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근 인제대 상계백병원 교수가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감염증으로 입원한 생후 7개월 남자 아기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약물 등을 호흡기로 들이마실 수 있게 해주는 네블라이저 치료를 받고 있는 아기가 플라스틱 마스크를 자꾸 벗어버려 엄마가 일회용 종이컵으로 바꿔놓았다. /사진제공=상계백병원
올겨울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감염증과 인플루엔자(독감)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RSV 감염증에 걸린 아기들은 입원실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충남의 한 산후조리원은 신생아 여러 명이 폐렴 증세를 보여 대학병원으로 옮겼는데 RSV 감염증으로 확인돼 잠정 폐쇄됐다.
전국 200여개 내과·가정의학과·소아과 의원에서 외래진료를 받은 1,000명당 38도 이상의 발열과 기침·목아픔(인후통) 증상을 보인 ‘인플루엔자 의심환자’도 지지난 주 13.3명으로 유행 기준(8.9명)을 넘어선 데 이어 지난주 2.6배인 34.8명으로 불어났다. 초중고생(7~18세)은 40.5명에서 107.7명으로, 6세 이하 영유아는 11.9명에서 29명으로 증가했다.
질병관리본부가 전국 36개 중소병원으로부터 호흡기 질환자의 검체를 받아 유전자 검사를 한 뒤 발표하는 RSV 검출률은 지지난 주 28.5%(221명 중 63명)로 피크를 친 뒤 지난주 16%(231명 중 37명)로 떨어졌지만 지난해보다 2~3배 높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검출률은 지지난 주 7.5%에서 지난주 3배가 넘는 24.2%(231명 중 56명)로 치솟아 이 무렵 0~1명만 검출됐던 지난해에 비해 조기 유행 추세가 뚜렷하다.
◇RSV 감염증 전용 백신·항바이러스제 없어=RSV 감염증은 주로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발생한다. 만 5세 이하 영유아가 환자의 90%가량을 차지하며 생후 6개월~만1세를 전후해 많이 발병한다. 조산아, 선천적으로 폐·심장 질환이 있거나 심한 알레르기 질환 가족력이 있는 영아 등이 고위험군이다. 면역력이 떨어진 고령자들이 감염돼 노인요양원 등에서 집단 발병하기도 한다.
RSV 감염증은 감기처럼 시작하지만 모세기관지염으로 진행되거나 폐렴·천식 등 합병증에 걸리면 쌕쌕거리면서 호흡곤란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 입원치료를 받아야 한다. 가족 중 알레르기 질환이 있으면 천식으로 이환될 확률이 7배나 높다.
감염 후 증상 발현까지 보통 4∼5일의 잠복기를 거치며 발열·기침·콧물·목아픔·가래 증상을 보인다. 발열은 대개 아주 심하지는 않으며 증상에 따라 해열제·기관지확장제 등 대증적 요법으로 치료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천식, 기관지 폐이형성증 등 기저 폐 질환이 있는 경우 더 큰 아이에게서도 심한 폐렴을 일으킬 수 있다.
김창근 인제대 상계백병원 천식알러지센터 교수는 “최근 입원한 호흡기 질환 환아의 85% 이상이 RSV에 감염됐을 정도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며 “영유아의 경우 RSV 감염증은 1세 미만에서 잘 걸리고 호흡기 증상이 많은 반면 인플루엔자는 어린이집·유치원에 다니며 단체생활을 하면서 잘 걸리고 고열·근육통이 동반되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RSV 감염증은 인플루엔자와 달리 아직 예방 백신이나 잘 듣는 항바이러스제가 개발되지 않았다. 조산으로 폐·심장 질환을 가진 영아 등에게는 RSV 항체를 넣어주는 ‘시나지스’를 투여하기도 하지만 워낙 비싼데다 RSV 유행 시기인 10월부터 3월까지 월 1회 투여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독감, 백신·항바이러스제로 이중 방어막을”=감기는 리노바이러스 등 200여종의 바이러스와 여러 세균에 의한 감염성 질환이다. 인플루엔자를 지독한 감기로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둘은 전혀 다른 질환이다. 인플루엔자는 인플루엔자바이러스(A형·B형)에 의한 급성 호흡기 질환이다. 대개 고열·두통과 함께 근육통 같은 전신증상이 갑자기 발생하면서 목이 아프고 기침이 나는 등 호흡기 증상이 동반된다. 전염성이 강하고 영유아·노인·만성질환자 등 고위험군이 걸리면 사망률과 합병증 발생이 증가한다.
전파 경로도 감기보다 다양하다. 감기바이러스는 환자가 기침할 때 튀는 작은 침방울과 함께 다른 사람의 점막으로 들어가 전염된다. 반면 인플루엔자·RSV는 이런 경로는 물론 환자와 직접 접촉하거나 환자가 만진 문, 버스·지하철 손잡이, 동전, 물품 등을 통해서도 전염된다. 바이러스가 묻어 있는 물건을 만진 뒤 눈·코·입 등의 점막 등을 만지면 독감 환자와 직접 접촉하지 않았더라도 전염될 수 있다.
인플루엔자에 걸리면 건강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보통 감기는 심해도 1~2주 지나면 호전된다. 하지만 인플루엔자는 폐렴·뇌염·뇌수막염·패혈증 같은 중증 합병증을 유발하며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따라서 겨울이 오기 전 인플루엔자 백신을 맞는 게 중요하다. 60세 이상과 5세 미만에서는 60% 안팎, 젊고 건강한 성인은 80~90%의 예방 효과가 있다. 백신은 입원·중환자실 치료 비율과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 위험을 낮춰준다. 아직 백신을 맞지 않은 고위험군은 독감 유행기간에라도 예방접종을 하는 게 좋다. 고위험군과 함께 근무·거주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임신한 경우 예방접종 시기는 임신 주수와 상관이 없다.
예방접종을 했더라도 인플루엔자가 의심되면 진찰을 받고 ‘타미플루’ 등 항바이러스 약물치료를 하는 게 중요하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