주는 사람이 없으니 실감을 못 하는데, 작품 하나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나이를 실감해요. 그런데 40세가 된다고 해서 미리 겁먹지는 않을 거에요. 전에 이명세 감독님이 저에게 ‘배우에게는 나이가 없다’고 하셨거든요. 저는 배우이기에 70대 노인을 연기할 수도 있는 것이고 지금의 저보다 더 어린 역할을 맡을 수도 있는 거죠. 그냥 전 나이가 몇 살이냐는 것보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수록 배우 하지원으로서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해요.”

천성이 밝고 명랑해보이는 하지원이지만, 그녀에게도 배우를 하며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하지원은 오히려 현장에서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고, 배우 하지원의 삶을 즐겨가며 지금의 위치까지 오게 됐다.

“처음 연기를 시작하면서 카메라도 어색하고 감독님에게 혼나고 하면서 배우가 되는 길이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모든 것이 다 힘들었죠. 그러다 ‘다모’를 하게 되면서 촬영장이 재밌고 즐겁다는 것을 처음 느꼈어요. 얼마 전 이순재 선배님에게도 연기가 갈수록 어렵다고 하소연을 했는데, 선배님이 ‘야 임마 연기는 나도 어렵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연기가 어렵다고 고민하는 자체가 행복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힘들면 맨날 오디션에서 떨어지던 신인 때를 생각해요. 그 때랑 비교하면 지금은 얼마나 행복해요? 감사하며 살아야죠.”

하지원은 오늘도 웃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예전에는 ‘배우 하지원’과 ‘개인 하지원’을 구분하지 못해 힘들기도 했고, ‘배우 하지원’에 비해 ‘개인 하지원’의 삶이 초라하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하지원은 ‘Carpe Diem’(카르페 디엠, 지금에 충실하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산다.
배우 하지원이 서경스타와의 인터뷰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 = 오훈 기자


“내년이면 40대가 되는데 어떠세요? 배우로서 앞으로 어떻게 활동할지 생각해봤어요? 란 질문을 받기도 해요. 전 이런 고민을 미리 하지 않아요. 어차피 나중에 고민하게 될텐데, 미리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고 고민해봐야 스트레스만 받고 늙어가는 거죠. 차라리 지금은 시원하게 친구들하고 놀고 가족들하고 웃으며 털어버리고 정리를 해버려요.”

“예전에는 작품이 끝나고 ‘개인 하지원’으로 돌아오는 것이 참 힘들었어요. ‘배우 하지원’의 삶은 재미있는데 ‘개인 하지원’의 삶은 너무 심심해서 빨리 다음 작품을 하지 않으면 내가 존재하는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개인 하지원’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작품이 하나 끝나면 친구들하고 술도 마시고, 혼자 여행도 다니며 시간을 보내요. 다음 작품을 빨리 해야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나니 제 삶이 더욱 좋아졌어요.”

/원호성기자 sestar@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